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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Mar 24. 2024

○○○는 안 죽었어요

○○○는 안 죽었어요



오랜만에 모인 길,

고향의 안부를 묻다가

"이제 다 갔어."


하나둘셋넷...

숫자를 처음 배우는 심정으로 누가 누가 죽었나 손을 꼽다가,

제사상 앞에 앉아

조금 전에 가 버린 이들에게 뒤늦게 안부를 전하는


하나둘셋넷,

이제 하나둘 다 가네,

남은 날을 세듯 숫자를 세며

 그럼 고향에 남은 사람은 누구누구더라


○○○도 죽었다고 했지?

큰아버지가 물으니,


"아니요. ○○○는 안 죽었어요."

고모가 저 멀리서 제사상에 대고 대답한다.


본의 아니게 타인의 입술 사이에서

이승과 저승 사이를 곡예하듯 오르내린다


아직 안 떠난 사람들까지,

제사상 앞에서 미리 이름을 올린다


누구나 가는 길

아직 떠나지 않은 길


그래도 ○○○는 아직 안 죽었어요





어제와 그제 남쪽 지방으로 제사를 지내러 다녀왔다.


그곳 친척분들은 (나 빼고) 가장 젊은 분이 이미 몇 해 전 환갑을 넘긴 분이셨고, 대부분은 칠십 대와 팔십 대인 분들이셨다. 아직도 현역으로 제사 음식을 준비하시는 큰어머니와 고모를 도와 나는 목기를 닦고 설거지'나' 하고 재빠르게 차를 타 드리는 일'만' 하다 왔다. (그래 놓고도 이 나이에 용돈을 받고 큰 칭찬을 받았다. 심지어 나는 거기서 '아기'라고도 불렸다.)



(마당에선 봄동과 머위꽃이 나를 반겼다,)


그러다 섬이 고향인 친척분들에게서 이런 대화가 오고 갔다.

"○○○ 죽었댔지?"

"아니요. ○○○는 안 죽었어요."


다른 사람은 죽었지만 ○○○는 안 죽었단다. 그 말이 나의 마음 어딘가에 꽂혀서 위와 같이 저런 허접한 시 아닌 시를 급히 쓰게 되었다. 웃프기도 하고 좀 쓸쓸하기도 한 "○○○는 안 죽었어요."


그곳에서는 단연 '건강'이 화두였다. 나이 드신 분들 사이에서 귀를 쫑긋하는 일이 많아서인지 '살 때까지 두 다리로 걸어 다녀야 한다'라거나 '병보다 치매가 더 무섭다'라거나, 요즘 먹는 '영양제'에 관한 소개라거나. 그분들 사이에선 이런 이야기가 주로 오간다. 나도 언젠가는 친구들과 주로 이런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아니 머잖았겠지.



"○○○는 안 죽었어요"

다행이다. ○○○는 아직 죽지 아니하고 목련이 피는 것도 벚꽃이 피는 것도 볼 것이다.


남쪽은 벌써 목련과 벚꽃이 피었더라



다행이다. 나도 아직은 죽지 않고 살아 있다. 살아서 부모님과 또다시 이번 여름(이번엔 할머니 제사)에도 이 '제사 여행'을 할 예정이다. 앞으로 몇 번이 남았는지 숫자를 세지는 않을 것이다. 아주 오랫동안 숫자를 셀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나는 '가장 어린 어른'이 되는 그 제사 자리에서, 또 한 번 더 설거지를 하고 목기 위에 밤이나 곶감을 실어 제사상으로 분주히 나를 것이다.



봄봄(=나)은 아직 안 죽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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