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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Sep 18. 2024

추석 때 잠깐 봬요(feat. 오리 셋)

오리 가족 고향 방문

가윗날.


우리나라 명절의 하나, 음력 팔월 보름날. 추석 또는 한가위, 한가윗날, 혹은 가위라고도 불리는 날. 그날을 앞둔 며칠 전, 갑자기 발비(빗발이 보이도록 굵게 내리는 비)와 억수가 교차되며 급히 세상을 흐리게 만들던 날. 누가 나의 고향(이라 하기엔 이사 온 지 만 4년밖에 안 된 곳이지만...)에 찾아와 줄까 싶었던 그날, 그들이 왔다!




"엄마, 저기 빙빙 도는 세 마리. 오리지, 그치?"

오리들은 날갯짓이 다르다. 퍼드덕 소리가 세차다. 아무래도 물갈퀴를 다리에 매달고 날아야 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어머, 진짜 세 마리네! 그 오리 가족 아니야?"


몇 주 동안 보지 못했던 오리 가족. 흔적도 남기지 않고 가 버려 새끼들이 독립했겠거니 추측만 하였다. 날 수 있는 새끼들을 데리고 다닐 리가 없지 않은가 싶었던 것. (그러나 가만 보니, 새끼 오리 말고 인간들도 부모의 둥지를 떠나지 않고 엉겨 붙곤 하더라. 물론 이건 '나'라는 인간의 이야기.)


"어머, 연못에 내려온다, 내려앉으려나 봐!"

반가운 탄성이 이어지고 우리 세 식구는 억센 비를 피해 찾은 정자에서 오리 가족의 비행과 착륙을 주시한다. 물살을 가르며 내려앉는 모습이 어느 활주로의 비행기 못지않다. 아니 어느 착륙보다 장관이다.


엄마를 따라 일렬로~~~


"추석이라고 고향에 왔나 봐!"

"명절맞이 고향 방문!"

너나없이 오리 가족의 재방문을 인간의 시선으로 치환한다. 오리 가족은 자신들이 놀던 연못에서 한참 수영을 하고 수풀 사이를 가로지르고 이끼 긴 계단을 오르내리며 무언가를 주섬주섬 찾아 먹는다.

(휴대전화로 줌을 당겨 보니 아직 날개가 성체만큼 크지는 않았고 날개 쪽 색깔도 뭔가 어미와는 살짝 달라 보인다. 연못으로 툭 떨어져 내려오는 모습도 제 어미와는 다르다. 어미는 날개를 이용해 물가로 쫙~ 내려앉는데 새끼 오리들은 날개 대신 자기 몸체를 공 내리꽂듯 그대로 툭 물속으로 던진다.)

그러다 세 마리가 잦아든 비를 틈타 등반을 시작한다. 아직 날지 못하던 그때를 떠올리며 자신들만의 아지트였던 웅덩이로 향하는 것이리라!


수풀 옆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은 이 오리들을 못 보고 지나치는 경우가 꽤 많다. 특별히 오리 가족에게 관심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쉬이 눈치챌 수도 있겠지만 보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만 보이는 풍경들도 있다. 그들의 '웅덩이 일탈'은 추석 연휴를 앞두고 우리 세 식구의 마음을 반가움과 즐거움으로 채워 준다.


그리고...!


연휴가 되어 또 한 무리의 반가움들이 방문한다. 내 사랑, 쌍둥이 조카가 출동한 것! 오리 가족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반갑고 사랑스러운 나의 조카들. 신나게 대화하고 신나게 같이 게임을 하고, 신나게... 놀 줄로만 알았지만... 웬일인지 저녁 즈음, 자기들 집에 얼른 가고 싶단다. 집에 가서 또 다른 게임을 하고 싶으신 모양들이다.


"그.. 그래. 잘 가."

할머니의 맛있는 떡만둣국으로 저녁을 제안하며 유혹해 보지만 그 어느 갈비찜과 그 어느 육개장 등으로도 붙잡을 수 수 없는 내 사랑, 조카들. 키가 크고 마음이 크고 날개가 크면 이렇게 서서히 멀어지고 그러다 급격히 자기들 세상으로 날아가 버리겠지? 아쉬움은 세 식구의 '저녁 산책'으로 달래는 수밖에...



공원에 도착해 보니 아직 오리 가족들은 가지 않았다. (오리 가족의 추석 연휴는 길어질 전망이다.) 어쩌면 이곳에 터를 잡을지도 몰라! 괜한 기대로 그들을 바라보며 '오리멍'에 또다시 빠져 본다.



우리나라 텃새가 되었다는 '흰뺨검둥오리' 세 식구가 언제까지 이 연못에 머물며 우리를 반겨줄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정말 추석 연휴 동안만 머무는 것일 수도 있고 이번 가족 여행을 마지막으로 정말 독립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선택과 어떤 미래가 기다리든, 오리 가족도 나의 쌍둥이 조카도 늘 '나고 자란 곳'을 잊지 않고 다시 고향에 들러 뒹굴뒹굴 노는 모습을 보여 준다. 집에 가고 싶어 하는 조카들을 떠올리며, '잠깐 명절'이었던 시간들이 앞으로 점점 더 귀해지리라는 생각이 든다. (오리 가족을 보는 시간들이 매우 귀해지고 점점 더 희귀해지게 되는 것처럼...)


오리 가족. 또다시 세 마리 모두 떠나건, 새끼 오리들만 떠나건, 명절이 지나면 '떠남'은 필히 닥칠 수밖에 없는 미래다. 연휴도 떠나고 찾아왔던 이들도 제 일상으로 다시 떠난다.



그래, 나도 다시, 일상이다.

잘 쉬었고, 오리들과도 잘 놀았으니,

이제 다시 일상으로 떠나야겠다.


일상 시작... 그리고

.

.

.

연휴 끝.



(그래도 찾아와 준 이들이 있어 추석을 추석이라 부를 수 있었다. "다음에 또 봐, 오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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