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다,라는 흔하고 뻔한 문구가 요즘 어쩐 일인지 자주 내 마음을 두드린다. 자주 만나지는 아니하였지만 늘 마음 한쪽 구석에 자리하였던 사촌 언니가 떠난 후, 내가 바라던 내일이 과연 이것이 맞을까 고민하는 순간순간이 늘어났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올해도 강의하실 수 있는지 답변 주세요.
어제 이런 문자가 왔다. 이런 문자나 전화는 한 해에 한 번, 이맘때쯤 다가온다. 날름 받아 들고 "감사합니다!" 해야 하는데 내 입은 어쩐 일인지 말이 없다.
사실 해마다 고민한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곳에서 감사하게도 고용 승계를 해 준단다. 새로 계약을 할 것인지, (즉 강의를 계속해서 할 것인지) 매번 나에게 물어 온다. 무려 '돈'이라는 것을 벌 수 있으니, 묻지도 따지지도 않아야 한다,라고 내 안의 이성이 (나의 불안함을 짓뭉개며) 내 마음의 멱살을 쥐고 뒤흔든다.
하지만 고민이 필요했다. 1시간 타이머를 맞춰 놓고 고민을 시작했다. 프리랜서 책 편집 일이 좀체 늘지 않고 정체를 맞고 있는 요즘, 어떻게든 나 하나를 먹여 살리려면 이런 1시간조차 사치다. 그러나 사치를 부려야만 나와 더 단단한 약속을 할 수 있다.
1시간의 사치 스타트. 우선 작년에 작성했던 OX노트(해야 할 이유,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적어 놓은 노트)도 펼치고, 유튜브의 도움도 받는다.
적성에 맞는 일은 찾는 것은 나이가 들어서도 아주 힘든 일이라는 이야기도 듣고, '가장 약해져 있을 때가 내가 성장하는 바로 그 순간'이라는 말도 귀담아듣는다.
'아, 맞아. 난 이 일을 하며 아주 약했어. 줄곧 나약했고 자신감으로 치자면, 병약한 자신감만 지녔더랬지. 그럼 이제 강해져야 할 순간이려나?'
1시간 동안 작년 다이어리도 뒤지고 업무노트도 뒤진다.
이랬던 내가, 마지막 대면 수업을 앞두고 다이어리에 무려 이런 말을 써 놓기까지 했다. 눈을 씻고 다시 보았다.
읭? 이렇게까지 내 자신감이 업그레이드? 내가 쓴 글자가 아닌 것만 같았다. 그날도 어김없이 나는 좀 서툴렀다. 폭망까지는 아니어도 소망(소소하게 망하다), 수준 정도는 된다. 강사의 패기와 달리 학생들의 눈빛에선 열기도 온기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연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올해도 수업할 수 있습니다.
나는 1시간의 고민 후 답장을 보냈다. 어쩌면 '답정너' 같은 세상 속에서 나 혼자만 이리 뒤척 저리 뒤척 괜히 고민하는 척만 했던 건 아닐까 싶다. 다시 새로운 돈벌이를 찾는 일이 쉽지 않으리라는 지레짐작으로,꽤 불편했지만 늘 입던 옷을 다시입기로 했다.
이게 맞나,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 '고작' 이런 오늘이 맞나. MBTI로 치자면 대문자 I, 극내향인이 내가 6년 넘게 이 강사 일을 붙들고 있는 것이 과연 잘하는 일인가 매번 주저했다. 주제를 모르고 이 일을 계속 붙드는 것은 아닐까 싶은 것.
하지만 나는 '고작'의 일상을 택했다. 그래도 열심히 해 보자,라는 생각을 택했다.
'그래, 올해는 딱 미친 듯이 해 보자. 그간 열심히는 했지만 그것이 나의 최선이었다고 당당히 말할 수는 없다. 그러니 이제는 조금 더 공부하고 조금 더 어깨를 펴 보자.'
이렇게 마음을 고쳐먹었다. 닥치면 다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지금부터 착실히 '국어 사랑꾼'이 되어 보려 한다. 국립국어원에 들어가서 표준어 규정과 외래어 표기법 등도 다시 꼼꼼히 찾아보고, '다듬은 말(순화어)'도 영단어 외우듯 하나하나 숙지해 보고, 국어 관련 논문들도 자료실에서 검색해 보고... 모르면 더 불안하다.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이 일에 더 불안을 느꼈던 것일 수도 있다.
나에게 다시 나 스스로 기회를 주려고 한다. 전쟁터에 맨몸으로 나섰기에 더 떨었고 더 두려웠던 것일 터다. 불안이 나를 삼키기 전에 최대한 나의 무기를 벼려 둘 생각이다. 그 무기로 내가 먼저 불안을 삼켜야지. 지금은 의문 부호를 파헤치기보다 의문 부호를 어떻게든 다리미로 쭉쭉 펴서, 일직선의 느낌표로 만들어야 때이다. 나의 소소한 불안에도 활짝 웃으며 다시 나를 일으킬 수 있을 때까지는 달려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