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는 압니다
지난 이 년 동안 우리가 농장에서 키워 온 카카오가......,
잠들지 못하는 도시 아이들을 위한 거였다는 뜻인가요? (234쪽)
우리가 이 열매를 왜 따는지, 누가 이걸 원하지는 모르겠다. 농장 주인들은 이런 얘기를 절대로 해 주지 않는다. (...) 언젠가 여기저기 물어보았지만, 다들 어깨만 으쓱거렸다. 여기에서는 아무도 모른단다. 우리가 아는 거라고는, 도시 사람들이 이 씨앗을 원한다는 것뿐이다. (43)
하디자가 탈출에 성공했을 때, 아니면 도로 잡혀 왔을 때, 둘 중 어느 쪽이 더 화가 날지 짐작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잡혀 왔으면 좋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사장이 하디자를 두들겨 패는 데 힘을 다 쏟아야 내 차례 때는 녹초가 되어 있을 것 아닌가. 사장이 열받은 정도로 보아, 어쩌면 하디자는 오늘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
그때 갑자기 슬픔이 밀려와 가슴께가 저릿했다. 그러다 깜짝 놀랐다. 사람이 죽는다는 건 딱한 일이지만, 하디자가 죽는다고 해서 슬픔을 자아낼 만큼 내게 의미 있는 존재는 아니잖은가. 나 또한 그 애에게 의미 있는 존재는 아니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마음속 맨 밑바닥에서는 하디자가 무사히 도망갔기를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 넌 왜 도망치지 못했느냐고 계속 비웃음을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61)
"네가 왜 쓸모없어? 내가 삶을 포기하지 않은 유일한 이유가 바로 넌데..."
"나도 그래."
"잠깐만요. 그러니까 카카오 농장에서 우리가 기른 열매가 이거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아뇨, 아줌마가 잘못 알고 계세요. 그건 카카오예요."
"그래, 네가 키운 건 카카오가 맞아. 바로 그걸로 코코아랑 초콜릿을 만드는 거야. 카카오 씨앗을 발효시켜서 다른 나라로 실어 보내잖니? 그 콩을 볶아 코코아 페이스트로 만들면 코코아 가루랑 코코아 버터가 나오거든."
"그러니까... 아줌마 말씀은 지난 이 년 동안 우리가 농장에서 키워 온 카카오가....., 잠들지 못하는 도시 아이들을 위한 거였다는 뜻인가요?"
코코아 향기가 다시금 나를 덮치자, 이번에는 입에서 아까와는 다른 맛이 느껴졌다. 이것은 더 이상 잠 못 드는 밤을 달래는 달콤한 향기가 아니었다. 돈 한 푼 받지 못한 채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는 고통의 냄새, 아무리 일해도 매질을 피할 수 없는 공포의 냄새였다. 구역질이 훅 치밀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