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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May 15. 2024

이모 닮을까 전전긍긍

어느 날 보니 둘째 조카가 자꾸 '미안해'를 달고 산다.


"그러다 다치겠다."

"어, 미안."

"이렇게 하면 되겠는걸?"

"어, 미안."


미안해하지 않아도 될 일에 미안해하는 감정을 담는다. 그리고 기어이 입 밖의 문장으로 '미안해'를 표현해 내는 조카다. 이거 혹시 이모랑 그간 너무 놀아서 그런 걸까. (내 언어 습관의 서두가 '어, 미안'이다.)



다음은 동생이 전하는 또 다른 이야기다.

 

-아니, 조카2 행동 보다가, 이모가 떠올라서 완전 깜짝 놀랐다니까?

-무슨 일이 있었는데?

-아니, 스승의 날이라고 비누 카네이션을 학원 선생님들한테 주라고 했거든? 근데 창밖에서 내다보니 첫째만 주고 있는 거야.


동생(조카 어미): 너, 선생님한테 카네이션 드리라고 했는데 드렸어?
조카2: 아, 맞다.
동생: 그럼 카네이션은 어디 뒀어?
조카2: 어? 가방에 두었던 것 같은..
동생: 가방에 없는데?
조카2: 나도.. 잘 모르겠어...


사실 둘째 조카는, 1학년 때도 학교에 수학익힘책을 종종 두고 왔다. 이모인 나와 함께 책을 찾으러 학교에 재방문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교실 문을 잠겼음.)


이거 이거, 혹시나... 이모랑 어릴 때 너무 자주 놀아서 그런 건가.



어느 날은 차에 타면서 조카2의 손목에 있던 쇼핑백이 스르르 바닥으로 떨어졌다. 떨어진지도 모르고 차에 오르던 우리 둘째 조카. 그걸 본 내가 외친 말.

"앗, 나도 저렇게 잃어버렸던 거구나! 접때 버스 타고 보니까 쇼핑백이 없어진 거야. 속에 휴지만 들어 있어서 가벼웠던 쇼핑백이었지만 그래도 얼른 내려서 찾으러 갔지. 도로 가 보니까 거기 있더라고. 버스 타다가 떨어뜨렸더라니까? 지금 보니 알겠다. 나도 저렇게 떨어뜨린..."


"(동생 왈) 앗. 안 돼, 안 돼!"

"응?"

"이모 닮았단 말 하지 마! 쉿 쉿!"



몇십 년 동안 나의 덤벙에 넌더리가 났을지 모를 내 동생,

절대 자기 자식이 이모 닮아 그렇다는 말은 하지 말라고 내게 신신당부를 한다.

덤벙 이모의 유전자가 엉뚱하게 조카 쪽으로 흘러들었을까 봐 온 가족이 노심초사.

덜렁 이모의 '뒤를 안 돌아보는 습관'을 닮았을까 봐 온종일 모두 모여 전전긍긍.



이모사용법은 이렇게 '반면교사'만 짙어진다.

뭐라도 도움이 된다니, 뭐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이렇게라도 나를 써 준다면 나로서는 그저 감사할 뿐이다.)



*사진 출처: 19eli14@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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