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끼리 명절에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가 만 여덟 살에 불과한 쌍둥이 조카에게 쌍둥이 자식이 생기는 상상까지 해 버린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첫째 조카가 꺼낸 말.
"(입안에 과일을 우걱우걱 넣으며) 근데 내가 신부님이 될지도 모르잖아. 그럼 쌍둥이 못낳을수도있어."
이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도란도란하던 분위기에 침묵의 공기가 옅게 떠오르더니, 먼저 제 아빠가 말을 꺼낸다.
"(아빠 왈) 아빠는 반대."
"(엄마 왈) 평소 말씀하시길, 할아버지도 반대래. 엄마는... 음, 엄마는 글쎄. 잘 모르겠다."
"(할아버지 왈) 그래, 맞다. 할아버지도 반대야."
할머니와 이모는 섣불리 의견을 보태지 않는다. 사실 이모인 나도 반대하는 그 마음을 이해한다. 조카가 혼자 외로이, 신(神)만을 섬기며 사는 것을, 그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프다. (눈물까지 나는 오지랖 이모.) 하지만 반대한다고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그 일은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는 종교적인 이야기이므로 비종교인 주의 필요. 공감 불가 내용이 나올 수 있음.)
어쩌다 보니 천주교 집안이 모두 모이는 자리에 첫째 조카가 참석한 일이 있었다.
"(이모의 대전 외삼촌 왈) 그래, 성당을 열심히 다닌다고?"
"네."
"그럼 용돈 줘야지."
무려 5만 원을 턱 내어 주셨다.
"(이모의 대전 이모 왈) 성가대까지 하고?"
"네."
"성가대 하면 하느님 족보에 오르는 거여."
"아, 네."
"(쌍둥이 엄마 왈) 일주일에 한 번씩 '매일미사' 읽고 말씀 카드에 말씀 하나씩 적는 게 있는데, 일 년 동안 한 번도 안 빠트려서 보좌신부님께서 묵주 선물이랑 상장도 주셨어요."
엄마가 대리 자랑을 한다.
"(이모의 대전 이모 왈) 그래, 커서 신부님 하면 되겠다. 신부님 되면... (어쩌고저쩌고)"
"음.. 그건... 제가 커서 한번 고민해 볼게요."
고민만 해 본다더니 그 당시 주변 사람들의 세뇌(?) 때문인지 정말 고민을 했던 첫째 조카. 사실 희한하게도 평소에 첫째 조카를 통해 신의 발자취를 느낄 때가 있어 깜짝 놀라곤 한다. 이것은 다른 일화.
"엄마, 나 물 먹고 싶어."
잠을 자려다 말고 조카가 잠자리에서 자기 엄마에게 물을 부탁한다.
"알았어. 갖다줄게."
(엄마가 물을 가져왔고 조카는 물을 한 모금 마신다. 그사이 엄마는 다른 것을 가지러 간다.)
"엄마, 내가 방금 하느님 잘 지내셔요, 라고 물었어. 그런데 내가 물을 마시면서 이야기해서 그런가 대답이 없으시네."
"아, 그랬어?"
그러고 나서 엄마가 다시 방을 나갔다 온 사이.
"엄마, 내가 다시 물어봤어."
하느님, 잘 지내세요?
"그랬더니, 그러시더라."
"뭐라셨는데?"
나~~ 잘 있다아~~~
이 이야기를 쌍둥이 엄마인 동생을 통해 전해 들었다. 듣자마자 가슴이 찌르르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성당을 다닌 나지만, 나는 맨날 '뭐 좀 해 주세요. 잘되게 해 주세요. 왜 그러신 거예요. 절 이 고통에서 건져 주세요. 잘 먹고 잘살게 해 주세요.' 뭐 이따위(?) 소원만 빌었던 것 같은데 첫째 조카는 소원을 비는 대신... 신에게 안부를 물었다. 잘 지내시냐고. 이모가 조카에게 되레 부끄러웠다.
그런 첫째 조카가 갑자기 명절 밥상머리에서,
"내가 신부님이 될지도 모르잖아."
라는 말을 꺼낸다. 학교 과제로 '직업 인터뷰'를 해야 했을 때도 신부님께 가서 '사제 인터뷰'를 진행했던 첫째 조카다. 신나게 이모랑 뛰어놀 때도 갑자기 자기도 모르게 성가를 부른다거나, 피아노를 치다가도 성가의 멜로디를 연주해 버리는 첫째 조카. 그런 첫째 조카에게 우리 가족은,
"우리는 신부님 되는 것 반대."
조카가 제대로 된 첫 꿈을 꺼내는데 우리는 이렇게 말하고야 만다. 잘한 일일까. 어떤 꿈이든 입 밖으로 나온 꿈은 일단 응원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것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살겠다는 그 나름 성스러운 직업인데...
세상이 찬성하는 직업은 그럼 대체 무엇일까. 비단 사제나 목사, 스님이 되는 것만을 은근슬쩍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은 나를 내어주는 직업에도 인색하다. 돈을 잘 벌지 못한다거나 남들이 우러르지 않는 직업에도 야박한 인식을 지니곤 한다.나 역시, 어린 친구들이 전 뭐가 되어야 할까요, 라고 내게 물을 때면 은연중에 잘 먹고 잘사는 직업을 추천하려 했다. 그때 내가 아이들에게 전했던 말들을 도로 거둬들여야 하는 건 아닐까, 꿈은 웬만하면, 힘을 받고 응원을 받아야 하는 건데.
"그럼 넌 신부가 돼라."
"음. 그것은 제가 커서 한번 고민해 볼게요."
"근데 그건 네가 고민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야. 그건 신께서 정하시는 일이지."
당시 사촌 오빠 두 분이 신부님이라는 대전 외숙모께서 나의 첫째 조카에게 한 말이다. 내가 되고자 해도 '하시고자 하는' 일이 아니면 아니 될 수도 있다는 뜻.
오늘 너무 종교적인 이야기가 길었다.
왜 그런지 모르게 쌍둥이를 곁에서 키우고 지키고 귀여워하면서 문득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할 때가 많았다. 만일 내 사랑 쌍둥이 조카가 신부님이 된다고 하면...
어쩌지?
어쩌지, 가 아니라, '좋겠다!'여야 하는데 그게 마음대로 잘 안된다. 그 길이 너무 길고 고되고 무척이나 '홀로'여야 할까 봐. 하지만 혹시 조카가 훗날 다시 내게 물어본다면...
"그럼 난 찬성!"
우선 말이라도 이렇게 해 주리라. 누군가의 위대한 꿈을 사뿐히 지르밟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신부님이 되든 애 아버지가 되든, 내 조카가 그저 자신의 꿈 안에서 행복하기만 하면 된다. 자신의 사명감이 꿈에 맞닿아 있다면, 그것으로 나는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