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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Dec 30. 2023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이놈의 인기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너, 애들한테 나 좋아한다고 그랬어?"

"......"

"(무심한 표정으로 다시 묻는다.) 좋아한다고 말했어?"

"(새침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그래! 맞아."


올 것이 왔다. 로맨스 영화를 초등학교 2학년 교실에서 몸소 찍고 있는 우리 첫째 조카. 조카가 학교를 하루 빠졌던 날, 아이들 사이에서는 '고백' 소문이 퍼졌다. 그 소문의 진앙지는... 다름 아닌 고백녀 자신! 그녀의 자기 고백으로 시작된 첫째 조카의 인기 인증. 남 들으라는, 남 들어도 상관없다는 공개 고백이었다.


사실 쌍둥이 가운데 둘째 조카가 먼저 고백을 받을 줄 알았다. 미취학 아동이던 시절, 둘째 조카는 '수호천사상'을 거머쥔 이력이 있다. 게다가 이모 입으로 두말하기 입 아프지만 우리 조카들은 아주 멋있는 녀석들이다. 외모도 심성도 그리고 외모도 외모도 외모도...(9년 차 이모 콩깍지의 주장임;;)


둘째 조카는 특히 아이들에게 '심쿵'을 유발하는 행동도 곧잘 때문에 '인기 인증'은 둘째가 먼저일 줄 알았다.(이는 어린이집 선생님의 전언이다.) 

"여기, 더 가까운 데서 봐."

숲속 체험 도중 기꺼이 자기 자리를 여사친에게 내어주던 우리 다정한 둘째 조카였으니까.



쌍둥이 조카의 어미인 내 동생은 갑자기 분주해졌다. 단단히 단속해야 할 시점이라 여기고 급히 경고등을 켜기 시작했다.

"난 모두를 좋아해. 한 사람만 좋아할 순 없어."

이렇게 말하라고 첫째 조카에게 지시(?)하였다. 에둘러 고백을 거절하도록 종용 아닌 종용을 한 것. '가스라이팅'까지는,,, 아니고 '거절라이팅'을 주입했


"아직 너희 나이에 사귀고 그러는 거 아니야."

그런데 초등학교 2학년 교실에선 이런 이야기가 오고 간다고 한다. 누군가를 사귀어 본 적 없는 친구들에게,


"너, 그럼 모태솔로야?"

(매체의 영향인가, 나는 꼰대 이모의 마인드가 되어 '애들이 못 하는 소리가 없군.' 하는 마음이 불쑥 들었다. 하긴 못 하는 소리가 없게 만든 게 바로 우리 어른들인걸.)


"아무튼 아직 사귀고 그러는 거 아니야."

다시 한번 '거절라이팅'이 시작된다. 현재 같은 반인 친구들과 앞으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같이 다닐지도 모르는데 '이미지 관리'가 필요하다는 게 쌍둥 어미의 지론이다. 자기 자식을 이 사람 저 사람 좋아하고 다니는 이미지로 만들 수는 없다는 것!(벌써 '인기남'으로서 과거사 관리에 들어간 우리 조카. 그리고 이를 조종하는 내 동생이다.)


"사귀는 거 아니야?"

"응. 사귀고 그러는 거 아니야."

"근데, 그러면,, 엄마, 아빠는 왜 사귀었어?"

"어?"

고백을 건네온 친구와 굳이 '사귈' 생각 같은 건 없고 그 친구를 좋아하지도 않는 첫째 조카지만 자못 궁금했나 보다, 자기 엄마의 이 알쏭달쏭한 아이러니가 말이다.


"아무튼 아직은 아니야."

우리 어른들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직'이라는 단어로 시작하는 이야기뿐.



사실 (굳이 따지자면) 서로 좋아해도 된다. (굳구태여 좋아하고 싶다면) 서로 사랑한다고 말해도 된다. (또 굳이 구태여 사귀고 싶다면 ) 서로 사귀다가 헤어져도 된다.


단....

그게 남 일일 때만....된다..

(벌써 예비 시이모의 마인드 세팅 중.)



아홉 살의 연애. 아무리 생각해도 아직은 이른 것 같다.

그런데. 흠...

내 조카들이 아홉 말고 열아홉이 되었을 때라면?

"이모, 나 여친 생겼어."

"뭬야?!!!!"


아홉이든 열아홉이든 아무래도,,

아무래도 아직은 닥쳐올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 같다 +_+ (내 사랑, 쌍둥이 조카들, 사... 사랑해요.. 짝... 짝..사랑해요...)



"하여간 안 돼, 얘들아, 아직은."

 아이들이 다시 우리에게 이렇게 물어 올지도 모르겠다.

그럼 대체 언제 우리 마음대로 해요? 그 '아직'은 언제 끝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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