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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Dec 24. 2023

노력의 끝에서 만난

성적표 추억 소환

어제 겨울맞이 방 정리를 하다가..

이럴 수가..

 자존감의 원천이.. 여기서 시작된 것인가.




때는 바야흐로 '국민학교' 6학년 시절.

학급 담임 선생님께서는 이런 멘트를 나에게 남겨 주셨다.

#표현력 #창의성 #문장 구성력


내겐 고등학교 생활기록부도 사본으로 남아 있는데, 거기서도 선생님들의 따뜻한 시선들이 활자로 쓰여 있었다. 하나같이 다 '소극적'이라는 어휘는 잊지 않고 포함되었지만, '의외로 적극적'이라는 평가도 있었고, '책임감이 강하다'라는 문구만큼은 초등(국민)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이어졌다. 그렇게 난 방 정리를 하다 말고 잠시 나의 학창 시절을 흐뭇하게만 회상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뒤를 돌려 내 6학년 1반 시절의 성적표 뒷면을 보게 되었다. 거기서 발견한...



"열심히 노력하는 데 비해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함."

읭??

아, 아빠...

'보호자란'에서 만난 과거의 아빠.. 그가 초딩 6학년이었던 내게 건넨 말.



그렇구나. 그간 벽을 만나면 그 앞에서 한숨 쉬며 몸집 축소하기에 열을 올리거나 어디 내뺄 곳을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켜던 나였는데... 흠. 그래, 그래. 나의 '다소 많이 낮은' 자존감의 원류(原流)는 여기였던 것!


최근 진행 중인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참 잘했어요'라는 심사평을 하는 분을 보았다.

좀 단순한 심사평 아니야? 이렇게 생각했는데 그랬던 나를 반성한다.

'참 잘했어요'라는 말에 목말라하는 참가자들의 기대에 조금쯤 냉소적이었던 나의 태도도 반성한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라는 참가자에게

열심히만 하면 안 돼, 잘해야지, 라고 사람들을 채찍질하는 세상.


나도 열심히'는' 살았다, 적어도 아주 오래전 20대 어느 시절엔. 6~7년간 임용고사라는 시험에 내 젊음과 내 영혼을 사각사각 갈아 넣었더랬다. 그렇게 열심히 노력한 끝에!


<첫 해>

수험번호 ___

불합격했습니다.


<두 번째 해>

수험번호 ___

불합격했습니다.


...


<마지막 시험 보던 해>

수험번호 ___

불합격했습니다.



불합격X 7회. 그 당시 나는 '20대 순삭'이라는 놀라운 생의 신비와 '서른 살 늦깎이 사회 초년생'이라는 남다른 체험! 삶의 현장을 즐겨야만(?) 했다.

'아. 노력해서 안 되는 것도 있구나.'

노력의 끝에는 노력의 부스러기도 남지 않는다는 것을 암암리에 깨닫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그때 그 노력의 흔적들은, 지금 어디로 사라졌을까?

내 세포에 아주 어두운 모양으로라도 남아는 있을까?



'노력하는 데 비해 결과가 지나치게 만족스러움.'

그렇다고 해서 위와 같은 멘트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횡재나 천운 같은 말은 내게 어울리지 않는 단어이다.

다만, 아주 먼 훗날, 나의 마지막 일기장에 적힐 글자들을 미리 떠올려 본다.

 


'제법 열심히 노력하더니 끝까지 열심히 살다 가긴 함.'



어쨌거나 나는 현재,

'노력'이라는 이 친구랑 아직 좀 더 친하게 지내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내일도 뭐든 질리게 좀 노력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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