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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Jul 15. 2024

자연의 목격자

"여기 봐라. 너한테 인사하러 왔다."


일어나자마자 아버지의 부름을 받는다. 아버지는 베란다 방충망 앞으로 나를 안내한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어쩐지 조금 들떠 있다.



여름만 되면 이 녀석들이 '거주지 신고'를 '매암매암'으로 알린다. 지난주에야 올해 들어 처음으로 그 '전입신고 소리'를 들었다. 그 녀석이 이 녀석이었을까? 나는 이리저리 각도를 바꾸어 가며 녀석을 관찰한다.



"아니, 우리 밥 다 먹도록, 차 다 마시도록 아주 오래 매달려 있네?"

"매미가 인내심이 많은 편인가 봐?"

"그러게. 한 시간 넘게  한 자리에서 매달려 있네?"

"아니야. 아주 조금, 한 2.5cm 옆으로 이동했어요!"

"아, 그러네. 그래도 참 오래 매달려 있다."


자연의 목격자 3인방은 오늘도 자연이 준 선물을 관찰한다. 아침부터 조용한 움직임으로 우리 눈앞에서 자기 배를 다 '까 보이던' 매미. 이제 매미의 울음소리가 한여름을 채우겠지? 우리는 그 소리가 반가우면서도 너무 많은 매미 앞에서는 잠시 창문을 닫아 둘지도 모른다. 그래도 올여름에는 그 소리를 시원하게 많이 들었으면 좋겠다. 자연이 주는 소리니까. 



굼벙이 매암이 되야 나래 쳐 날아올라

노프나 노픈 남게 소릐 커니와

우희 거믜줄 이시니 그를 조심하여라



청구영언의 한 시조가 절로 떠올랐다. (직장에서 체험관 활동을 진행하며 늘 소개하는 시조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왜 매미(매암)를 보며 이런 시조가 급 떠올랐는지 모르겠지만 이건 어쩌면 예언과도 같은 상상이었다.



"엇! 오늘은 물까치도 왔네. 어머. 귀여워라."


매미 감상 중에 우연히 새가 날아들었다. 평소 물까치는 떼를 지어 우리 집 아파트 앞마당에서 노닐곤 한다. 오늘은 한 마리만이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오늘도 목련, 모과, 감나무를 순회하러 왔나 보다 했다. 까치보다 화려한 색감과 작은 몸집에, 평소 넋을 놓고 녀석들을 귀여운 시선으로 감상하곤 하였는데... 동화 같이 귀여웠던 이 녀석이 갑자기... 잔...혹동화를...


"헉. 뭐, 뭐야?"

나는 방심했다. 모과나무에 앉았던 물까 녀석과 매미와의 거리가 불과 30~40cm였던 것! 그렇게 '매의 눈'으로 물까치가 매미를 쳐다보고 있었는지는 몰랐다. 아무 소리도 안 내고 방충망에 매달려 있던 매미. 방충망이라는 시선에 가려 크게 눈에 뜨이지 않았으리라 착각하였던 인간의 시선과는 달리.. 물까치에게는 '너만 보인단 말이야' 같은 시선이었던 것.


그렇다. 물까치와 매미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

20초가량의 추격전 끝에....



1분 후...



옆 동 1층 대추나무 나뭇가지에 평평히 앉아... 물까치는 아주아주 오랫동안... (매미 녀석 몸집이, 물까치에겐 작지 않았던 게지...) 아침부터 거하게 식사를 했다.


하아...


"짠하다...."

"이게 자연의 순리야.."

"에이 그래도 좀 안됐다야."


문장들은 모두 아버지의 문장이다. 오늘따라 혼잣말이 많으시다. 어쩔 수 없는 순리이고 물까치도 먹고살아야 한다. 안다. 다 아는데....



그래도 올여름...

우리 '자연 목격자 3인방'이..

처음 본 매미였다.


살아생전 매미의 사진은.. 그렇게 또 내 카메라 갤러리 '지연' 폴더에만, 덩그러니 남았다.



'어떤 여름'은 너무 짧아서

여름이 오고 가는 소리를 듣지 못하기도 한다.





덧1: 한여름을 한 달, 두 달이라도 좀 즐기다 간 거라면 나았으련만... 맴맴 몇 번 해 보지도 않고...... 아무튼... 잘 가.
덧2: 이번에도 물까치의 식사 장면은 차마 찍지 못했다. 때로는 '지연의 순리'를 찍는 일도 마음이 부대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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