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부터 하지 마.
-응? 누구야, 또?
일어나자마자 창문을 연다. 감나무다. 초록을 열고 나면 눈이 열린다. 밤새 비바람에 흔들린 감나무 열매들을 헤아린다. 그리고 오늘의 새는 직박구리. 이른 아침부터 감나무에 직박구리가 도착한다. 참 부지런도 하다. 감이 익었나 확인하러 왔으려나. 초록을 보러 왔나. 갸우뚱거리는 작은 얼굴이 특히 매력적인 직박구리다, 라고 속으로 말하고 있는데...
삑삑삑. 삐뽀삐뽀.
뭐, 뭐야? 무슨 소리야? 또 너야?
(영화 <인사이드아웃2>의 사춘기 알람 같다.)
아침부터 삐용삐용 심한 알림을 켜고 내 머릿속을 강타하는 나의 연인... 불안.
-그것부터 하지 마.
-오늘은 일 없어서 난 오늘부터 거의 주말인 셈인데?
-남들은 오늘도 빡세게 일해서 돈 버는데! 넌 가만히 있으면 안 돼!
-난 가만히 있는 게 좋아.
-가만히 있으면 굶어 죽기에는 딱 좋지. 그렇게 되면 영원히 가만히 있을 수야 있겠지. 그걸 원해?
-뭐 이렇게 극단적이야?
-잔말 말고 어서 베란다에서 나와. 지금 새들 귀여운 표정 쳐다볼 시간이 어디 있어?
-오늘은 일찍 일어났는걸?
-그러니까 이 시간을 더 아껴 써야지!
-왜?
-'왜'가 어디 있니, 이 세상에? 자, 일할 준비해.
-응? 벌써? 오늘 일 안 나가는데도?
-강의 연습 해야지. 넌 늘 불안하잖아. 그러니까 해야지.
-그 일은 다음 주 화요일에나 있는데.
-어허, 애인 말 안 들을 거야?
(무슨 애인이 이래. 하나부터 열까지 잔소리.)
-너, 내 욕했지?
(귀신이다. 아, 진짜 귀신은 맞는 듯.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데 내 안에서 계속 들리는 유령 같은 불안. 자꾸만 부피를 늘리는 나의 애인.)
-야, 하나부터 열까지 다 널 위한 소리. 내 말 듣기 싫은 너에게는 뻔한 잔소리!
-그거 노래 가사 아니야?
-아, 아무튼 간에!!
난 하는 수 없이 줌을 켜고 아침부터 강의 연습을 한다. 오늘은 꼭 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그냥 나는 불안과 열애 중이라서 독서나 명상이나 글쓰기를 포기하고 강의 연습부터 시작한다. 대체 애인(불안)의 말이 뭐라고...
-그래서, 이젠 뭘 어떻게 해?
-강의 연습 끝났어?
-어.
-그럼 이젠 15분 나노 단위로 하루 계획을 촘촘히 세워.
-왜?
-넌 날 좋아하니까(=불안을 사랑하니까) 그렇게 해야 해.
(부인을 못 하겠네ㅡ_ㅡ)
-15분? 그렇게까지?
-그래야.. 계획대로 살 수 있고. 그래야.... 내가 없어져.
-네가? 정말?
(우리, 그럼 헤어질 수 있어?)
나는 오늘도 불안의 잔소리를 먹이 삼아 아침을 일으킨다. 계획에도 없던 '일'을 먼저 준비한다. 그렇게 애인을 조금 잠재운 후에는 15분 단위로 오늘 하루를 빈틈없이 계획해 본다. 하지만 불안의 예언과 달리 계획대로 척척 되는 일이란 없다. 그저 '유령불안증후군' 같은 내 증상이 잠시 잦아들 뿐이다.
오늘도 그렇게 불안의 가스라이팅에 속아 억지로 나의 미래를 불안의 틀에 가두고 만다.
이 녀석의 교묘한 지배는 오늘도 나를 잊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