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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Mar 12. 2024

시작이 힘들 땐, "뛰면 돼."

시작의 굴레가 돌아간다. 다시 새 학기가 시작되었고 나는 프리랜서 강사 일을 올해도 간간이 이어 가기로 결정하였다. 사실 소양이 부족한 일을 자진해서 하겠다고 또 나선 참이다. 그 뒤에는 모종의 이유가 있다. 돈과 명예, 지위 등등. 모종(某種)의 이유는 늘 그렇듯 우리의 삶을 옥죈다.


다른 것을 다 차치하고서라도 심각한 문제가 하나 있다. 심히 내향인인 내가 여기저기서 큰 목소리를 내야만 한다는 것. 나란 사람, 자기 목소리를 우렁차게 내지르는 일은 브런치에서나 혹은 일기장에서나 가능한 사람이다. 글 뒤로 숨어서는 잘도 외쳐 대지만 사람들 앞에서는 영...


"질문할 거 있으면 해 보세요."

"더 하실 말씀 없으세요?"

이런 질문이 난감하다. 숲도 보지 못하고 나무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된 것만 같다. 아무 질문이나 해 보지만 내가 생각해도 어설프다. 쥐구멍을 찾고 싶지만 직장에서는 어디 도망갈 구석조차 없다. 도망가려다 붙들려서 재입사 비슷한 것을 한 전력까지 있는 나다.


"교안을 좀 급히 만들어 주셔야겠어요. 강사분들끼리 의논 좀 해 주세요."

기관에서 겨울방학 때 실감 체험관을 새로 만들었다고 한다. 해당 교안 및 시나리오를 작성해야 한다며 갑자기 재촉하니 덩달아 조급함이 차오른다. 시작하자마자 전속력으로 달려야 하는 느낌이다.

 "언제까지 할 수 있으시겠어요?"

부속 체험관이 새로 생겼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알았는데 되도록 빨리 정식 교안과 수업 시나리오를 완성해야 한다니 난감하다. 다른 강사분과 눈을 마주치며 최대한 넉넉한 일정을 가까스로 요청해 본다.



세상은 늘 내게 새로운 과제를 준다. 작년에 이미 진행했던 우리말 전시관 프로그램이었는데 무언가 또 달라졌다고 한다. 새로운 모험이 위태롭게 문을 연다. 내디디기로 하였으니 뒤로 돌아설 수도 없다. 조금은 떨리는 마음으로 손잡이를 밀어젖힌다.


'휴우.'

겨우 OT와 회의를 마치고 직장을 나선다. 작년에도 능숙히 해내지 못한 강사 일이었다. 미해결된 과제를 가지고 올해로 넘어왔다는 생각이 들어 '시작'이란 것이 자꾸만 어렵게 느껴진다. 이럴 땐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왜 내가 잘하는 일로만, 왜 내가 하고 싶은 일로만 돈을 버는 일이 이렇게 쉽지 않은 거지? 애꿎은 원망을 스스로에게 건넨다.)



"나 뛰고 올게."

가족들에게 '일시 가출'을 알리고 운동화 끈을 동여맨다. 달리기 관련 책에서 읽은 대로 아래에서 세 번째 구멍부터 다시 운동화 끈을 세 번 더 세게 조인다. 발에 착 달라붙는 느낌이 예사롭지 않다. 왠지 느낌이 좋다. 이렇게 세게 조이고 나면 어디든 이 두 발로 달려갈 수 있을 것만 같다. 그곳이 미지의 세계든 모험의 세계든, 어떤 위태로움의 세상이든 간에.


"뛰고 왔어?"

"어! 너무 시원해!"

걸을 땐 바람이 좀 차가웠지만 달릴 땐 바람이 시원했다. 걷기만 할 땐 못 느끼던 나의 오장육부가 내 온몸에서 들썩인다. 어제의 무력함과 오늘 아침까지의 소란스러운 고민들이 잠시 가라앉는다. 이렇게 달리고 나면 가라앉은 고민들을 조금씩이나마 제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뛰면 돼!"

나 자신에게 말해 준다. 시작이 어려울 땐 우선 시작해 보라고, 어떻게 달려야 지 걱정만 하다 보면 정작 달리는 법은 알 수 없게 된다고.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고민만 하지 말고 우선 시작해 보는 용기, 신발 끈을 조금 더 세게 조이는 용기를 내야겠다.



뛰다 보면 예상치 못한 바람도, 구름도, 하늘도 만나겠지.

그 모든 것이 무작정 아름다울 날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젠...


"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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