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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Jun 05. 2024

사랑에 빠질 때 나누는 말들

청소년 소설 리뷰

서현아, 잘 지내고 있어?
이런 말 하면 네가 또 느끼하다고 하겠지만 그냥 할게.
보고 싶어.

동주의 문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여름에 차가운 얼음물을 급히 들이켜면 머리가 띵하듯 발끝부터 머리까지 알딸딸한 자극이 퍼져 나갔다. 이거 정말 보통 일이 아니구나. 나는 정신을 차리려고 두 손바닥으로 뺨을 세게 두드렸다.
(66)



(스포 주의)



제목

사랑에 빠질 때 나누는 말들



저자

탁경은('싸이퍼'로 제14 회 사계절문학상)



콘셉트

숨길 수 없는 마음과의 숨바꼭질



예상 주제

사랑을 말할 때 결국 '나'를 말하게 되는 이유



상 독자

1. 핵심 독자: 우정과 사랑 사이를 건너다녀 본 사람들

2. 확대 독자: 시시콜콜한 일상에서 꿈과 우정, 사랑을 발견하고 싶은 사람들



함께 읽으면 좋을 책

김빵 《내일의 으뜸》, 공지영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조우리 《오, 사랑  



해시태그

#열일곱의꿈 #열일곱의사랑 #열일곱의공부 #소논문동아리 #우정의가해자 #소년교도소 #편지



필사

"수업 시간에 뭘 그렇게 끼적여?"
"시 쓰는 거야."
"시? 시인이 되고 싶은 거야?"
"글쎄, 그건 아직 모르겠어. 다만 내가 아는 건 시가 좋다는 거야. 시를 쓰는 것만으로도 나는 완전해지거든."
완전해진다. 기분이 이상했다. 그저 한 단어를 들었을 뿐인데, 그 단어에 담긴 여러 의미와 형상이 열처럼 우수수 바닥으로 떨어지는 느낌. '완전'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뿐인데 동주 생각이 났다. 영화가 끝났을 때 동주가 기다란 몸을 쭉 펴는 모습이 생각났고 물을 마실 때 움직이던 동주의 목울대가 생각났고 내 손을 잡는 동주의 보드랍고 따뜻한 손이 생각났다. (145)

'완전해진다'라는 말은 시를 쓰면서도 누군가를 생각하면서도 떠오를 수 있다. '완전'과 어울리는 말들을 몇 가지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운이고 행복이 아닐까. 나는 어떤 '완전'을 지금껏 경험해 왔을까?



"요리사에게 가장 중요한 건 무엇입니까?"
페란이 뭐라고 대답했는지 짐작이 가니? 이 문장을 필사하는 이 순간에도 발끝부터 전율이 올라온다.
"모방하지 않는 것이죠."
되돌아보면 나는 그동안 늘 남을 모방해 살아왔던 것 같아. 한 번도 나답게 살지 못했어. 나다운 모습이 어떤 건지 관심조차 없었지. 만약 내가 단단히 중심을 잡고 살았다면 이렇게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수 있었을까. (80)

극 중에 직접 등장하지는 않지만 주인공 '서현'의 편지 상대인 '현수 오빠'는 세상의 시선대로 보자면 말 그대로 '범죄자'이다. 용서할 수 없는, 또한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저지른. 그러나 편지 속에서 드러나는 '현수'의 생각과 상황은 그렇게 단편적이지가 않다. 현수의 삶을 한쪽 귀퉁이만을 떼어 보고 확대하여 해석할 수는 없다. 현수는 지금 '모방해 온 삶'들을 후회한다. 현수는 지금 세상의 시선과 다른 '현수'로 거듭나는 중일지도 모른다.



"잠깐만. 꿈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으면서 왜 넌 열심히 사는 거야?"
갑작스러운 내 질문에 동주는 곰곰이 생각을 하는 듯했다.
"나한텐 오늘이 가장 중요하고 전부니까 최선을 다해  살고 싶은 거지."
멋진 말이었다. 동주가 다시 입을 열었다.
"미래를 바꾸는 것도 좋지만 난 어떤 미래가 오든 잘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 인생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잘 헤엄치는 사람."
놀랐다. 동주의 말은 내가 그동안 수집한 문장들과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90)

꿈도 없이 살아갈 때도 있고, 열정도 없이 하루하루를 보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동주의 이 말을 떠올리고 싶다. 어떤 미래가 오든 그 미래의 흐름에 나를 자유로이 맡길 수 있는 사람.




독단적 최종 리뷰

연애 세포는 분명 거의 다 죽어가는데 두 달간 드라마 선업튀(선재 업고 튀어)에 빠져서인가, 자꾸 말랑말랑 몰랑몰랑한 사랑 이야기에 손이 가서 또 덜컥 책을 사 버린

각설하고.


'공부'만 해야 하고 '생기부에 올릴 기록'만 뒤적여야 할 열일곱인데 내가 무슨 연애! 라고 내적으로 외치던 '서현.' 그러나 '동주'의 고백에 서현도 서서히 그 마음에 물들게 된다. (친구를 위해서라도 물들지 말아야 한다고 다짐하고 각오해 보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사람의 마음.)


이 소설엔 제목 그대로 '사랑에 빠질 때 나누는 말들'도 나오지만 단지 풋풋하고 달콤한 햇빛 같은 이야기만을 그리지는 않는다. 과제 때문에 연결 고리가 생긴 소년 교도소 '현수'와 편지를 주고받는 장면들을 통해 그저 평범한 사랑만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사랑 뒷면에 있는, 조금은 '그늘'과도 같은 이야기까지 다룬다. 그 이야기는 어느 한 개인의 삶을 짓누르는 퍽퍽함을 담보한다. 그 퍽퍽함에 한 줄기 소나기가 되어 주는 편지가 바로 '서현'의 편지다. 서현과 동주는 서로를 사람 대 사람으로 염려하고 서로의 일상을 위로한다.



"지루한 교도소 생활을 그나마 견디게 해 주는 건 편지야. 아이들은 편지가 오는 날만 기다려. 나는 편지를 받은 적이 없었어. 할머니는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니까. 네 덕분에 나도 편지를 받는 사람이 됐어." (123)



'편지를 받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누군가의 작은 글씨들이 모이면 그것들이 종이 위에서 마음이 되고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가느다란 끈이 되어 주기도 한다.


몹시도 두리번거리며 사람을 사귀려 드는 나 같은 사람에게 이 열일곱들의 서사와  순수한 소통은 무척이나 아름답게만 느껴진다. 사랑을 하며 '나'를 더 사랑하게 되는 조용한 마법을 체험하고 싶다면 한 번쯤 이 소설이 건네는 말들에 잠시 머물러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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