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퇴사를 했을 때, 아니 싸운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을 직장 내 갈등에 치여 퇴사를 선택했을 땐 그다음이 없을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갈등을 겪으며 넘치던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여 난 글을 썼고 이것은 독립출판물이 되었다. (유통은 하지 않고 주변 지인들에게만 나누어 주었다. 내가 힘들었고 그러나 극복했던 몇 년간을, 일일이 설명하는 대신 책에 담아 내 시간을 건넸다.)
그때는 이틀이 멀다 하고 눈물바람이었는데 돌아보니 세상은.. 내게,
더 좋은 것을 주었다. 책 한 권 분량의 눈물들이 활자가 되어 오롯이 내 생에 남았다.
더 먼 과거로 돌아가 본다.
스물넷부터 시작한 수험 생활. 취업도 시험도 만만한 것이 없어 시험으로 세상의 문을 뚫어 보려 애쓰던 시절이었다. 도서관을 제집처럼 드나들었고, 실제로도 도서관이 나의 낮과 밤을, 밥과 눈물을, 졸음과 절망을 다 지켜봐 주었다. 그러나 예닐곱 번 넘게, 그러니까 육칠 년을 투자하던 나의 어수룩한 꿈은 매번 불합격의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그래, 나에게 이다음은 없겠구나. 이렇게 이십 대를 통째로 날린 사람을 누가 세상의 일꾼으로 받아 주겠는가?
그때는 하루가 멀다 하고 잠을 줄였고 욕망을 줄였고 미래를 미뤘기에 내 청춘은 거기서 끝이 나는 것으로 여겼는데 돌아보니 세상은 내게...
더 좋은 것을 주었다. 온전한 실패는 나에게 '적당한 겸손'과 '포기할 줄 아는 용기' 및 '타인의 실패나 실수에 대한 넉넉함'을 선물해 주었고, 나는 차후 '학교가 어렵고 두렵고 재미없는' 청소년 친구들을 만나 나의 실패담을 나누며 서로를 더욱 이해하고 더욱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요즘 나는 내일이 알 수 없고 다음 계절을 알 수 없어 가끔 전전긍긍한다. (2025년은더더욱 내게서 멀어진 미래가 되었다.) 그러다 어제 아침 베란다에서 발견한 햇볕.
햇볕은 창문 틈을 뚫고 들어와 식물들에게 살아갈 힘을 주었고, 화분 옆에 놓인 의자에는 아름다운 그림자를 그려 주었다. 자기 혼자서만 오는 햇볕은 없었다.
지금 사는 이 집으로 이사를 온 지 만 4년. 지난 17년간 나의 20대와 30대를 모조리 지켜보았고 책임져 주었던 집을 떠나기로 하던 날, 나는 방구석에서 몰래 나 혼자 눈물을 펑펑 쏟았다. 17년이 담긴 집을 떠나면 어디서든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추억과 청춘을 마구 내다 버리는 느낌까지 들었다. 그러나, 또 한 번 돌이켜보니 세상은..
이렇게 내게 예쁜 햇볕이 담긴 새집을 주었다. (실제로는 30년 넘은 헌 집이지만 내게 새 시간을 준 새집이다.) 바로 내다보는 창문 밖에서는 목련, 모과나무, 감나무, 앵두나무가 새들의 지저귐과 뒤섞인 채 자연을 노래한다. 17년의 헌 집이 가고 나니 그다음의 새집이 있었다.
그럼 나의 삶,
이다음은 무엇일까.세상은 무엇을 내게 줄까.
이쯤에서 잊지 말기로 한다.
지금 조금 덜컹거리고 가끔 캄캄하지만..
세상은 항상...
뒤돌아보면, 늘 내게 좋은 것을 내어주었다는 사실을...
(깨닫기만 한다면 나는 곧 이 진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은 내게 항상 더 좋은 것을 주었지
나에게 세상이 그러했던 것처럼 당신에게도 세상이 분명 더 좋은 것을 줄 것이다. 아직 잘 모르겠다면 딱 오늘 하루만이라도 나에게 더 좋은 것을 주어 보자. 그것이 세상이 나를 대하는 방식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