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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Feb 20. 2024

사라진 14권

요즘 총선을 앞두고 희생, 험지, 불출마 등의 여러 말이 나온다. 하지만 권세를 누려 본 자가 자기 앞에 놓인 권력을 쉬이 내려놓기란, 모르긴 몰라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해, 나도 내 독서 인생에서 '권세(?)'를 제법 누려 보았다. 시민 북큐레이터 활동을 하면서 나는 제법 굵직한(?) 베네핏!(베너피트, benefit)을 얻었다.


1. 1인당 14권 대출

2. 대출 기한 기본 한 달, 연장 1주일(총 5주)

3. 활동 끝나고 무려(?) 수건 선물.

(관련 링크: 시민 북큐레이터 활동 마감 (brunch.co.kr))

 

그런데 지난달, 예상치 못한, 아니 예상하고 싶지 않았던 소식이 도착했다.



대출가능 권수 '-5권, -2권....-1권'


그전까지는 14권까지 빌릴 수 있었기에 '책 빌리기 중독자'인 나에게 이보다 더 달콤할 수 없었던 혜택이었는데 그것이 사라졌다. 이제 시민 북큐레이터 활동이 끝났다고 도서관 측에서 나의 혜택을 '홀랑' 거둬들인 것이다. '남들보다' 많이 빌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이게 뭐라고' 우쭐할 때도 있었고, 빌린 책들을 5주 동안 내 소유인 양 책장에 둘 수 있어 꽤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제 평범한 세상으로, 아주 소소한 독서인으로 돌아가야 할 시점이 왔다.


작디작은 '권력'도 있다가 사라지니 이리 아쉬울 수가 없다. 제목이나 표지, 훑어본 몇 개의 문장이 언뜻 괜찮아 보이면 무작정 빌리고 봤던 나였는데, 이젠 책 고르는 일에도 아주 심사숙고를 한다. 책을 빌릴 수 있는 기간도 2주가 줄어들어 웬만하면 집중해서 책을 읽으려고 한다.



이런 작은 혜택도 이러한데, 아주 큰 권세로 세상을 호령해 본 자들은 어떨까. 어제는 경기도 모 도시에서 이전 관리인과 현 관리인 사이 심야 집단싸움이 일어났다는 보도도 있었다. 해당 센터 관리로 오가는 돈이 10억 정도라 하니, 눈에 불을 켜고 이권을 다툴 법도 하다. (그래도 원만히 해결하시기를.)



그것에 비할 바 없는 초라한 혜택일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며칠간 아쉬움에 쩝쩝거렸다. 그리고 쩝쩝거리다 깨닫게 된 사실 하나.


"없던 손에 무언가를 쥐는 것보다 있던 손에서 무언가를 놓는 것이 더 어렵다."


손에 쥐는 것이 손에서 놓는 것보다 더 어려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손에서 놓는 것이 더 곤란한 일이었다. '아니, 내 거였는데, 아주 잠깐이라도...'라는 심정. 14권을 가방에 든 채, 또 손에 나눠 쥔 채 낑낑대며 도서관 언덕을 오르내리던 지난날...


그런데 이제 그것들을 놓아 버리니 내 가방엔 7권의 책만 매달린다. 때로는 1~2권의 책만 단출하게 내 손에 놓일 때도 있다. 그러다 문득 내 어깨가 내게 말한다.


웬걸? 한결 가볍네?


내 것이었던 게 떠난 게 아니라 원래 내 것이 아니었던 게 제 갈 길을 간 것뿐이다. 8개월 동안 수많은 활자들과 더불어 덤으로 행복했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나의 이 혜택은, 결국 '덤'이었을 뿐. 얻어도 그만, 얻지 않아도 그만인 것들.


내일부터는 '덤'으로 얻은 혜택은 잊고

꼭 필요한 책, 꼭 원하는 책만 빌려야겠다.


잘됐다.

이제 '책 빌리기'도 '미니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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