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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Aug 12. 2024

오리 스토커의 최종 보고

날아가 버렸다고 단정해 버린 생명들이 다시 날갯짓을 하며 물살을 가른다.

https://brunch.co.kr/@springpage/525




희, 돌아왔구나!

아니, 여기 계속 있었구나!


돌아오지 않았다는 나의 단정은 착각이었다. 아직 날지 못하는 새끼 두 마리를 두고 훌쩍 가 버린 것이 아니었다. (꽤 의리가 있는 어미 오리였다.) 어미 오리는 다만 연습과 결심 사이를 오갔던 것뿐이다. 헤어질 연습을 하면서 떠날 결심을 하던 중이었으리라.



그간 새끼 오리의 날갯짓에 몸서리치기도 했고,

물새연못 말고 이곳저곳 다른 곳을 배회하고 탐험하는 너희를 보며 신기한 마음으로 두근대기도 했고,

새끼 두 마리를 두고 멀리 외출을 다녀온 어미 오리를 종종 목격하며, 동시에 어느새 어미만큼 자란 새끼들에 문득 놀라기도 했다.(근데 어미 오리, 너도 독박육아 하느라 그동안 많이 힘들었겠다.)



산책길에 나설 때마다 질문했다. 오늘은 날아갔을까?

휴, 아직 있다.

오늘은 정말 날아갔을까?

오, 아직 있다, 있어!


설마 오늘도?!

어? 어? 오늘은 없네. 세 마리 모두..

......



해 질 녘. 이 시간이면 분수대 위에 올라가 잘 준비를 하던 너희다.

그러나 떠날 때는 말없이.

이번엔 진짜 간 걸까?


내가 너희 스토커가 된 이유. 유독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나의 이유. (또 한 번 우려먹는 이야기... 링크를 참조..)

https://brunch.co.kr/@springpage/493



뜨거워지기 시작한 6월 중순부터 한창 뜨거운 이 8월 한여름까지 나의 산책길을, 나의 마음 길목길목을 채워 주었던 친구들.



말로 다 할 수 없는 자연 그대로의 기쁨으로,

내 마음이 텅 빌 때마다 나를 채워 준,

혹은 넘쳐나는 나의 고민 사이사이로 설렁설렁 빈 틈을 만들어 준,

그런 너희를 기억한다.


우리, 내년에 혹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산책길 구석구석 모퉁이를 돌 때마다 당분간 우리는 너희를 다시 기억할 것이다.

너희가 붙들어 준 여름을 기억할 것이다.

2024, 나의 여름은

모든 날, 모든 순간이, 오리 세 가족, 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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