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 자르듯 아버지 말을 자른다. 내 안에서 만든 말이 건조한 공기를 타고 아버지에게로 무심히 가 닿는다. 내가 이 말을 꺼낸 건 다음과 같은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라디오 작은 건 얼마나 하나?
남북이 화해 무드가 아닐 때면 아버지께서는 소형 라디오의 가격을 내게 물으신다.
-왜요? 라디오 하나 사시게요?
-아니, 전쟁이라도 나면 TV도 안 될 테고 전기나 인터넷도 다 끊길지 모르는데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라디오로라도 들어야 하잖아.
아버지가 말하는 그 전쟁, 안 일어나요. 나는 이렇게 말대꾸하고 싶어진다. 아버지는 TV에 나오는 북한의 동향에 종종 귀를 기울인다. 반면 나는 전쟁에 무감한 세대다. 총 쏘는 일은 영화, 혹은 게임에서나 나오는 이야기로 안다. 나 같은 세대는 아버지가 내세운 ‘라디오 구입 명분’이 왠지 탐탁지 않다. 아버지, 나도 마흔 해나 살아봤는데요, 전쟁이란 거, 웬만해서는 쉽게 안 일어나던데요?
칠월 땡볕에
칠월 땡볕에,
길에서
허리가 두 동강 난 지렁이를 본 적 있는가.
그 뒤틀리며 몸부림치는
지렁이의 몸짓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2005. 4. 8.
아버지는 두 동강 난 지렁이를 보며 두 동강 난 나라를 생각하셨던 걸까. 나는 시국에 그리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편인데 우리 아버지는 나랏일에 촉각을 기울이신다. 나라가 몸부림치며 뒤틀릴 때마다 나라 사정을 당신의 사정이나 되는 양 걱정하신다. 나는 그게 그렇게 크게 걱정할 일인가 싶기도 하고, 설마 전쟁이란 것이 실제로 일어나겠느냐고 느긋한 마음만 먹는다.
"너희들 전쟁이 얼마나 비극인 줄 아냐?"
삶에는 이런저런 비극과 희극이 교차한다. 아버지에게 제일 큰 비극은 전쟁이다. 아버지의 그런 기준에서라면 나는 희극 쪽에서만 살아온 셈이다. 아버지에 비해 짧은 생을 산 나는, ‘전쟁’이 일상이 되는 일을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하지만 아버지 입장에서라면 이야기가 좀 다르다. 아버지는 아주 어릴 적 전쟁을 겪으셨지만, 남도 끝에 붙은 섬에서 자라셨기에 직접적인 전쟁의 피해는 안 겪으셨다. 그런데도 유년에 다녀간 전쟁의 위용은 조금쯤 막연한 공포였나 보다. 아버지의 형들은 군대에 가야 했고 그 당시 군대는 ‘가면 돌아올 수 없는 무서운 곳’이라는 소문이 흉흉했다. 설령 돌아온다 해도 성한 몸을 보장할 수 없는 시절이었다. 육지에서 흘러들어오는 소식은 발 없이 달리는 말처럼 섬 전체를 공포로 물들였을지 모른다. 당시 조금쯤 붉은색이었을 그 공포, 어쩌면 아버지는 그 비극의 색깔에 맞서기 위해 라디오가 내어 주는 안전한 소리가 필요하셨나 보다.
출처: pixabay
띠딕.
아버지의 전쟁 비극론을 건성으로 듣고 있는데 내 휴대폰에서 알림 소리가 울린다. 그 소리는 휴대폰에 깔아 둔 앱에서 나오는 소리들이다.
'님의 글을 읽으니 정말 공감이 가네요. 좋은 글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귀로는 아버지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두 눈으로는 온통 이름도 모를 사람들의 댓글에 배시시 웃는다. 재작년, 십오 년 만에 블로그를 다시 시작했다. 고작 6명의 이웃으로 이십 년을 살았는데 갑자기 한 명 두 명 이웃이 늘어났다. 이것이 바야흐로 ‘사회적 소통’이라는 걸까. 내가 먼저 가서 ‘서로이웃’을 신청하기도 하고, 얼굴을 모르는 사람들과 같은 이야기, 혹은 다른 이야기로 소통하는 것도 꽤 재밌었다. 특히 같은 내용의 책 쓰기 수업을 들었을 전국의 블로그 이웃들과 하나둘 이웃을 맺어갈 때면 ‘글쓰기’로 같이 공감하고 더불어 소통하는 일이 그렇게 신이 날 수 없었다. 한창 싸이월드가 유행할 때의 느낌까지 들었다. 도토리를 선물하듯 블로그 이웃들에게 공감과 댓글을 정성껏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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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블로그를 넘어 브런치라는 앱에 중독된 상태다. 운 좋게 아버지 글을 팔아(?) 조회수를 높이 올린 후로 내 손가락은 '브런치 나우'의 '브런치 인기글'에 아예 살다시피 한다. (내 글이 당연히 없는데도 괜히 그곳을 살핀다.) 내 브런치로 놀러 와 공감 버튼을 꾹 눌러 주면 그게 심히 감사해서 나도 재빨리 그네들의 브런치로 답방을 가서 공감 버튼을 마구 누른다. 누군가 내 브런치를 구독이라도 해 주는 날에는 그분이 아직 작가 신청을 하지 않았더라도 감사의 마음으로 구독하기를 누르곤 한다. (언젠가 그분이 첫 글을 발행할 때 내가 첫 하트를 눌러 드려야지, 마음먹는다.)
이렇게 ‘좋아요’라는 표시의 하트를 마구 남발하는 것이 내가 브런치나 블로그의 이웃들에게 전할 수 있는 정성이라 믿었다. 반대로 아무도 내 글에 하트를 안 달아 주면 괜히 내 글이 머쓱해지는 느낌이 들어 조금 서운하기도 했다. 이렇게 나는 서서히 브런치계의 관종(관심종자)이 되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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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몇 주가 지났다. 그날도 나는 한창 타인의 브런치 및 블로그로 가서 공감 누르기에 열중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내 쪽으로 슬며시 걸어오신다. 응? 아버지, 나한테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작은 라디오 가격 혹시 알아봤냐?
‘아, 맞다, 맞다, 아버지 라디오!’ 까마득히 잊고 지냈다. 그동안 내 블로그는 이웃이 쑥쑥 늘어났고, 브런치 구독자도 5명쯤 늘었다.
-아직 못 알아봤어요.
‘못’이 아니라 ‘안’ 알아본 거 아니냐고 스스로를 잠시 꾸짖는다.
-지금 주문할게요.
-아니다. 그냥 둬라.
아버지가 한 발짝 물러나신다. 말씀을 꺼낸 지가 언젠데 알아보지도 않았다. 라디오라는 단어를 삶에서 아예 지운 게으른 큰딸. 이런 수준의 관심과 열의라면 일을 더 맡겨 봐도 소용이 없다고 느끼셨을까. 아버지는 라디오 구입 건에 대해 더는 압력을 넣지 않으신다.
-그냥 둬. 안 사도 돼.
이번에는 한 발짝 물러서는 수준을 넘어서서 아예 이 바닥에서 발을 빼려고 하신다. 이럴 땐 딸인 내가 바싹 두 걸음 더 다가서야 한다. 얼른 노트북을 켜고 인터넷 쇼핑몰로 재빠르게 들어가 광적으로 ‘클릭질’을 시작한다.
-오, 가격대가 괜찮네요. 비쌀 줄 알았더니.
-그래?
아버지가 미끼를 무신다. 내 목소리에 관심의 레이더를 켜신다.
-이어폰도 하나 할까요?
-뭔 이어폰까지.
-아, 맞다. 나, 이어폰 새 거 하나 있었다! 휴대폰 샀을 때 상자 속에 들어있던 걸 요 며칠 전에야 발견했거든요!
-그래? 그럼 하나 줘 봐라.
-아버지 여기요.
아버지는 새 이어폰을 꽂아 음악을 들어 보시더니 음질이 상당히 좋다고 만족하신다.
-아부지, 이 디자인은 어떠세요?
나는 노트북을 아버지 눈 쪽으로 돌린다. 여러 개의 소형 라디오가 아버지 눈 안에 들어간다.
-뭐 아무거나 해.
-아무거요? 내가 이렇게 되묻는 순간 아버지가 말씀하신다.
-그 세 번째 것이 제일 낫긴 하네. 그걸로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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넵, 아버지! 나는 경쾌하게 외친다. 아버지도 사실 취향이 있으셨던 거다. 나는 아버지는 늘 '아무거나'를 선호하는 줄로만 알고 아버지 품에 '아무거나' 안겨 드렸다. 이번 라디오는 아버지께 '아무것'이 아니길 빈다.
자자, 그건 그거고, 그나저나, 내가 라디오 사느라 잠시 안 들어간 내 sns 공간들.. 거기서 공감이나 댓글, 알림 메시지 좀 확인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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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아니 오늘뿐 아니고 거의 매일같이) 내 브런치 앱은 아무런 알림 메시지도 없다. 여러 작가님들이 브런치북을 발행했다는 소식들만 줄을 잇는다. 사실 내가 올린 글은 다른 사람들에게 별 관심사가 아니다. 사람들은 제각기 바쁜 삶 속에서 자신을 단련하느라 바쁘다. 얼굴도 모르는 이웃이나 구독자를 챙길 틈이 없으리라.
그때 아버지가 따끈한 보리차를 데워 내 앞에 갖다 놓으신다.
-뜨거운 물 마셔라.
-네. 감사합니다.
-훈 작가, 잘 돼 가냐, 글 쓰는 거?
-잘 됐다가 안 됐다가 막 그래요.
아버지가 슬쩍 내 노트북을 쳐다보신다. 나는 댓글을 쓰고 있는 건데 아버지는 내가 글을 쓰는 줄 아신다. 글도 안 쓰고 딴짓을 했으면서 글을 쓰는 척을 한다. 아버지에 이어 엄마까지 내 목소리 쪽으로 다가온다. (나는 우리 집에서 제일 어리고? 핫한 인싸다. 그럴 수밖에 없다. 우리 집은 지금 평균 연령 예순둘의 세 식구니까.) 그러다 나는 슬슬 이 얘기 저 얘기를 시작하고 미주알고주알 내 일상을 풀어놓는다. 어느새 부모님이 내 앞으로 바싹 모여든다. 세상 제일 굳세고 열렬한 내 관객들이 내 이야기를 내 면전에서 깊이깊이 청취한다. 나는 그분들의 얼굴에서 진한 색깔의 하트♡공감을 받고, 진심이 담긴 댓글도 느낀다.
문득 내가 놓쳤던 것들을 생각해 본다. 타인의 글을 훑다가 정작 가장 가까이에 있는 부모님의 삶은 읽어 내리지를 못한다. 내 삶이 바쁘다고, 내 일상이 녹록지 않다고 어리광을 부리며 부모님의 라디오를 잊고 부모님의 목소리를 자꾸 제쳐 둔다. 항상 그 자리에서 있었던 목소리였지만 잘 보이지 않는다고 계속해서 잊는다.
오늘도 부모 사랑에 대해서만 유독 기억 상실증을 앓는 나. 가끔은 엄마, 아버지에게 짜증도 부리려는 나. 아버지가 설거지를 하실 때 느긋하게 잔반이나 먹고 있는 나. 평생 남의 이야기에만 귀를 기울이고 남의 글에만 댓글을 달아 온 나.
이제 아버지, 어머니의 삶에 댓글을 달고 공감을 눌러야 할 때이다. 내게는 내 옆에 있는 아버지, 어머니의 삶 자체가 소중한 글이다. 아버지! (어머니!) 이제 이 딸내미가 아버지 삶에 ♡ 백만 개 눌러 드릴게요. ♡♡♡♡♡♡♡♡♡♡♡♡♡♡♡♡♡♡♡♡♡
오늘은 내 글에 하트가 금세 달릴 것만 같은 기분이다. (엄마, 아빠포함 최소 하트 두 개 확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