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책장봄먼지 Nov 18. 2024

11월, 글쓰기가 특히 어려운 이유

11월, 매일매일을 나의 생일로 보내기로 다짐했건만,


https://brunch.co.kr/@springpage/619


신나게 글을 쓸 시간이 부족했다. 그리고 '신나게' 글을 쓰는  자체도 어려웠다. 11월 중순을 넘은 지금, 그 이유를 탐구해 본다.



11월, 글쓰기가 어려웠던 물리적 이유


우선 물리적인 이유... 사진으로 설명을 대체한다.



김장 담그기. 우리 집 이벤트 가운데 제법 큰 행사에 속한다. 11월 8일, 직장 내 부담스러운 업무가 끝나서 이제 정말 매일매일을 내 생일로 보내야지, 야호, 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나만의 '순전한' 착각이었다. 나의 일정은 나와 상관없이 이미 결정이 난 상황이었다.


-내일 배추 보러 가려고.

-어디로?

-농협이랑 마트랑 홈플.


내일도 내일모레도 그다음 날도 우리는 배추 찾아 삼만 리였다.


1년 치 양식이었다. 도토리와 상수리를 찾아 헤매는 청설모나 다람쥐처럼 우리는 치라는 저장 양식이 필요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는 김치가 매우 부족했다. 아끼고 아껴 먹었다. 쌍둥이 조카가 우리 집 식탁을 볼 때마다 거의 일주일에 한 번씩 "이모, 김치 부침개는 없어?"라고 이야기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어느새 어른 식성이 되어 버린 조카들이 김치 자체도 넙죽넙죽 잘도 먹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최대한 넉넉히 김장을 해야 했다.


-몇 포기나 하려고?

-작년에 42 포기를 했는데도 모자랐으니까 조금 더.

-흠...


11월 9일부터는 본격적으로 쉬엄쉬엄 일할 생각이었다. 여유롭게 살고자 했던 나는, 방탕에 빠질 물리적인 시간이나 공간 확보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어느 날은 저녁 10시가 다 되어서야 처음으로! 책상 앞에 앉아 보았다. (세상에, 책상이고 의자고 소파고 간에 그날 처음으로 제대로 앉아 본 거였다. 온종일 어무니, 아부지와 배추 나르고 배추 절이고 중간중간 소금 뿌리고 다시 나르고 배추에 양념 묻히고...)



그래서 변명을 해 본다. 총 50 포기의 김장을 1차, 2차로 나누어 연달아 진행하다 보니 글을 쓸 짬이 안 났다. 일주일 내내 배춧잎만 바라보며 살았다. 일하는 중간중간 김장을 한 것이 아니라 김장을 하는 틈틈이 살짝살짝 일을 하고 돌아왔다. 일을 하고 돌아오면 배추가 나를 보고 방긋, 웃고 있었다.


그러나 11월의 글쓰기가 힘들었던 이유는 이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다음은 더 내밀한 이유.



11월, 글쓰기가 어려웠던 심리적인 이유


이젠 공식적으로 김장을 끝마쳤는데도 다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으니... 뭘 써야 할지 모르겠더라... 중간중간 게으름을 피워 보니 참 편했다. 글쓰기가 없는 삶도 그 나름 살 만하였다. 글쓰기 없는 삶과 있는 삶 가운데 그래도 '있는 삶'을 살자고 겨우 다짐하고 그간 내가 쓴 글을 되돌아보았다.


1년 내내 나의 '매일 글쓰기'를 돌아보니 질보다는 양이었다. 물론 양보다 질로 글을 쓴다고 해서 딱히 품질이 높은 글쓰기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른 분'들의 글을 가끔 들여다보면, 어쩜 그리 깊고 넓고 대단한 이야기를 쓰시는지, 그 방대하고도 통찰력 있는 식견에 늘 감탄한다. 그러다 내 브런치로 돌아와 '글쓰기'를 누르고 나면...


나, 근데 이거 써도 되는 거야?

좀... 일기장 같지 않아? 너무 자질구레한데...

대체 이런 이야기를 누가 궁금해할까? 이걸 누가 봐?


'안물안궁(안 물어봤고 안 궁금한)' 이야기를 펼쳐 놓는 느낌이 들곤 했다. 그런 느낌으로 작년 12월부터 11월까지 글쓰기를 이어 온 셈이다. 게다가 브런치에는 뭔가 멋들어진 글을 써야만 할 것 같은 압박감도 들었다. 


그럼, 이제 글쓰기 안 하게? (내가 나에게 묻는다.)

 

응? 그건 또 아닌데... 그럼 일단 써야지! 안 쓸 게 아니라면 그리 대단하지 않아도 조금은 단단한 글을 써 내려가면 되는 것이 아닌가?



이걸 다 누가 먹어? 누가 먹는다고 이렇게까지 많이 담가? 김장을 하며 든 생각이다. 이 글을 누가 읽어? 누가 본다고 이렇게까지 거의 매일 글을 써? 브런치에 글을 쓰며 든 생각이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 보면...


(내 글) 내가 본다.

(우리 집 김치) 그래, 김치도 내가 먹는다.


김장할 때는, 글을 쓸 때는 의심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힘들여 김치를 담가야 하나? 졸리고 피곤한데 누가 보지도 않는 글을, 이렇게까지 열심히 써야 하나? 김치 먹는다고 내 건강이 확 바뀌나? 글을 쓴다고 내 인생의 반전이 가능하나?



11월 글쓰기가, 아니 그간의 모든 글쓰기가 조금씩 어려웠던 이유는 물리적 시간의 부재 때문이기도 했지만 내 글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였기도 하다. 그러나 찬찬히 다시 생각해 본다. 매일매일 조금씩 쓴 글들이 나의 '저장 양식'이 되어 일 년에 한 권, 나의 독립출판물이 되어 주었다. 아니 꼭 손에 쥔 결과물이 아니더라도 1년 가까이 열심히 꾸역꾸역 쓴 글들이 모여 내 삶이 거기 있었음을 조금쯤 증명해 준다.



그래, 앞으로는 김치를 담그는 마음으로 글을 쓰자.

내 몸을 건강히 채워 줄 1년 치 김치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내 마음을 건강히 지켜 줄 1년 치 글쓰기를 하루하루 채워 나가는 마음으로...


 

오늘은 겉절이가 식탁에 올라올 것이다.

맛있게 먹고 또 힘을 내서 11월의 글쓰기를 이어 가 봐야겠다.

쓰다 보면 언젠가 묵은지 같은 글도 쓸 수 있겠지. 아니 겉절이만 쓰더라도 그것은 그것대로 맛있지 않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