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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Jun 07. 2024

에필로그의 에필로그_이 자리 못 잃어요

쌍둥 어미인 내 동생이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에게 커피와 빵을 대접하던 어느 날.


"커피 다 내렸어. 와서 드셔."

"이리 와서 너도 먹어."

"안 먹어? 다 식는다?"


"어? 어어."

말만 하고 이모는 어른들이 있는 식탁으로는 가지 않는다. 그런데도 자꾸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별로 커피를 안 좋아하는데도 계속 나를 부른다. 지금 나는 무지 바쁘단 말이다.  


"가, 가."

나는 뜸을 들인다. 아주 오래 들인다. 뜸을 들이는 동안에도 조카들을 바라다본다.

"이모, 저거(TV 속 화면) 보라니까."

"어? 응. 보고 있어, (너희 얼굴)."

"아니, 우리 얼굴 보지 말고, 저 영상 같이 보자니까?"

"응. 보고 있지. (마인크래프트 게임 리뷰 영상이야 봐도 뭔지 모르는걸. 나는 온리.. '너만 보인단 말이야!')"


이모는 지금 티브이 앞 소파. 이모 옆으로는 좌측 조카, 우측 조카. 쌍둥이 유니콘 사이에 깊숙이 푹 파묻혀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 내 세상은 지금 너희뿐이야!

이쯤 되면 눈치채고 나를 좀 고만 불러도 좋으련만, 엄마는 이모를 계속해서 부른다.


"커피 다 식겠네, 다 식겠어."

어른의 식탁에선 자꾸만 커피와 간식을 독촉한다.



간식은 먹어도 돼요.

저는 지금 안 먹어도 배불러요.

커피는 식어도 돼요.

조카 사랑이 식을 줄을 몰라서요.



타이밍이다! 나는 은근슬쩍 첫째 조카와 둘째 조카 사이에서 두 녀석의 손을 조몰락거린다. 조카들은 나의 애정 표현을 귀찮아하다가도 손잡는 것만은 곧잘 허락해 준다. 허락해 줄 때 더 오래 둘 사이에서 파묻혀 있어야 한다. '조카멍'만 한 힐링도 없다. 나는 계속해서 조카들을 빤히 쳐다본다. 그런 나를 보고 조카들은 마치 따귀를 올리는 자세를 취하며 내 얼굴을 티브이 정면으로 가져다 놓는다. 재밌는 영상이니 이모도 같이 봐야 한다는데, 당최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겠는 게임 리뷰 영상. 게다가 외국인 유튜버라 말도 못 알아듣겠고. 아무튼...



이 자리죠, 제가 누울 자리?

저, 그냥 여기서 쭉 있을게요.

저 이 자리, 절대 못 잃어요 >_<




(사진 출처: Nathan Fertig@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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