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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Nov 07. 2019

아비 팔짱 끼지 마라

아버지라는 손의 온도

아버지, 같이 가요!


아버지는 내가 정답게 구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신다. 아니, 좋아하시지만 겉으로는 내색이 없으시다. 서른이 다 되어서도 나는 아버지와 걸을 때면 으레 팔짱을 꼈다. 그러나 그로부터 여러 해가 흐르고 아버지에게서 나는 이런 말을 들었다.



아버지 팔짱 끼지 마라.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팔에 내 팔을 걸치면 무언가 탁, 안심이 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오래 아버지의 팔짱을 끼고 다녔다. 아버지는 늘 나를 앉혀 놓고 ‘사람은 혼자다’를 주장하셨다. 그런데도 나는 속으로 다른 생각을 다. 사람이 혼자긴 해도 나에겐 금쪽같은 가족들이 있다고, 그들에겐 언제나 기대도 된다고, 그들이 나의 든든한 뒷배로 존재한다고 굳게 믿었다. 늘 가족들의 팔짱을 끼고 이 사람에게 팔을 걸치고 저 사람에게 팔을 걸쳤다. 내 안에 걸치고 있는 문제들도 가족과 의논을 해야 내 마음이 편했다.     



-아버지, 저 그만두어야 할 것 같아요.

-잘 생각해 봐라.

-견디기가 힘드네요. 제가 일을 좀 못하나 봐요.

-더 생각해 봐.

-생각 많이 했어요. 사실 저 7월부터 관둘 생각하고 있었어요. 사람이 힘든 건지 일이 힘든 건지도 이젠 구분이 안 돼요. 그냥 모조리 다 놓고 싶어요.

-너만 힘든 게 아니라 상대도 너로 인해 힘들었을 거야.

-아, 아버지……. (제가 지금 듣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니잖아요.)

-너도 일한 지 1년이 넘었는데 혼자서도 잘 헤쳐 나갈 만큼은 되었어야지.



때로는 위로가 필요한 위기의 순간이 있다. 그 순간에 아버지는 말없이 나타나셔서 내 등을 두드리시다 말고, 느닷없이 ‘너 때문에 상대도 힘들었을 걸?’이라고 말씀하신다. 두들겨 주시는 아버지 손을 살포시 떼어내고 다시 말을 잇는다.


-잘하는 사람 옆에 있으니 그저 그림자처럼 일하는 게 오히려 답인 줄 알았는데 그게 오히려 일을 망치는 일이었나 봐요. 바보 같이 일해 왔나 봐요. 그냥 열심히만 하면 될 줄 알았어요.

-그럼 진짜 네 생각은 어떤 거냐? 언제까지 일하고 싶은 건데?

-저 사실은, 지난여름부터 그만하고 싶었어요. 벌써 5개월째 억지로 억지로 견디고 있어요. 이번 겨울에는 정말 그만두고 싶어요.


어머니와 아버지는 갑작스러운 딸의 고백에 ‘하지만’과 ‘그렇게 해라’라는 두 가지 대답 사이에서 고민하셨다. 처음에는 관계의 늪이 일의 늪으로 이어지는 이 고단한 정글이 너무 버거웠다. 이 말을 전하는 딸에게 부모님은 ‘당장 그만해라’라고 말씀해 주기도 하셨다. 하지만 이 딸내미도 부모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는 게 과연 답일지는 조금 더 찾아봐야 한다는 사실을…….     



-회사 다닐 때였어. 밑에 있는 사람이 일을 그르쳤어. 나쁜 사람은 아니었고, 돈을 빼돌릴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았는데.. 제대로 영수증 처리를 못했는지 어쩐지 그 사람의 실수 아닌 실수로..  

-어머. 아부지, 그래서 그 일은 어떻게 해결됐어요?

-그때 난 정년이 아주 많이 남았었지만 내가 퇴직을 해서 퇴직금으로라도 그걸 충당하고 나가 버릴까도 생각했지. 1년간 그 일로 고통을 받았어. 다행히 회사 측에서 해결을 해 주었지만.

-1년이나요?     


아버지는 1년을 시달리셨다. 퇴직과 고통 사이에서 번뇌로 휘둘리셨을 아버지를 지금에서야 본다. 아버지는 그때 40대나 50대 초반의 나이셨을 것이다. 하필 토끼 같은 자식들 밑으로 돈이 술술 들어갈 나이였다. 지금 보니 그때의 아버지와 나의 나이는 별 차이가 없다. 회사의 돈 문제를 선뜻 해결하기에 아버지는 한참 미숙하고 젊은 나이였다. 아버지는 자신의 삶을 ‘도망’으로 결론 내리지 않으셨다. 그에게는 토끼 같은 자식이 둘이나 있었다.



아버지는 다른 누구의 팔짱도 끼지 못한 채 홀로 고민하고 견뎠다. 아마 ‘가장’이라는 타이틀을 지키는 일도 고독했을 것이다. 잠시 내려놓아도 좋다고 누군가 우리 아버지에게 휴식을 허락해 주었다면 아버지의 삶이 조금이라도 덜 고됐을까. 철부지 딸들을 먹여 살리느라, 그리고 여전히 철부지인 마흔 딸내미의 ‘백수 희망기’나 듣고 있느라 지금도 한숨이 늘어지실 우리 아버지. 언제까지 이 아버지는 딸내미의 철갑 같은 팔짱을 꽉 낀 채 마치 죄수처럼 그렇게 가족의 팔짱에 갇혀 사셔야 하는 것일까.



      

아직도 방황하며



일흔입니다.

아직도 방황하며, 후회하며, 고독한 몸짓은,

그 나이에 걸맞지 않습니다.

-이제 나를 놓아주어야 합니다.

왜 그렇게 부끄럽게 살았을까.

가끔, 실패한 인생이라고 자조했습니다.

그 나이의 허무와 좌절감은, 어쩔 수 없는 본능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고독입니다.

그 고독은 칠십 년 동안 내 삶을 공유해 왔습니다.

이제 그 고독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합니다.

그 나이입니다.

2010. 8.




내 아버지의 글대로 그만두어도 그만두지 않아도 후회하고 방황하며 살 수밖에 없는 게 인생일까. 퇴사가 벼랑 끝은 아닌데 어쩐지 그때의 나는 제 발로 낭떠러지로 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언제까지로 정했냐?

 함께 길을 걷다 말고 아버지가 물으신다. 초겨울 산책길, 온도가 낮다고 했는데도 오늘따라 유난히 이 따듯하다.

-아직 모르겠어요, 언제 그만둘지...


차마 오늘 당장이라도 관두고 싶어요, 라는 말을 못하고 꿀꺽 삼켜 버린다. 1년을 참으시고 평생을 가족을 위해 사셨다. ‘홀로’이거나 ‘자유’ 일 수 없었던 아버지 생 앞에서 ‘당장에라도’라는 백수 카드를 꺼낼 용기가 없다. 어쩌면 버티는 것은 더 큰 용기가 필요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아부지.

-왜?

-그냥요. 날씨가 좋네요.

-그래, 겨울이 오는데도 날이 좋네.



오랜만에 밤 산책을 나선 길이다. 나란히 걸으며 나는 아버지의 옆으로 달싹 붙는다. 아버지의 단단한 어깨 밑으로 오래되고도 강인한 팔뚝을 본다. 팔짱을 끼지 않은 지 10년이 지났다. 나는 오늘도 아버지의 바람대로 팔짱은 끼지 않는다. 말없이, 어느 팔짱도 없이 줄곧 아버지와 단둘이 나란히만 걷는다. 뜨듯한 침묵이 아버지의 팔과 나의 팔을 조심스럽게 잇는다.      



'아버지, 이제 저, 세상의 팔짱을 끼고 당차게 나아가 볼게요. 언제 다시 아버지 곁으로 돌아와 징징대며 아버지 팔짱을 끼고 싶다고 할지 모르지만요.'

     

오늘도 팔짱 없이 아버지와 팔짱을 끼고 걷는다. 이 길이 언제까지나 포근한 감촉으로 아버지와 나를 이어 주길 희망하여 본다.     



(위의 글은 퇴사 1년 전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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