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치미 한 모금을 마신다. 뼛속까지 시원하다. 코끝은 시리지만 뜨끈한 아랫목에서 나는 동치미를 마신다. 날은 차고 달은 기운다. 겨울이 오려나 보다.
따뜻한 방구들에 엉덩이를 바싹 붙이고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어머니의 동치미를 얻어 마신다. 마른기침이 새어 나오는 초겨울 이불속. 그 두꺼운 이불을 걷어차게 만드는 어머니의 동치미. 무, 배추, 대파, 초록 고추, 빨간 파프리카, 하얗고 굵은 소금. 내가 순식간에 떠먹어 없애 버리는 이 국물 한 숟갈에 얼마나 오랜 시간이 담겼는지, 얼마나 많은 재료들이 합주를 하는지, 그것은 이 음식의 지휘자인 우리 어머니만이 그 연주 과정을 알고 계신다.
어머니의 동치미
“너희 엄마가 이렇게 항상 좋은 음식을 만들어 줘서 우리가 이렇게 별 탈 없이 건강한 거야.”
그때 갑자기 아버지가 뜬금없이 엄마를 칭찬하신다.
“아이고, 당신도 오늘 수고했어요.”
엄마의 칭찬 사례가 이번에는 웬일로 아버지를 향하신다. 어머니가 거의 다 차리신 ‘동치미 담그기’ 밥상에 아버지도 숟갈 하나를 얹으셨는지 아버지의 어깨도 봉긋 솟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아버지를 오래도록 칭찬할 틈이 없다. 엄마가 엉덩이를 바닥에서 급히 떼어내신다. 우리에게 동치미를 먹이시자마자 그새 엄마는 다시 또 부엌으로 급히 달려가 무엇이 그리도 바쁘신지 또 정신없이 이것저것을 새로이 시작하신다.
“쪽파가 좀 필요한데…….”
부엌에서 엄마의 혼잣말이 들린다. 혼잣말일 뿐인데 거실에 있는 우리에게도 그 말이 큰 소리로 들린다. (모름지기 혼잣말은 혼자만 들리게 해야 하는 법인데 엄마의 혼잣말은 성격이 조금 다르다.) 방금 전까지 모든 가족이 그렇게 맛있는 동치미를 시원히 얻어먹고도 엄마의 말을 짐짓 못 들은 척하며 우리는 TV 앞에 앉아만 있다.
“쪽파 좀 다듬어야 하는데 양이 너무 많네.”
자연 다큐멘터리로 채널을 맞추어 놓으신 아버지는 두 번의 말이 떨어지고 나서야, 남이 다 잡아 놓은 먹이를 뺏어 먹는 TV 속 코요테를 아쉬움 속에 멀리 떠나보낸다. 아버지는 어머니께 ‘알겠어’라고 말씀하신 후 겨우 무거운 엉덩이를 턴다. 그러고는 신문과 쪽파가 담긴 초록색 비닐봉지를 들고서 부엌 한 구석에 자기 자리를 잡으신다.
동치미 담그는 날
-여보, 손수레 끌고 따라와요. 오늘, 무 몇 단 사다가 동치미 좀 담게…….
집사람의 말투는, 마님이 상머슴에게, 장바구니 챙겨 들고 뒤따라오라고 이르는, 앞장서 대문을 나서는 그런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오늘은 아파트 단지 내에 장이 서는 날입니다.
-오늘이 장날인가.
엉거주춤, 뒤로 물러서는 자세로, 짐짓 알면서도 되물어 봅니다. 마님 행세의 어투에 감정이 상할 때도 있습니다. 모르는 척 그냥 넘어가야 합니다. 최근에 비로소 체득한 결론입니다. 나이 들면 쇠락(衰落)해지는 것은 자연의 섭리(攝理)입니다. 그 섭리를 따라야 합니다. 젊은 날을 생각하고, 객기(客氣)를 부리려다가는 망신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따뜻한 밥 한 끼라도 더 얻어먹다가 가려면…….
얼굴에 눈웃음이라도 그리며, 손수레를 찾아들고 따라나서야 합니다.
-그래, 따뜻한 밥 한 끼가 중요한 거야.
2012. 12. 18.
나는 몰래 부엌을 빠져나온다. 내 방으로 들어가 책장에서 아버지 책을 고른다. ‘동치미 담그는 날’이라는 글을 들춘다. 어김없이 그곳에 아버지가 있다. 돈도 잘 벌고 한창 잘 나갈 때, 우리 아버지는 엄마의 무릎에 편히 누워 계시곤 했다. 엄마의 두피 치료(흰머리 제거 작업)와 피부 치료(여드름 제거 작업)를 받으시며 주말 한낮, 졸음에 겨운 낮잠에 빠지시곤 했다. 혹시 아버지는 그 시절의 아버지를, 혹은 그 시절의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계시는 것은 아닐까? 이제 아버지도 어머니도 잘 나가던 그때의 자신들을 벌써 잊고 현재의 역할, 곧 ‘마님과 머슴 짝꿍의 장보기 역할 놀이’에만 열중하고 계신다. 그건 엄마가 변한 것도, 아버지가 변한 것도 아니다. 다만 세상이 변했을 뿐이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변한 세상대로 그 시간을 걸어가고 계실 뿐이다.
사실 요리를 잘하시는 어머니 덕에 그동안 우리 집 식구들은 외식을 잘 하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외식이라는 것이 일상도 이벤트도 아니고, 굳이 말하자면 ‘남의 일’ 같은 것이었다. 사실 집에서도 충분히 외식 같은, 외식보다도 더 맛있는 음식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뭐 하러 귀찮게, 집 밥보다 맛없는 밥을 얻어먹으러 나가서 돈만 쓰나, 싶기도 했다. 그러나 그게 얼마나 엄마에게 죄를 짓는 일인 줄도 모르고서 아버지와 딸들은 ‘맛있다, 맛있다’ 엄마의 음식을 칭찬만 하면 되는 줄로 알았다. 그렇게 엄마를 부리며 몇십 년을 살았다.
"여보, 이건 어디다 치울까?"
그런데 오늘은 아침 일찍부터 셰프님 옆에 조수 한 명 딸려 있다. 주 요리를 제작 중이신 엄마 곁에서 주방 정리를 자처하며 경쾌한 목소리로 이 아침을 여는 저 남자. 뒤에서 보니 건실한 청년의 어깨를 하고 있으며, 웬일인지 평소와 다르게 재빠른 손놀림으로 잔심부름을 마다하지 않는다. 신속하게 움직이는 남자의 손이 한결 들떠 보인다. 그 남자가 갑자기 다가와 나에게 이렇게 말을 건넨다.
"너도 얼른 밥 차려라."
얻어먹고 살려면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야 한다. 아마 아버지도 그 옛날에는 차장님, 부장님으로까지 일을 하며 ‘심히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셨을 것이다. 일주일에 다섯 번, 혹은 여섯 번, 아니 일곱 번까지도 군소리 없이 쉼 없이 직장 일을 해 오신 우리 아버지. 오직 나에게, 그리고 내 동생에게, 우리 가족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먹이시기 위해 세상의 모진 소리, 군소리를 견디시며 그렇게 늘 ‘인생’이라는 쌀을 씻으시고, 안치셨다.
“여보, 나 쌀 안쳤어요.”
아버지의 말에 어머니는 가스 불에 국을 올리신다. 말도 안 듣는 자식새끼들, 고작 그 새끼들을 먹이시려고 오늘도 아버지는 손수 쌀을 씻으시고, 어머니는 국을 끓이신다. 과년하다 못해 이제 내다 버려도 할 말 없을 듯한 딸, 과하게 나이 든 이 맏딸을 위해……. 그 딸은 오늘도 밥상 위에 놓인 동치미를 죄책감 없이 한 수저 뜬다. 그리고 저 가슴 밑바닥까지 시원해지는 동치미의 뜨거움을 이제야 느낀다. 오늘따라 밥이 더욱 맛이 난다. 오늘 밥상에는 지난날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노고가 건강한 동치미로, 따뜻한 밥 한 끼로 올라 와 있다.
체했을 때 소화력에도 도움을 주는 동치미, 해독 성분이 있는 무를 먹으면 숙취 해소에도 좋다는 동치미, 심한 열 감기에 잃어버린 염분과 비타민을 보충해 준다는 동치미, 입 안의 산성 환경을 중화해 준다는 기특한 동치미……. 엄마가 고르고 고른 재료로 물속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동치미, 아버지가 다듬어 놓은 채소들이 새 단장을 하고 흡족한 맛을 뽐내는 동치미…….
동치미를 담그던 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올린다. 손수레를 끌고 거기에 생수 몇 세트와 무와 파와 배추와 고추 등을 싣고 마님을 따라 요리조리 시장 길을 다녔을 아버지를 떠올린다. 긴 세월 가족에게 동치미를, 그리고 온갖 음식들을 퍼주었던 엄마와 아빠의 그 맛 좋은 사랑을 떠올린다.
치치치치치치지이익
전기밥솥이 김을 뺀다. 엄마와 아버지 냄새 뒤로 밥 뜸 드는 냄새가 내 온몸으로 밀려온다. 따뜻한 밥 한 끼가 오늘도 내 속을, 내 삶을 꽉꽉 채운다. ‘나에게 오늘도 밥이 있다’는 사실이 나는 정말이지 너무도 좋다. 나에게 밥을 먹을 집이 있다는 것이, 밥을 나눠 먹을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이 순간, 무엇보다도 행복하다.
그래, 밥 한 끼가 중요한 거야.
그래, 아버지 말씀대로 따뜻한 밥 한 끼가 중요한 거다. 밥은 늘 따뜻하다. 그리고 따뜻한 밥 한 끼는 늘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