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조카가 '가톨릭 사제'라는 꿈을 은연중에 발표했다. 하지만 우리 가족 가운데 어느 누구도 두 손 들어 환영하지 않았다. 그 순간 즐거이 독려하지 못한 이모로서의 소회와 약간의 반성을 담아 봤다. 아이들의 꿈이라면 어떤 꿈이든 존중받아 마땅한 것을... 앞으로는 어떤 꿈이든 응원해 줘야지! (이 글의 한 문장: 나~~ 잘 있다아~~~)
화, 수는 이모일지(이모사용법) 연재의 날. 원래 있던 글을 다듬어 올렸다. 도입과 마무리 부분이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다. 이 글을 쓰며 '나'를 격려해 주고 응원해 주는 친구들의 마음을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어 뜻깊었다. (이 글의 한 문장: "넌 옮김 말고 이제 '지음' 하면 되잖아. 봄책장봄먼지 지음.")
갑자기 내 동료들을 소개했다. 책을 읽을 때마다 나타나서 나의 독서 시간을 환하게 채워 주는 녀석들. 한 번쯤 감사를 전하고 싶었다. 사물들이 주는 위로가 아닐까 싶다. 아니, 이들은 단순히 사물이 아니라 나의 친한 동료들일지도. (이 글의 한 문장: 이들은 나의 책 읽기를 어여쁘게 만들어 주고, 든든하게도 지켜 주는 성실한 동료들.)
표지에 반하고 책 소개에 반해 구입했던 책. 아주 오래전 읽었던 책이라 다시 읽으며 독후감을 준비했다. '진실'이 뭐가 중요하냐고 묻는 세상에 '그럼 진실이 왜 안 중요하냐고' 되묻는 이야기. 몰라도 되는 진실을 없지 않을까. 꽤 흥미롭게 읽었던 책이라 소개하고 나니 뿌듯하다.
이럴 일은 아니라면서 대놓고 자랑을 시작한다. '하루 15분 독서' 모임에서 자그마한 성취를 거둔 이력을 자랑한다. 많은 분량의 책을 읽어 냈다고 해서 책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런 습관이 바탕이 되어 (최근) 독후감 노트를 쓰는 습관으로까지도 이어졌다. 습관이 습관을 낳는 마법을, 이 독서 모임으로 깨달았다. 더불어.. 남의 자랑을 듣는 일은 고역이지만 내 자랑을 내가 쓰고 내가 읽는 일은 꽤 재밌었다. (이 글의 한 문장: 내가 하는 내 칭찬은 나의 하루를 '기특'과 '기쁨'으로 채운다.)
어디에 내어놓아도 안 빠지는 '누구'와 어디에 내어놓아도 다 빠지는 '누구'의 이야기! 촌철살인과 살신성인으로 가족의 웃음을 도모했던 웃픈 과거를 담았다. 게다가, 이런 글을 쓰다 보니 내가 나를 사랑한다는 엄청난 사실까지 깨닫고야 말았다(!) (이 글의 한 문장: 그래도 어느 한구석 빠지는 데가 없는 삶보다 어디 나사 하나 빠진 녀석처럼 헐렁한 내가 좋다.)
나의 마음을 아름답게 채워 주던 드라마가 어제 종영하였다. (아, 허전해라~) 그 허전함을 달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나를 위로하는 글을 쓰는 일. 그래서 '마지막 회'가 주는 위로는 어떤 모양인지 이 글에 담아 보았다. 나중에 '위로일지' 매거진을 만들어서 거기에 한 꼭지로도넣어야겠다~!
'마지막'은 무엇일까. 아쉬움일까, 해방일까. 아니면 둘 다일까? 어떤 끝이든 끝이 있다는 것은 적잖은 위로, 그리고 선명한 위로가 된다. 좋아하던 드라마 하나가 끝나서 아쉬웠던 어제였지만, 그만큼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해방감도 있다. '최종'이라는 것의 위로를 전할 수 있었기에 이 글이 나에겐 이번 주 3위의 글.
2월 3주 차에는 4~5개의 글을 계획한 대로 썼다. 역시 계획표는 좋은 거구나. 확실히 나침반이 되어 준다.
자, 그럼, 이제는 내다보기.
2월 4주 차, 나는 어떤 글을 쓰면 좋을까?!
그저 그런 일요일 밤이,
글쓰기 계획표만으로도 풍성해진다.
일주일의 '최종화'가 나의 이 글 '돌아보고 내다보고2'로 마무리되니,
내가 되레 일주일의 마지막에서선명한 위로를받는다.
오늘 밤의 추천곡
(내 글 '최종화의 위로'에 나오는 <밤에 피는 꽃>, 그 드라마에 등장한 배우 이종원 님이 추천한 노래, <Half-moon ba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