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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3시간전

많이 컸구나

많이 컸구나.



이랬던 너희가..


이렇게까지!


스스로 수압을 뚫고 흐르는 냇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기까지 하는 새끼 오리들!

어미는 그런 너희를 묵묵히 따르다, 멀찌감치 너희를 지켜보다 말다를 반복. (바짝 붙어 다니던 때는 옛말.)



옹기종기 모여 한가로움을 즐기던 오리 세 가족.


그러다 어미 오리... 

갑자기 발 한 짝을 든다. 그러고는 웬일로 날갯짓을 한다. 그 모습을 줌을 당겨 찍고 있는데... 갑자기..

읭????? 어..어디 가???



네가 날아간다.

내가 살린 오리라 자부하던 네가, 갑자기 새끼 오리를 두고 날아 버린다.

https://brunch.co.kr/@springpage/493


사진을 찍다 말고 깜짝 놀라 같이 산책 나왔던 부모님께 그 사실을 고한다, 아니 고자질한다.


"아니야. 금세 올 거야."

자연다큐 전문가의 첨언이 이어진다. 아직 어리고 날지 못하므로 아버지는 단언한다. 하지만 자꾸만 불안한 마음. 실은 작년에도 이런 장면을 목격했다. 새끼오리 대엿 마리가 물새연못에서 놀고 있을 때 어미 오리가 갑자기, 정말 너무나도 별안간에 휘리릭 날아가 버렸다. 그때도 딱 이 분수대 위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때 그 새끼오리들은 신나게 연못을 휘젓고 다니다 어미가 있는 곳으로 다시금 모여들었다. 그런데 놀다 와 보니 어미 오리가 없다. 어리둥절하여 뒤적뒤적 두리번두리번. 그때 그 당황스러운 새끼 오리들의 몸짓을 아직도 기억한다.

아, 어미 오리는 자식들을 저렇게 떠나는구나.


하지만! 지금 이 오리들은 다르다. 어미만큼 컸고 날 수도 있었던 작년의 오리들과는 다르다. 아직 전혀 날지 못하며 몸집은 어미 오리의 2/3 정도 크기에 불과하다. (그리고 어미 오리는 다른 오리들보다 몸집이 작은 편이기도 하고.)


5분.. 10분... 그리고 20분...

"아부지, 어미 오리가.. 올 생각을 안 하는데요..?"


자연다큐 전문가도 말이 없다.



많이 컸구나, 이러면서 날아간 것일까. 오늘 새끼 오리들은 물살을 거슬러 오르며 꾸역꾸역 세찬 물보라를 이겨 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많이 컸구나, 나는, 이 어미는 그럼 이만 안녕. 이랬던 것일까?



새끼 오리들은 제 어미가 어디 갔는지 어쩐지도 모르는 채로 광합성을 즐기듯 동그랗게 몸을 말고 부동자세로 분수대 위에 앉아 있다. 그러다 분수가 팍 하고 솟아오르자 급히 연못으로 내려온다. 하지만 어미를 찾는 기색은 없어 보인다.


떠난 것을 눈치챈 걸까, 아니면 돌아오리라는 확신을 하기에 아무렇지 않은 까.



너희 참... 많이 컸구나.

어미가 곁에 있든 없든

이제 너희는 평소와 다름없이 일상을 살아간다.


정말 많이 컸구나.

인간인 나는 아직 자라는 법을 모르고 있는데...

너희 두 마리.. 정말 많이 컸구나.



(추신: 자연 목격자 3인방은 당혹스러움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 이 산책길에 올랐을 때 너희는 두 마리일까, 다시 세 마리일까. 정말 어미는 가 버린 걸까...? 정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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