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세요?
나야.
나가 누군데?
열애는커녕 연애도 않고 나이만 차곡차곡 적립하고 있는데 갑자기 또 내 앞에 불쑥 나타나 애정을 갈구하는 너.
그렇게 강렬하고도 뜨거운 모습으로 너와 다시 마주칠 줄은 미처 몰라서... 마치 벌건 대낮에 츄리닝 차림으로 옛 연인을 동네 골목 어귀에서 마주친 것처럼... 그렇게 나는 이번에도 한 번 더 당황하고 말았다. (아니 어쩌면 너를 마주칠지도 모른다고 짐작은 했던 것 같다. 그래, 솔직히 말하자. 은근히 너와의 재회를 운명처럼 예측하였다.)
-또 왔어?
-어
-이번엔 뭐야?
-긴장 불안. 너 지금 수업 앞두고 있잖아. 불안할까 봐 내가 미리 왔어.
불안할까 봐 내 손을 차게 잡아 주려 한다는 불안. 세상 부지런한 불안. 세상이 다 날 잊어도 결코 나를 못 잊겠다는 불안. '불안이'는 혼자 덜컥 오지 않는다. 결코 가벼운 차림으로 오지도 않는다. 녀석은 둔갑술을 쓰는 꼬리 아홉 달린 여우처럼 매번 겉모습을 바꿔 가며 나의 일상을 깊숙이 재촉한다.
-(불안), 너 혼자야?
-어. (나, 불안이는) 아직 싱글이야. (내 눈엔.. '너만 보인단 말이야!')
모 영화의 악당까지 울고 갈 농담으로 불안이는 그렇게 내게 다가왔다. 잊을 만하면 고개를 드는 불안. 이 농담 같고 진담 같은 상황에 나는 매번 웃을 수도 통곡을 해 버릴 수도 없었다. (뉴진스님의 말씀처럼 '이 또한 지나가리'로 치부하기에는 덩어리가 꽤 큰 녀석이었다. 지나가는 내내 나를 밟아 뭉갤 기세였다.)
-저기 근데요, 불안 씨.
-(갑자기 왜 존댓말을?) 네?
-혹시 우리 초면 아니던가요?
-글..글쎄요. (백만 번째 재회이긴 하지만) 이번 불안은 초면일 수도요.
-아, 네 그렇군요. 그럼 정식으로 인사를...
-네? 아, 네네.
-나이스 투 미튜.
-예..예스. 나이스 투... 유.
내 불안이는 나를 닮아 어딘가 모르게 어버버 어설프다.
이런 어설픈 불안을 보고도 나는 금세 호흡을 줄이고 긴장을 늘린다.
지금까지 어떤 불안들을 만났는지 앞으로 어떤 불안들을 만날 것인지는 오롯이 내 손에, 그리고 내 이 마음에 달렸다. 그러니 이제라도 부지런히 내 마음을 따라 달리는 수밖에.
앞으로 엮어갈 불안이와의 명장면들을 기대하며, 조급하고도 불안한 마음으로...
'불안과 열애 중' 연재를 시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