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녀석과 지난겨울 내내 사랑에 빠졌다. 24시간이 모자라~ 할 정도로 붙어 다녔다. 우리 집이 좀 많이 춥다. 조금 과장하여 말하자면 우리 집은 겨울이 거의 반년이다. 10월 말부터 4월 초까지 우리 식구는 겨울을 산다. 장판 없이 온통 바닥이 강화마루라 발이 더 시렵다. (옛 주인이 그렇게 시공을 해 놓아서 빼도 박도 못 하고 그대로 살고 있다.)
아파트 한 동이 덩그러니 있어서 사방이 외벽이다. 여름에 시원하지만 겨울엔 '더 더 시원'해서 발이 움츠러든다. 낮에만 이 녀석을 품는 것이 아니고 잘 때도 이 녀석 안에 발가락을 꼼지락꼼지락 집어넣는다. 녀석 없인 정말 못 사는 지경에 이르렀다.
겨울 초입,겨울을 날 방법으로 엄마는 '버선'을 떠올렸다. 우리 모녀는 시장에 가서 한 켤레당 거금(?) 4,000원을 주고 색색의 버선을 모셔 왔다.
(사진에 나온 버선 외에도 초록, 자주 등등 더 다양한 색이 있다.)
엄마가 이 버선들을 동생에게도 선물하였는데, 조카들 눈에는 더더욱 신기한 모양이었다.
"이게 뭐야?"
이것의 활용법은 조카들에게서 더더욱 새로워졌다. 머리에 모자처럼 쓰고 다니질 않나, 손에 넣고 권투 장갑처럼 활용하며 나에게 결투를 신청하지를 않나. 정말 아이들의 시선은 남다르다. 어찌 보면 크리스마스 트리에 딱 어울리는 양말 같기도 하다. 양말처럼 생겼지만 양말보다는 거대하다. 발목까지 올라온다. 그래서 따스하다.
버선은 사시사철 신어도 좋겠지만 특히나 내 입장에선 겨울에 안성맞춤으로 어울린다. 혈액순환이 잘 안 되고 평생 손발이 차가웠던 나. 엄마의 지혜 덕분에, 그리고 버선의 온기 덕분에 겨우내 따듯했다. '버선목'이 상당히 높은 곳까지 발을 감싸 주어 시린 지 모르고 겨울을 보냈다.
그리고 버선이 지닌 의외의 매력! 버선을 신으면 좀 재밌다. 단점일 수도 있지만 우리가 산 버선들은 미끄럼 방지가 없다. 그래서 마루 위를 미끄러지듯 재빨리 이동할 수 있었다. 그러다 결국 이런 꼴로 생을 마감한 녀석도 있다;;
그랬던 나의 버선들이 슬슬 동면에 들어갈 준비를 한다. 녀석이 내게 "다음 겨울에 깨워 줘~"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가장 낮은 곳에서 나를 지켜 주었던 버선. 부려만 먹고 제대로 돌보지도 않아 구멍만 잔뜩 나게 만들었지만 염치없이 또 한 번 부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