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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Dec 31. 2023

연례 인사

너에게 마지막 인사

안녕, 잘 있어.

나, 간다.

어디로 가냐고? 알잖아, 2024년으로.


섭섭하게 한 게 있다면 잊어 줘. 때로는 빨리 안 간다고 널 닦달하곤 했지. 한창 직장 일로 힘들던 올 7월엔 특히나. 그땐 흘러가 버리지 않고 자꾸 멈춰 있는 것만 같은 시간들이 좀 고통스러웠어. 그게 내 모자란 실력 때문인지도 모르고.


지나고 보니 알겠어. 2023, 너가 나에게 주려고 했던 것들을. 뻔한 이야기지만 힘들었던 만큼 나도 아주 조금쯤은 달라졌어. 고통 가운데서도 아주 희미하게나마 꽃은 피더라. 2023, 네가 흐르는 동안 나도 어느새 흐르고 흐르고 또 자라고 자라고 있었던 거지.


너와 함께하는 동안 의미 있었던 일도 몇 개쯤 있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도 보고 꾸역꾸역 내 꿈을 위해 한 발짝 디디기도 하고. 네가 준 하루하루 자체가 너무 고마워서 슬쩍 울컥했던 날들도 물론 있었어. 어쨌든 너와 함께 살아 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여기 있는 거고, 오늘 이렇게 너와 잘 '작별'할 수도 있는 거니까.



가끔은 내 하루를, 내 시간을, 내 미소를 네가 앗아간다고도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너는 나에게 또 다른 하루를, 새로운 시간을, 특별한 표정들을 만들어 주고 있었어. 그걸 여태 잘 몰랐네.

너를 보내는 2023년 마지막 날에서야 알았지 뭐야? (좀 늦었나?)



이젠 내 일기장에서도 2023, 넌 떠나겠지.

그래도 처음 며칠간은 '2023'이라고 적던 습관을 쉽게 고치긴 어려울 거야. 넌 당분간 내 일기장에 남아 네 뒷모습을 내게 종종 드러내겠지. 나는 해마다 그랬듯 연도를 잘못 쓰면서, 그런 방식으로 다시금 너를 떠올릴 거야. 그렇게 널 떠올릴 때면 나는 조금의 아쉬움과 지나간 그리움들로 마음 한 구석이 시큰하기도, 그러다 이내 곧 따듯해지기도 하겠지.



그렇지만 이젠 안녕.

2024를 만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널 잊겠지.

그래도 내 몸과 내 마음, 내 시간 어딘가에 꾹꾹, 2023의 DNA가 새겨져 있을 거야.

나는 또 한 번 2023, 너로 인해 '나'일 수 있었어.

그 사실은 잊지 않아.



너무 늦은 고백이지만 들어 줘 고마워.

오늘은 우리가 헤어지는 날.

우리, 마지막엔 웃으며 돌아서자. 난 너를 아주 잘 보내고 싶어.


널 만났던 모든 시간이 감사하고,

지금 이 순간,

무사히 널 보낼 수 있다는 것에 무엇보다도 감사해.



잘 가, 2023.

진짜 고생했어.

너도 나도.



(사진 출처: Dewang Gupta@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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