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모르고 내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 내 코앞에서 내가 만든 독립출판물을 집어 올린다. 나는 타인의 손에 놓인 내 글귀들이 쑥스러워 못내 식은땀이 난다. 저기, 어서 그 책을 놔두고 그냥 가 주세요. 안 사셔도 돼요.
그렇게 1초 독자, 5초 독자, 최장 1분 독자 들이 점차 사라져 간다. 나는 머쓱한 침묵 속에서 왠지 모를 안도의 숨을 내쉰다.
책을 만들어 놓고, 또 책을 팔려고 나와 놓고 이게 무슨 아이러니한 태도인가 싶지만 나는 나를 홍보하는 일에 서투르다. 테이블에 놓인 다른 사람들의 책은 적극적으로 소개하려 애썼지만, 누군가 내 독립출판물에 손을 대기라도 할라치면...
허, 저러다 진짜로 사 가면 어째?? 좀 그른데.. 부끄럽다구... (내 책 들고 있는 손님 못 본 척)
하지만 기우였다. 다행인지 어쩐지 '아무도' 내 책을 사 가지는 않았다. 책을 팔던 이틀 내내 말이다.(나는 행사 3일 가운데 이틀만 참여했다.) 그렇게 내 독립출판물의 소소한 축제는 깔끔하게 마무리되었다.
그래도 이랬거나 저랬거나 올해 가장 잘한 일 가운데 하나는, 바로 퍼블리셔스 테이블, 너라는 축제를 만난 일.
독립출판물 수업을 듣고 딱 30권을 뽑아 수업을 같이 들었던 분들에게 나누어 드리고 내 친구들에게도강제로 안기고... 운 좋게 아는 대표님께서 열 권을 억지로(?) 사 주시고... 그래서 지금 나의 방에는 바코드(isbn)가 없는 내 책이 대여섯 권쯤 남아 있다.
희한하게도 이 녀석들이 세상 밖에서 큰 소리를 내며 떵떵거리지 않는데도 나는 이 녀석들이 자랑스럽다. 내 못난 세월을 보듬어 준 고마운 활자들이다. 글을 쓰며 내 몇 년간의 삶과 그 삶이 지녔던 표정들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런 시간들이 있었기에 타인의 손길에게 외면을 당하는 상황 속에서도 난 내 시간들과 내 글자들이 어쩐지 좀 '귀엽기만' 하다.
앞으로 2024년에도 독립출판물을 많이 만들어 볼 작정이다. '예정'이 아니라 '작정'이라고 '일부러 먹은 내 마음'을 여기서 선언까지 하는 이유는, 선언이라도 안 하면 내 꿈에 게을러질 듯싶어서이다.
느리더라도 게으르지는 않게!
속도감 있는 꿈의 전개는 아니더라도원하는 목적지에는 착지!
그렇게 조금쯤 꿈 근처에 도착하고 싶다.
내년에는 어떤 이야기들을 만들고 어떤 이야기들을 또 <무려 0권>으로 팔아 볼까나.
(추신: 이 축제에 참가할 수 있었던 것은 2022년 내내 매일 글쓰기 30일 모임에 참가해서다. 그때 당시 나는 한 달마다 주제를 달리하여 글을 썼다. 2월에는 입덕일지, 3월에는 돌고 돌아 재입사일지, 4월에는 흑역사일지 등등. 그 모아 둔 글들이 없었다면 독립출판물 수업에 참여해 볼 엄두도, 퍼블리셔스 테이블에 곁다리로 참가해 볼 마음조차 먹지 못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