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 친척분들은 (나 빼고) 가장 젊은 분이 이미 몇 해 전 환갑을 넘긴 분이셨고, 대부분은 칠십 대와 팔십 대인 분들이셨다. 아직도 현역으로 제사 음식을 준비하시는 큰어머니와 고모를 도와 나는 목기를 닦고 설거지'나' 하고 재빠르게 차를 타 드리는 일'만' 하다 왔다. (그래 놓고도 이 나이에 용돈을 받고 큰 칭찬을 받았다. 심지어 나는 거기서 '아기'라고도 불렸다.)
(마당에선 봄동과 머위꽃이 나를 반겼다,)
그러다 섬이 고향인 친척분들에게서 이런 대화가 오고 갔다.
"○○○ 죽었댔지?"
"아니요.○○○는 안 죽었어요."
다른 사람은 죽었지만 ○○○는 안 죽었단다. 그 말이 나의 마음 어딘가에 꽂혀서 위와 같이 저런 허접한 시 아닌 시를 급히 쓰게 되었다. 웃프기도 하고 좀 쓸쓸하기도 한 "○○○는 안 죽었어요."
그곳에서는 단연 '건강'이 화두였다. 나이 드신 분들 사이에서 귀를 쫑긋하는 일이 많아서인지 '살 때까지 두 다리로 걸어다녀야 한다'라거나 '병보다 치매가 더 무섭다'라거나, 요즘 먹는 '영양제'에 관한 소개라거나. 그분들 사이에선 이런 이야기가 주로 오간다. 나도 언젠가는 친구들과 주로 이런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아니 머잖았겠지.
"○○○는 안 죽었어요"
다행이다. ○○○는 아직 죽지 아니하고 목련이 피는 것도 벚꽃이 피는 것도 볼 것이다.
남쪽은 벌써 목련과 벚꽃이 피었더라
다행이다. 나도 아직은 죽지 않고 살아 있다. 살아서 부모님과 또다시 이번 여름(이번엔 할머니 제사)에도 이 '제사 여행'을 할 예정이다. 앞으로 몇 번이 남았는지 숫자를 세지는 않을 것이다. 아주 오랫동안 숫자를 셀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나는 '가장 어린 어른'이 되는 그 제사 자리에서, 또 한 번 더 설거지를 하고 목기 위에 밤이나 곶감을 실어 제사상으로 분주히 나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