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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Feb 22. 2024

나는 초콜릿의 달콤함을 모릅니다

카카오는 압니다

지난 이 년 동안 우리가 농장에서 키워 온 카카오가......,
잠들지 못하는 도시 아이들을 위한 거였다는 뜻인가요? (234쪽)


(스포 주의)



제목

나는 초콜릿의 달콤함을 모릅니다



저자

타라 설리번



콘셉트

1. 초콜릿의 달콤함과 카카오 (농장)의 씁쓸함을 대비

2. 빈민 이동의 노동 및 인권 착취

3. '우정'과 '인간다움'의 동반 성장



예상 주제

모든 아이를 위한 진짜 초콜릿은 과연 어디 있는가



상 독자

1. 핵심 독자: 먹을 복에 겨워 입이 짧아진 금쪽이들

2. 확대 독자: 초콜릿을 그저 달콤하다고만 여겼던 이들

2. 추천 독자: 아동 인권에 관심이 막 생겨나기 시작한 사람들



함께 읽으면 좋을 책

시빌 파운더《웡카》, 빅터 프랭클 《청소년을 위한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 헤르타 뮐러 《숨그네 , 이꽃님 《행운이 너에게 다가오는 중



해시태그

#카카오농장 #빈곤아동 #아동착취 #인권유린 #빈부격차 #노동착취 #위험한칼'마체테' #말리 #코트디부아르 #밤바리어 #우정 #형제애 #인류애 #아동학대 #동반성장 #아동연대



필사

우리가 이 열매를 왜 따는지, 누가 이걸 원하지는 모르겠다. 농장 주인들은 이런 얘기를 절대로 해 주지 않는다. (...) 언젠가 여기저기 물어보았지만, 다들 어깨만 으쓱거렸다. 여기에서는 아무도 모른단다. 우리가 아는 거라고는, 도시 사람들이 이 씨앗을 원한다는 것뿐이다. (43)

우리가 누리는 달콤함이 누군가의 삶을 철저히 착취해서 얻은 결과물이라면?


하디자가 탈출에 성공했을 때, 아니면 도로 잡혀 왔을 때, 둘 중 어느 쪽이 더 화가 날지 짐작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잡혀 왔으면 좋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사장이 하디자를 두들겨 패는 데 힘을 다 쏟아야 내 차례 때는 녹초가 되어 있을 것 아닌가. 사장이 열받은 정도로 보아, 어쩌면 하디자는 오늘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
그때 갑자기 슬픔이 밀려와 가슴께가 저릿했다. 그러다 깜짝 놀랐다. 사람이 죽는다는 건 딱한 일이지만, 하디자가 죽는다고 해서 슬픔을 자아낼 만큼 내게 의미 있는 존재는 아니잖은가. 나 또한 그 애에게 의미 있는 존재는 아니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마음속 맨 밑바닥에서는 하디자가 무사히 도망갔기를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 넌 왜 도망치지 못했느냐고 계속 비웃음을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61)

제대로 된 인간으로 살지 못하는 환경 속에서도 아직 남아 있던, 일말의 인류애와 우정의 부스러기들. 우리의 '아마두'는 과연 앞으로 사람을 믿을 수 있을까.


"네가 왜 쓸모없어? 내가 삶을 포기하지 않은 유일한 이유가 바로 넌데..."
"나도 그래."

어린 동생 '세이두'만 없었다면 형 '아마두'는 이 지옥 같은 농장에서 더 쉽게 도망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끝까지 '아마두'는 자신도 동생도 포기하지 않았다. 삶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가 분명히 존재했기 때문이다.



독단적 최종 리뷰


독후감 쓰려고 재독한 책인데.. 이게 뭔가.. 두 번 읽으니 더 쓰리고, 더 와닿고 더 감동;; 처음 읽었을 땐 초반에 확 몰입, 후반에는 약간 '갑자기?' 이랬는데... (그땐 약간 갑작스러운 해결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다시 읽어 보니 그럴 만했고, 그 나름 촘촘한 구성이었다. 다시 이 책을 읽기로 한 나를 칭찬하고, 반면에 두 번째 읽는데도 카카오 농장에서 벌어진 일을, 그새 까마득히 잊은 나를 스스로 책망해 본다.


이 소설은 두 가지 대립 구도가 나온다. 초콜릿과 카카오의 대비, 그리고 빈민 아동과 도시 아이들의 대조된 삶. (심지어 카카오 농장에서 같이 일하게 된 '동료' 아동들 사이에서도 이 격차가 여실히 드러난다.) 초콜릿과 카카오는 본질이 같다. 또한 빈민국이든 대도시든 '아이'라는 점은 분명 공통점이다. 그러나 그 동질적인 본질이 결코 같지 아니함을 이 소설은 보여 준다.

초콜릿은 카카오 농장의 아동 착취를 기반으로 태어난 화려한 간식이다. 그 간식은 잠들지 못하는 도시 아이들의 달콤한 잠을 위한 것이었다. 게다가 그것은  '아마두'와 '세이두'의 2년을, 그리고 두 형제의 육체와 영혼을 앗아가려던 '용의자'이기도 하다.


"잠깐만요. 그러니까 카카오 농장에서 우리가 기른 열매가 이거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아뇨, 아줌마가 잘못 알고 계세요. 그건 카카오예요."
"그래, 네가 키운 건 카카오가 맞아. 바로 그걸로 코코아랑 초콜릿을 만드는 거야. 카카오 씨앗을 발효시켜서 다른 나라로 실어 보내잖니? 그 콩을 볶아 코코아 페이스트로 만들면 코코아 가루랑 코코아 버터가 나오거든."
"그러니까... 아줌마 말씀은 지난 이 년 동안 우리가 농장에서 키워 온 카카오가....., 잠들지 못하는 도시 아이들을 위한 거였다는 뜻인가요?"
코코아 향기가 다시금 나를 덮치자, 이번에는 입에서 아까와는 다른 맛이 느껴졌다. 이것은 더 이상 잠 못 드는 밤을 달래는 달콤한 향기가 아니었다. 돈 한 푼 받지 못한 채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는 고통의 냄새, 아무리 일해도 매질을 피할 수 없는 공포의 냄새였다. 구역질이 훅 치밀어 올랐다.


지금 나의 책상에는 겉면에 초콜릿이 달콤하게 밴 과자 하나가 놓여 있다. 아마 이 독후감 쓰기가 끝나면 그 과자를 입안에 넣으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만 더 오래 '아마두'를 기억해 보려 한다. 책장을 덮자마자 세이두, 아마두, 하디자를 잊어버렸던 옛날의 나(처음 이 책을 읽었던 나)를 떠올린다. 세상의 아픈 장면을 다시 읽어야만 누군가가 조금이나마 편히 먹고 잘 수 있다면... 두 번이고 세 번이고 계속해서 그 책장을 넘겨야 하는 것이 아닐까.


'밸런타인데이'가 있었던 지난주, 우연히도 딱 나의 눈과 마주쳤던 책, 《나는 초콜릿의 달콤함을 모릅니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 '초콜릿'이 아닌 '카카오 열매'로, '코코아'가 아닌 '위험한 도구, 마체테*1'로 기억되길 바란다.

(*1 마체테: 카카오 농장의 아동 노동자가 사용하는 칼, 아동 노동 근절에 관한 유엔 협약을 위반하는 위험한 도구, 휘두를 때마다 살이 잘릴 위험에 노출된다고 함. 출처: *2의 기사)



 

참고 링크

1. 기사(*2): 아이의 절규 "사람들이 초콜릿 먹으면 내 살을 먹는 것" [ESG 세상] : 네이트 뉴스 (nate.com)

2. 저자의 누리집: Tara Sullivan | Author of Books for Young Adults (tarasullivanbook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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