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구 갖다 쓰라고, 조카들 보이는 곳에 여러 이모를 널어 두었다. 조카들은 종종 이모를 가져다 쓰기도, 혹은 휙 지나쳐 자기만의 길로 가 버리기도 하였다.
조카들에게 이모의 유통기한은 무기한. 사용 횟수는 무제한.
비가 오는 날엔 우산을 갖다 주는 이모,
해가 뜨는 날엔 함께 숨바꼭질을하는 이모,
구름 낀 날엔 방구석에서 조카들과 함께 만화 영화를 챙겨 보는 이모.
이모 목 뒤에다 '이모 바보'를 써 놓고,
이모 물건마다 '내 꺼'라고 써 놓기도 하던 조카들.
그렇게 한 해, 두 해... 그리고 쌍둥이 조카를 만나고 열 번의 봄이 지났다.
이 연재를 시작하던 처음에는 '이모사용법'을 쓰려고 했다. 얼마나 이모를 다방면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 이모의 그 유용함을 설파하려 들었다. 그런데 계속해서 쓰다 보니 그게 아니었다.이모를 사용하라고 했는데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이모가 되레 조카들을 사용한 것이었다.
"이모, 밤에 잘 때 무서울 수 있으니까 야광 스티커 붙이고 자."
3년 전 조카들이 사다 준 스티커는 아직도 침대 머리맡에서 이모의 밤을 지켜 준다.
"이모, 이번에 가족 여행 가서 사 온 건데, 이모 줄 거야."
이모 휴대폰에 매달린 조카의 키링은 현재 이모의 최애 힐링이다.
"으. 손 시려. 손 좀 잡자."
평소 손이 찬 이모는 겨울마다 은근슬쩍 조카들의 뜨거운 손을 잡는다. '조카난로'만큼 따뜻한 난로를 지금껏 만나 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조카들은 이제 점점 유니콘 같은 존재가 되어 간다. 영상통화 속에서나 종종 만나는, 마치 화면 안에서나 응원해 줄 수 있는 연예인과도 비슷하다. 그렇게 함께하는 실제적 시간이 줄어들고, 물리적 공간의 거리는 멀어진다. 그건 아마도 조카들의 삶이 위로 아래로 가로로세로로 넓어지고 깊어지고 높아지고 커져서일 것이다. 그들의 생각과 그들의 세상이 성큼성큼 자라나고 있기 때문이리라.
앞으로 이모의 대출 기한은 조금 더 연장이 될 수도, 혹은 급히 반납 처리가 될 수도 있다. 그래도 이모 사용법은 조카들에게 언제나 열려 있다. 가끔 먼지가 쌓이겠지만 종종 이모를 열람해 주리라 믿는다.아주 오랜 기다림이라 하더라도 이모는 그때마다 조카들에게 마구 쓰일 예정이다. 나의 시간, 나의 삶이 쓰이고 닳고 깎여 나가더라도 우리 쌍둥이 조카, 너희와 함께하는 모든 시간을 사랑할 생각이다.
오늘도 이모는 조카들에게 똑같은질문을 새로이 던진다.
"조금 더 이모를 사용하시겠습니까?"
'구독'과 '좋아요'가 없더라도 이모는 항상 쌍둥이 조카들 시청기록 가까이에.
'이모 마케팅 수신 동의'가 없더라도 이모는 늘 쌍둥이 조카들의 필수와 선택 사이 어딘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