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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Oct 31. 2019

내 아버지 조도댁, 고운 손으로 설거지를 시작하다

지하철을 타고 달걀을 사러 마트에 갑니다


지하철을 타고 계란을 사러 마트에 갑니다.

엎어지면 코가 닿을 거리에 있는 지하철역에서

한 역만 더 가면, 지하철에 연계된 대형 마트가 있습니다.

나는 무임 경로승차권을 소지하고 있습니다.     


 아내가 건네 준 메모 쪽지를 펴 들었습니다.

 열 알들이 계란 두 줄을, 유통기한이 멀리 찍힌 것으로 골라 바구니에 챙겨 넣었습니다. 유통기한이 멀리 찍혀 있고 색깔이 맑고 선명해야 신선한 계란이라고 아내로부터 교육을 받았습니다.

 부침용 두부도 3모 골라 담았습니다.

 5개 들어 있는 라면 한 봉지에 테이프로 1개 더 붙여 놓은 라면 한 묶음도 챙겼습니다.

 아내를 따라 자주 매장에 오다 보니, 이젠 이력이 좀 붙은 듯합니다. 낯가림 같은 것은 없습니다.

매장 안에는 나 같은 중늙은이들이 바구니를 들고 물건을 고르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눈이 마주치면, 외면하지 않고 인사를 합니다.     


-당신도 마누라 심부름을 왔구먼…….     


심부름을 잘한 어린애처럼, 의기양양한 몸짓으로 현관에 들어섰습니다. 아내가 흡족해합니다.

 오늘 저녁은 묵은 김치에 두부가 듬뿍 들어 있는, 그 위에 계란 노른자가 예쁘게 부글부글 끓고 있는 김치찌개를 먹을 수 있습니다.

그해 여름은 그렇게 가고 있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계란을 사러 마트에 갑니다>


2012. 8. 10.     





 “조도댁님, 부탁합니다요.”

 나는 종종 식사 후 아버지에게 부탁의 말씀을 전한다. 그러면 아버지는 넙죽 그 부탁을 받아 들고 젓가락들로 음식을 조금 헤집은, 혹은 숟가락들로 싹싹 비운 빈 그릇들을 받아 드신다. 나는 분주히 밥상을 치우시는 아버지의 몸짓을 요리조리 피해 가며 TV 속 연예인들의 희희낙락하는 모습을 구경한다. 아버지는 그런 딸의 모습을 무심히 바라보면서 물기 없이 쭉 짠 행주를 밥상 위에 건네신다. 나는 킬킬거리며 연예인들을 따라 웃다가 행주로 밥상을 닦는다.




 안 되겠다. 내가 설거지해야겠네, 앞으로.


내 아버지는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 출신인데, 아버지가 갑자기 조도댁이 된 것은 다 아버지 탓이라고 할 수 있다(고 우겨 본다.) 사실 이 모든 사달은 아버지 아내와 아버지 딸내미의 손에서 시작한다. 모녀의 손이 워낙 ‘고급 손’이라 물기가 닿으면, 게다가 중성세제를 묻힌 수세미라도 닿는 날이면, 손가락 껍질이 벗겨지고 점점 박피가 진행된다. 간질간질해지다가 급기야 주부습진이 되고 조금만 더 방치하면 나무껍질 같이 텁텁해진다. 때로는 피부에 구멍이 나고 피도 찔끔 나온다.


그래서 엄마와 아버지가 ‘더는 안 되겠다’며 결단을 내리셨다. 엄마에게 라면 하나 끓여 드린 일이 없다는 아버지에게 엄마는 식사 후 뒷일을 부탁하셨고, 아버지는 비장한 마음으로 고무장갑 대(大) 자리를 두 팔에 끼우셨다.


그리하여 조도댁이 된 아버지의 손. 그 손은 이상하리만치 강했다. ‘퐁퐁’과 같은 주방세제에도 너끈히 견뎠고, 아무리 물기, 습기를 가득 머금어도 좀체 싫다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출처: pixabay, 내 손가락



 그래서 우리는 아버지를 ‘조도댁’이라 명명하며 식사 후 뒷자리를 맘껏 맡겼다.

 “어이쿠 잘 먹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그냥 할게요’라는 시늉이라도 했었는데 이제는 고무장갑을 낀 아버지 손을 당연히 여긴다. 마치 저 고무장갑은 원래 있어야 할 곳이 내 아버지 조도댁의 두 손이었다는 듯이.


이제 조도댁이 된 지 오래인 우리 아버지는 사실 ‘귀찮음’을 너무 잘 아시는 분이라 한 번 몸을 움직이기가 쉽지 아니하신 분이다. 모녀가 아버지를 꼬여서 어디라도 놀러 갈라치면 ‘둘이서 갔다 와’라고 말해 버리는 아버지다.



어이쿠, 너가 오니 반갑다야.


내가 집에 들어섰을 때 아버지에게서 특히나 반가운 인사를 받는 날이 있다. 이 날은 어김없이 파나 부추를 다듬고 계시는 조도댁을 만나는 날이다. 그 옆에서 메인 주방장인 어머니는 ‘간단히 겉절이 좀 담그려고’라는 말로 널브러지고 싶은 나의 저녁 시간을 살며시 붙드신다. ‘간단히’라는 말 안에 담긴 그 복잡함과 번거로움을 알기에 두 조수, 아버지와 나는 꽁무니를 빼기 일쑤다. 물론 내가 나타나면 아버지는 나보다 더 금세 그 뒤꽁무니가 사라지신다.


 “딸내미 왔다고 그새 또 슬쩍 버리셨구먼?”

이 문장은 엄마의 목소리. 내가 눈에 뜨이면 아버지는 엄마 옆에서 요리 보조를 하시다가도 슬며시 자리를 뜨시고 거실 앞 TV 쪽으로 몸을 옮기신다. 그런 분이 바로 우리 아버지다.


아버지는 ‘귀찮음을 아는 엉덩이’를 지니고 살아온 편이다. 웬만해서는 날렵하고 민첩하게 움직이는 일이 없으신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지금은 그 ‘귀차니즘 엉덩이’를 지니고 분주히 거실 밥상과 부엌을 오가신다. 반찬 그릇을 덮으시고, 남은 국물을 쪼르르 개수대 수챗구멍으로 쏟아내며 음식물 묻은 그릇들을 설거지감으로 만드신다.


출처: pixabay



너희 아버지는 설거지를 다 해 놓고도
늘 뒷정리를 안 하더라.



그러나 설거지  초보인 조도댁은 그렇게  '열일'을 하고도 쉬이 칭찬을 받지 못한다. 설거지만 하고 손을 터시는 조도 댁의 손을 보고 엄마는 ‘설거지만 하면야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지’라고 조도댁의 노동을 가뿐히 평하실 때도 있다.


자고로 주부인 어머니에게 설거지란 ‘음식물이 묻은 그릇들을 세제로 깨끗이 잘 씻어내고 잘 헹군 후, 그 그릇들을 제대로 잘 정돈하고, 그릇과 개수대의 물기를 제거하고, 개수대 주변을 깨끗이 다 닦고, 수챗구멍의 음식물들도 다 드러내어 버린 후, 나아가 그 밑에 있는 하수구의 묵은 때도 다 제거하는 일이다. 물론 반찬들을 냉장고에 다 집어넣는 일, 거기다 가스레인지 위에 혹시라도 국물이 바닥을 보이는 냄비가 보인다면 그것까지 손수 가져와 설거지감으로 만들어 다 씻어 버리는 일까지. 더하여 음식을 하다 가스레인지에 혹여 튀었을 국물 자국까지 처리하는 일도 설거지의 모든 과정에 속한다. 집안일의 99.999%를 책임지시는 어머니가 보기에 아버지의 설거지는 결코 설거지가 아니다.



 헐, 아부지. 설거지 아직도 안 끝났어요?


뒷정리가 완벽하지 않다는 태클뿐 아니라 너무 심혈을 기울이는 조도 댁의 '설거지 태도'에도 우리 모녀는 또 한 번 태클을 건다.


“헐, 아부지. 나 이 닦고 볼일 다 보고 왔는데도 아직도 설거지 중이신 거여요?”

설거지하는 조도댁의 시간이 자꾸 길어지고 늘어진다. 조도댁은 두고 온 고향의 바다라도 생각하는지 아주 작은 부엌 창문을 내다보며, 설거지를 하다 말고 풍경을 감상한다. 엄마가  그런 아버지를 두고 ‘너희 아부지 설거지는 대체 언제 끝나냐?’라고 내게 물으실 때면 나는 조도 들으라는 듯이 부엌까지 다 들리는 큰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아마 조도댁 설거지는
내일, 아니 내년에나 끝날 거예요.



개수대 앞에 꼿꼿이 서서 지난 세월 씻어내듯 쓱쓱 세제 거품을 문지르우리 아버지. 느릿느릿 천천히 설거지 시간을 음미하우리의 조도댁. 아마 조도댁은 점점 더 집안일을 즐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어느 날은 내가 아버지 손에게 면담을 요청한다.



아버지, 어디 아버지 손 좀 줘 봐요.


"아버지는 어쩌면 이렇게 설거지를 맨손으로 할 때조차 멀쩡해요?"

아버지에게 설거지를 시켜 버린 딸내미의 변명은 ‘아버지 피부가 좋아서’로 귀결된다. 딸내미는 아버지 손가락을 마디마디를 훑는다. 엄지, 검지, 중지, 약지... 그러다 다시 중지로 돌아간다.


사실 이 중지, 이 가운뎃손가락을 보면 좀 아프다. 물레를 돌리던 할머니, 그 할머니 곁에 붙어 있다가 어린 조도댁은 물레에 손을 넣고 만다. 갑자기 중지의 맨 첫마디 도톰한 살이 덜컹 베인다. 손가락 맨 윗마디 한쪽이 덜렁덜렁 3분의 2쯤 떨어지려다 본체에 아슬아슬하게 겨우 매달린다. 놀랄 도 없이 조도댁의 엄마는 조도댁의 손가락을 다시 재빨리 붙이고 된장을 바른다. 그 위에 헝겊을 싸매고 무언가로 꽁꽁 묶어 모양이 어찌 되었든 붙기만, 어서 붙기만 하라고 기원에 기원을 더한다. 조도댁의 어린 손가락은 자기 엄마가 놀란 모양을 보느라 정작 자신은 놀랄 새도 없다. 어린 조도댁은 엄마의 재빠른 대처를 경이롭게 쳐다본다. 베이고 찢긴 아픔에 눈물이 나오려다가도 워낙 상황이 급박한 지라 오히려 눈물이 손가락 안으로 숨어 버린다.



그렇다. 아버지는 이런 중지를 안고서 지금도 설거지 중이신 것이다. 다행히 어린 조도댁의 살점은 떨어져 나가지 않았. 다만 다른 손가락들과 달리 살짝 도톰히 튀어나온 우리 아버지의 가운뎃손가락. 아팠던 손가락을 물기 가득한 개수대에 넣으시고 조도댁은 모녀를 대신해 지금 설거지를 하고 다.


뽀송하고 윤기 나고 단단했던 아버지의 손이 설거지감과 함께, 그리고 아버지가 살아온 세월과 함께 조금씩 아주 조금씩 소리 없이 수챗구멍으로 빠져나간다. 아버지의 윤기 나던 젊음이 세월과 자리를 맞바꾸고 점차 메말라간다.

    


.

.

.

.

.



그리고 이튿날.


"조도댁님, 설거지 다하셨나요?"

"어, 다 했어. 왜?"



아버지, 그럼 이젠 음식물 쓰레기 좀요.



아버지가 음식물쓰레기가 가득 담긴 작고 노란 쓰레기봉투를 들고 그 밑을 신문지로 받친 채 현관문을 나선다. 내 아버지 조도댁은  오늘도 분주히 고단하고 분주히 가장답다.


"아 맞다, 여보."
"왜?"
"그 음식물 버리고 나서 이따 마트 가서 달걀 좀 사 와요. 거기 달걀이 맛도 좋고 싸기도 하니까."
"......"
"당신, 내 말 들었어요? 응? 못 들었어?"

"드렀써... 아랐써..."


조도댁의 뒷모습이 오늘따라 어쩐지 좀 위대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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