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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Jul 12. 2024

숨소리만 들어도 알아요

<일어나야지?>


모닝콜이다. 아니 '모닝 숨결'이다.

역시 부지런한 나의 연인. (다만 이분은 미리 약속을 하고 오는 법이 없다.)

이상하다. 한창 '열애 중'인데도 모닝콜에... 화가 난다ㅡ_ㅡ 무언가 초조해지기까지.


'오늘 안 가는 날.. 아닌..가... 음... 아... 아니구나... 출근해야 하는구나.'

잠결에 깨닫는 나의 일과. 불규칙적인 출근이 때로는 나에게 실망을 안긴다.


모닝콜로도 일어나지 않자 나를 깨우러 친히 그(?)가 다가온다. 이번만큼은 그가 확실하다. 발걸음 소리만 들어도 숨 쉬는 소리만 들어도 나는 안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그의 방문. 눈을 뜨지 않고도 무심결에 그의 숨결(?)을 눈치채고야 만다.


<뭐 해? 다섯 시야. 일어나야 해. 오늘 하루도 나랑 다시 시작해야지? 어?>

성은 '불', 이름은 '안.' 그 녀석은 기어이 나를 포기하지 않는다. 가까이 다가와 이불을 걷어내고 바싹 귀에 달라붙는다. 옆에서, 혹은 내 안에서 녀석이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기를 반복한다. 녀석의 발자국 소리. 녀석의 호흡 한마디, 한마디. 마침내 우리는 하나가 된다. 모든 날, 모든 순간이 마치 '너' 하나였던 것처럼.



"저희 기관을 소개..소..개합니다아아..."

말끝에 염소 울음소리가 매달린다. 바야흐로 염소 등장의 서막. 자원봉사자들에게 기관을 소개하던 그때 그 시간이 잠결에 휙 지나간다. 십 년도 더 넘은 일이었지, 아마?


"이번엔 중학교 1학년 교안입니다아아아아."

염소 등장 2탄. 아니 이번엔 염소뿐이 아니다. 염소와 소와 양이 내 목소리에 한데 뒤섞인다. 삼사 년 전쯤의 일이었지, 아마?



'설마 오늘이 그날이 될까?'

오늘이 바로 전대미문의 '염소 등장 3탄'이 되지는 않을까. 강의가 있는 날이면 무심결에 '불안'을 확인하고 '불안'이 가는 대로 내 예측의 방향을 틀어 본다. 불안이 보여 주고 먹여 주고 재워 주는 나의 하루. 너의 숨이 내가 될 때 나는 내가 아닌 내가 된다. 목소리의 울림과 눈동자의 흔들림과 귓불의 따가움이 양념처럼 너의 뒤를 따라붙겠지.



말이 씨가 되고 생각이 열매가 되는 것일까. 직장에 도착하자마자 듣는 말.

"선생님, 갑자기 에어컨이 고장 났어요."

"네??!!"

학생들이 30명이나 오는 날인데 전시관 에어컨 고장. 비상사태다. 강의실을 따로 구하느라 분주한 운영 인력 선생님. 그리고 강의 순서와 방식 등을 갑자기 전부 바꾸어야 하는 사태. 다른 강사님과 체험 직전까지 작전을 짠다. 급한 불을 끄기 위한 급한 불안이 내 안에 꽉 들어찬다. '정녕 오늘이 그 3탄이 되는 날일까?'


<이거, 드디어 내가 나설 차례인 건가?>

아니, 아직 안 된다. 오늘은 너, 내게 와선 안 된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네 손을 다급히 뿌리치고 슬쩍 도망치려는 정신머리를 다시 붙들어 온다. 다행히도 아직 멀리 가지는 않았다. 자, 오늘은 어떤 말로 시작해야 할까.



"안녕하세요! 정식으로 인사부터 드릴게요!"

첫 문장이 내 입을 타고 발화된다. 아직 녀석은 내 숨결 끝에 매달려 있다. 하지만 아직 나는 무사하다. 내 앞에는 내 입에서 떨어지는 말 한마디 한마디를 기다리는 초롱한 눈빛의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서른 명 가까이 앉아 있다. 나는 급한 대로 내 애인을 나의 그림자 뒤로 쑤셔 넣고 밝게 외친다. '아직.. 아무도 나의 그 녀석을 보지는 않았겠지?'



1초,

2초,

3초....

그리고 1분.

불안의 숨소리가 점차 잦아든다. 새벽부터 나를 찾아오느라 아침잠을 설쳤는지 이른 시간부터 단잠에 빠지는 불안. 나는 토닥토닥 불안의 등을 두드린다. 영원한 잠은 없을 테지만 그저 무사히 이 시간만큼은 넘어가 주기를...



나의 애인, 나의 불안.

그가 쌔근쌔근 잠드는 소리만큼 기쁜 소식은 없다.




(사진: Horeb Gonzalez@unspal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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