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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Dec 23. 2023

달리는 사람으로 오인받는 즐거움

언제 달리지는 모르지만

"이거 너 달리기할 때 입으면 되겠다?"

쇼핑을 하다가 문득 엄마가 내게 꺼낸 말.

"요새도 뛰어?"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내게 건네던 따뜻한 안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난 뛰지 않는다. 요즘 뛰지 않는 것이 아니다. 쭉 뛰지 않았다. 작년에 한 석 달 정도? 열심히 뛰는 척을 한 적이 있긴 하다. 그리고 올해는 아주 소량의 의지로 동네를 몇 바퀴씩 뛰고는 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온갖 근육과 함께 마음까지 움츠러드는 겨울이 오면서

"왜 나는 그간 달리지 않았는가. 왜 자꾸 멈추었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에서도 운동에서도 나는 나른하다 못해 나약한 의지로 기어다녔다. 그래서 이 책을 다시 찾아보았다.


"아무튼, 달리기"

(나는 무엇을 해 볼까, 싶으면 몸은 안 움직이고 손가락만 먼저 움직여 책 제목부터 찾는다.)



사실 이 책은 작년에 내 책상에 다녀갔다가 서둘러 다시 나를 떠난 에세이다. (몇 장만 읽다가 대출 연장기간을 넘겨 21일 차에 반납했던 책) 그런데 마음속에 숨겨 놓았던 '달리기'에 대한 열망이 그 에세이를 내 눈앞으로 다시 데려왔다. 달리기를 '글(책)'로 배웠어요,라는 말이라도 하려고 이 책을 펼쳤다.

응? 그런데... 뭐지? 이 찬란한 재치와 센스는? 왜 1년 전에는 미처 몰랐을까? 책과 내가 연결되는 타이밍은 따로 있는가 보다.


구석구석 구김살 없어 봬는 유머가 물 흐르듯 전개된다. 

생각보다 '많이' 재밌어서, 그리고 '달리기'에 점점 진심이 되어 가는 저자의 태도가 무척 인상 깊어서 

나는 어제 친구를 만나러 나선 길에 이 책이 주는 많은 이야기들을 100m 달리기하듯 금세 먹어 치웠다.


'달리기'가 내 몸을 알아가는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다는 점에 특히 공감했다. 나 또한 조금이나마 뛰어 보고서야 내 발의 움직임과 내 몸, 내 폐의 움직임을 기민하게 체크할 수 있었다. 또한 저자는 '초보 러너'나 '런태기(run+권태기)'의 러너, 과욕을 부리다 부상을 입는 러너, 자본주의형 러너(달리기도 장비발) 들을 소개하면서, 살신성인(?)의 자세로 자신의 달리기 역사를, 혹은 흑역사를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데, 그 과정 하나하나가 나에게는 아주 소중한 참고사항이었다.(까마득한 달리기 선배님, 감사합니다.)


"달리기는 몸을 쓰는 대부분의 스포츠에 포함되는 기본 옵션이다. 치킨을 시키면 딸려 오는 치킨 무 같달까. 그래서인지 온전히 달리기만을 위해 길을 나서던 그날은, 치킨집에 전화해 치킨무만 주문하는 듯한 오묘한 밤이었다.(10)"


"한동안 달리기는 나의 허술함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허술함이 좋았다. 모든 노력을 쏟아내고도 '나 진짜 못 뛴다'며 한탄했지만 그런 내가 밉지 않았다. (24)"


"달리기는 시보다는 소설 쓰기에 가깝다. 시작부터 천재성이 폭발하는 재능 집약형 운동이라기보단 더 오랜 시간 공들여 나만의 레이스를 축조해 가는 일이다.(26)"

 

"달리면 모든 게 단순해진다. 아무리 무거운 고민이라도 달리기 시작하면 점차 그 부피가 줄어든다.(93)"



못하는 내가 밉지 않은 달리기, 일단 움직이면 삶까지도 단순해지는 마성의 달리기.

아무튼, 달리기를 하다 보면 이런 것들을 맞닥뜨리게 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아무튼, 달리기'를 시작해 보아야겠다.

내일이든, 

혹은... 내년이든...



제목: 아무튼, 달리기(저자: 김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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