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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Nov 14. 2019

안녕하세요 좀 그만합시다

정도를 걷자, 딱 그 정도로만

"안녕하세요?"

또 저런다, 너희 아부지. ‘안녕하세요’ 뒤에 엄마의 말씀이 뒤따른다.


"네. 고맙습니다."

또 저런다, 우리 아부지. 이번에 딸의 빈축이 뒤따른다. 아니 대체 우리 아버지는 뭐가 고맙다는 거지?


"예. 안녕히 가세요."

 아부지! 저 사람은 지금 아부지한테 인사도 안 하잖아요! 그런데 왜 아버지만 뒤꽁무니에 대고 정중히 인사를 해요. 가는 인사가 있어야 오는 인사도 있는 거죠! 사람들이 '고마워도 안 하는 인사'는 이제 고만하셔요.




안 되겠다, 우리 아버지,
예절교육 좀 다시 받으셔야겠어.      


우리 가족은 ‘아버지 교육시키기’ 작전에 돌입한다. 평소엔 가족들에게 무심할 때도 많고 냉정히 감정을 끊을 때도 많으시다. 그러면서 왜 아파트 엘리베이터만 타면 이웃들에게 저리 다정히 인사를 건네시는지, 원.

 


   


<시대를 못 읽는 우리 아버지를 위한 예절 가이드>


1. 일단 인사는 ‘오고 가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함을 기본적으로 알려 드린다.

"아부지, 대답도 안 하고 멀뚱멀뚱 아부지를 쳐다만 보는 사람들에게는 인사 안 하셔도 돼요."



2. 젊은 사람한테는 먼저 인사하지 않아도 됨을 강조한다.

"그리고 아부지, 아부지보다 젊은 사람들한테 굳이 그렇게 예의 바르게 인사하실 필요 없어요. 아부지가 더 어른이잖아요. 아부지보다 더 어른인 사람한테만 먼저 인사하세요."

"그렇게 치면 우리 아파트에서 인사할 사람이 얼마 없는데? 나보다 나이 많은 어르신이 얼마나 된다고."

"......"

(아버지가 이리 말하시면 나도 할 말이 없긴 하다.)



3. 아파트에서는 웬만하면 인사 안 하는 게 더 예의 있는 행동(?)이니, 사생활을 존중해 엘리베이터에서는 멀뚱멀뚱 딴 데만 쳐다보시도록 한다.

"아부지, 여기는 아부지 고향 같이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아닙니다요. 우리가 사는 아파트 동만 해도 한 층에 두 집씩 25집, 총 쉰 채나 모여 살아요. 이런 큰 마을에서는 서로가 서로한테 별 관심이 없어요. 굳이 인사 안 하셔도 돼요."



4. 고맙다는 말을 너무 자주 하면 비굴해 보이니 유의한다.

"아부지, 저 사람, 엘리베이터 안 잡아 줬었는데 아부지가 지금 오해하고 고맙다고 한 거예요. 그럴 땐 고맙다고 안 해도 되죠."



5. 특히 어린아이에게 너무 친절히 굴면 오해받는다.

"아부지는 춥다고 가을부터 검은 패딩에 검은 마스크에 검은 모자까지 자주 쓰고 다니시는데 자칫 잘못하면 나쁜 사람(?)으로 보이니까 아이들에게 너무 친한 척하지 마셔요."



아버지가 점점 ‘싹수없는 어른’이 되어 가도록 나는 물심양면 아버지를 교육한다. 아버지는 ‘그렇게 하마’하고 마지못해 대답하신다. 엄마도 나도 아버지가 자존심 없이 인사나 감사를 남발하는 일을 싫어한다. (예전에 나도 쓸데없이 많이 해 봤다. 거참, 괜히 머쓱하기만 하더라는..) 어쩌면 이것은 자존심 때문일지도 모르고, 세상이 변한 탓일지도 모르겠다.





여섯째 아들     


-여섯째 아들.

-예, 어머니.

-자네 요즘 배(腹)가 나왔어. 얼굴도 화색이 돌고. 심간(肝)이 편한 모양이야……. 마음이 아프다고, 배를 움켜쥐고 복통을 호소한 게 엊그제 같은데.

-요즈음 제가 좀 뻔뻔스러워졌습니다. 낯가죽이 두꺼워졌습니다. 이 집 저 집 기웃거리다가 누가 밥을 사 준다고 하면 사양하지 않고 얻어먹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도 친구가 참치회에 소주를 사 줘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얻어먹는데도 배가 나옵니다.

-그게 자네 본색이 아니었던가. 배가 나올 정도면, 이제 아침저녁 쌀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구먼.


-얻어먹는 것도 한두 번이죠. 어찌 마음이…….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구걸은 하지 말라고, 그렇게 일렀거늘…….


-내가 변한 게 아니고, 세상이 그렇게 변했습니다.

-세상 탓하지 마러, 이 못난 사람아.


2012. 6. 6.     



아버지는 위의 글에서 예의 없이 누군가에게 얻어먹은 일화를 공개하셨다. 그러나 외려 우리 부모님은 공짜로 무언가를 받지 않으려고 필사적이시다.



받는 게 다 빚인 거야.



엄마와 아버지는 늘 이렇게 말씀하신다. 받는다고 좋아하지 말라고. 줄 때가 정말 더 행복한 것이라고. 주는 게 더 속이 편하다고.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인사도 예절도 받는 것보다는 줄 수 있을 때 더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 보다. 그게 설령 오지랖일지라도.


"주는 게 남는 거야."


과연?그렇다고 인사를 안 받는다는 사람들한테까지 '안녕하세요'나 '고맙습니다'를 주어야 하는가? 나는 고개를 갸웃한다.





-안녕?! 참 잘생겼구나?!


 아버지가 이번에도 딸과 부인의 말을 안 듣고 또 일을 저지른다. 초등학생 꼬마 아이에게 살갑게 인사를 건넨다. 애고, 이제 어린애들한테까지 ‘을’의 자세를 취하시네. 우리는 순간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게다가 저렇게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하시면 어째. 잘생긴 건 솔직히 아니잖아요, 아부지? 애가 당황하겄네. 모르는 하부지가 갑자기 외모 태클(?)이니..


-네. 안녕하세요.


어맛? 근데 이 아이는 웬일로 우리 아버지에게 인사를 한다. 멀뚱멀뚱 이 할아버지, 왜 나한테 말 걸고 그래, 하지 않고 대답을 해 온다. 하지만 나는 곧 아이의 검은 속을 들여다본다. 저 아이의 ‘안녕하세요’ 속에는 ‘네. 저 잘생겼어요. 알고 있어요. 그럼 저도 까짓 인사 한번 해 드릴게요. 돈 드는 것도 아니니.’라는 속마음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보는 사이, 그새 또 아버지의 난데없는 친화력이 발동한다. 아버지는 인사를 받아 주는 사람이 오랜만이라 그런지 아이에게 이런저런 소재로 말 걸기를 또 시도한다. 애들한테는 귀엽다고 쓰다듬는 것도, 그것이 설령 말로만 쓰다듬는 칭찬이라도 오해를 받을 수 있으니 웬만하면 절대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드렸건만 아버지는 또 아이에게 말을 거신다.



 "몇 학년이니?", "3학년이요.", "이사 온 지 얼마 안 됐고?", "네. 지난주 금요일에 이사 왔어요.", "지금은 혼자 나가서 노는 거야?", "아니요. 동생이 지금 놀이터에 있어서 데리러 가요. 밥 먹으라고 엄마가 그래서요. 동생이 밥도 안 먹고 막 놀아서 엄마가 속상해하세요."



이웃집 아이와 우리 아버지의 대화가 그 짧은 시간 안에 많이도 이루어진다. 순진한 아이는 아버지의 질문에 넙죽넙죽 잘도 대답한다. 아부지, 남의 집 신상을 털어서 뭐하시게요. 하지만 아이의 표정은 밝다. 여기 이사 와서 이런 이웃의 관심은 마치 처음이라는 듯 아이는 아주 신명 나게 자신의 신상을 스스로 공개한다. 그리고 그 아이, 뜻하지 않게도 우리에게..





“안녕히 가세요.”



엘리베이터에서 헤어질 때 아이가 먼저 우리에게 인사를 건넨다. 처음 본 사람들끼리 헤어질 때도 인사를 할 수 있는 사람들. 사실 이 엘리베이터에서 우리에게 먼저 인사를 보내는 사람은 이 아이가 처음이다. 인사는 혼자 하는 게 아니란 걸 제일 잘 알고 있는 사람도 이 아이다. 나는 이 아이를 오해했던 몇 초 전의 내 검은 속을 반성한다. 아이의 하얀 속이 내게 투명하게 전염된다.


“잘 가!”


나도 십 년 만에 처음으로 모르는 사람에게 인사를 시도한다. 그러자 아이는 뒤돌아서며,



네!



경쾌한 소리가 1층 복도에 울려 퍼지고 아이는 신나게 앞으로 뛰어간다. 아이는 어쩌면 오늘 집에 돌아가서 자신이 이사 와 처음으로 사귄 이웃 할아버지 친구에 대해 이야기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면 아이의 엄마나 아빠는 ‘아무나’하고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고 진지한 교육을 펼칠지도 모른다. 아니, 저 아이의 엄마나 아빠라면 ‘그랬구나, 잘생겼다고 해서 기분이 더 좋았겠네?’라고 웃으며 말할지도 모른다. 아이가 넓힌 인맥을 칭찬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나, 누군가에게 먼저 인사해 본 게 언제일까. 나, 내게 무언가를 주지 않는 사람에게도 감사를 드려 본 게 언제일까. 인사를 건네는 뭇사람에게 인상 펴고 반가이 내 인사를 돌려보낸 적 언제일까. 사람들에게 ‘안녕’을 묻는 일, 얻어먹은 것에 ‘감사’를 도로 갚는 일에 점점 게을러진다.




굳이 인사를 하지 않아도 굳이 감사를 말하지 않아도 살아갈 만한 세상이다. 그러나 오늘 딱 한 번쯤은 눈 딱 감고 나도 아버지가 걸어가는 ‘인사의 정도(正道)’에 동승해 본다. 아버지를 따라 나도 슬쩍 모르는 얼굴들에게 말을 걸어본다.



 “안녕히 가세요.”



엘리베이터를 내려 자기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뒤통수에 대고 뜬금없이 인사를 전한다. 물론 대답은 없다. 왜 저러나 싶을 것이다. 하지만 기분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 내 인사를 누군가는 듣는다. 나의 감사를 누군가는 느낀다. 인사를 하고 감사를 전하니 오히려 내가 더 기분이 참 좋다. 그걸로 됐다 싶다.



잘했네. 세상 변한 탓만 하지 마라.
사실 자네도 변한 거니까.



어디선가 얼굴도 뵌 적이 없는, 아버지의 어머니, 그러니까 내 아버지의 글에 등장하셨던 우리의 할머니가 내게 ‘칭찬’ 혹은 ‘충고’를 해 주시는 소리가 들린다. 나도 그동안 변했다. 아파트에 막 이사 왔을 땐 경비아저씨께도 열심히 인사를 했다. 지금?모르는데 왜 하나.


하지만 나도 이제 우리 아버지처럼 늙고(?) 철들었으니(?) 가끔씩은 ‘고맙다’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우선  이 양반들을 인사 및 감사의 제물(?)로 삼을 생각이다.

내 인사와 감사를 받을 분들



"고맙습니다."

"응? (뭐여?) 갑자기?"


이 못난 딸내미를 키워 주신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께, 뒤늦지만 이제부터라도 쑥스러움을 꺼내 든다.
"뭐라고?"
"감사하다고요."
도통 영문을 모르겠다는 부모님의 얼굴이다.
그래도 내 기분, 마냥 쑥스럽고 몽글몽글하다.


내일도 이분들께 인사를 한번 건네 봐야지.


안녕하셔유. 잘 주무셨어요?




*사진 출처: pixabay, 내 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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