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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8시간전

불안, 퉤퉤퉤

넌 안 무서워?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자꾸 묻는다. 넌 안 무섭냐고. 이대로 나이 드는 것이.  나이로 막막한 미래를 껴안는 일이.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아닌 지금이...


안 무서워? (무섭지?)

무서워야만 한다는 듯이 재차 묻는다. 나는 묻혀 둔 무서움을 조금쯤 꺼내서, 늘 하던 버릇대로 "응. 나도 좀 무섭지, 뭐."


차마 나는 지금 '완전하다'고 외치지 못했다. (요즘 몇 달간 이렇게 생각해 왔고, 그래서 조금쯤 편해졌으면서도 보란 듯이 '안 무섭다'고는 말하지 못했다.) 누가 뭐라 하건 세상이 뭐라 하건 심지어 내가 뭐라 그러건 나는 흔들리지 않는 나 자체로 완전할 수 있다고, 그렇게 믿고 살기로 했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하지는 못했다. 사실 세상이 보기에, 그리고 그 세상 속 누군가가 보기에 내 삶은, 그렇게 퍽 '완전한' 삶은 아니. 하지만... 친구의 질문에 뭐라 덧보태고 싶은 이야기들이 문득 떠오른다.



지난밤의 일이다. 눈을 감고 잠이 들려는데 갑자기 느낌이 이상했다. 고요한 가운데 무언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귀... 귀신은 아니겠지..? 눈을 뜰까, 말까. 하지만 망설임은 짧다. 보통 이불 밖으로 나가 확인을 꼭 하고 다시 잠드는 편이다. (모기는 확인 해도 귀신은 확인하려 든다.) 이불을 내리고 주변을 살핀다. 방문을 열고 밖을 내다본다. 역시 아무것도 없다. (가끔은 크게 소리 내며 날아다니는 벌레일 때도 있다. 그때는 정말 기겁한다. 귀신보다 벌레가 더 무섭다.)


눈을 똑바로 뜨고 기어코 확인을 해야 맘이 더 놓인다. 혹시 '미래'가 그간 무서웠던 이유는 내가 너무 실눈을 뜨고 쳐다봐서일까? 혹은 눈을 감고 미래를 내다봐서 미래가 더 깜깜하고 무섭고 무거웠던 게 아닐까?


그동안 내가 불안했던 이유, 무서웠던 이유는 대략 이런 것들이었다.


▷이 일이 내 일이라는 생각을 하는데도 계속 이 일을 하고 있다.

▷평소 남 앞에 나서는 게 좀 두려워서 대면 수업이 껄끄럽다.

▷모아 둔 것은 고작 '나이'뿐이라서 나이만 과식하는 게 무섭다.

▷남들은 이 나이가 이제 좀 편안하다는데 나는 좀체 편안하지가 않고 사는 게 자꾸 부대낀다.


'도망가기 달인'인 나도 친구의 그 무서운 심정을 안다. 나나 친구나 하루살이 목숨이다. 남은 장년 노년의 나를 생각하면 더럭, 어떻게 살아야 할지 불안할 때가 많다.


눈 감아 봐.

응? 왜?

깜깜하지?

응.

그게 네 미래야.


예전엔 이런 우스갯소리도 떠돌았다. 그런데 아니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미래는 우리에게 감감무소식이다. 미래를 미리 반짝 알려 주는 법 없이 깜빡이도 틀지 않고 불쑥 들어와 우리의 현재를 헤집는다. (한두 번 당하는 일이 아닌데도 이골이 안 난다.)


그제 난... 무서움에 공감하려고 친구의 불안에 내 불안의 불씨를 끼얹었다. 우리는 활활 타오르는 불안의 활화산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우리가 앉은자리까지 불안의 불길이 번졌다. 그런데도 우리는 좀처럼 움직이지를 못한다. 불안이 떠나면 더 불안할까 그게 더 불안한 거다. 무섭지? 안 무서워? 이런 물음표들을 불쏘시개 삼아 우리의 불안에 더 불을 내지른다.


그렇게 숫자가, 나이가, 세월이, 불안이 우리의 목을 조인다. 그럼 그렇게 계속 목이 졸려야 할까? 그 조르는 불안의 손길에 내 두 손을 같이 얹어 더 짓눌러야만 할까?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니까? 아니, 아니, 아니다. 엎친 데 덮친 격만은 멈춰야 한다. 불안의 조력자가 되는 일에 나의 하루를 걸어서는 안 된다.


때때로 미래는 우리에게 귀신이다. 괴물이다. 다음 단계의 인생으로 진입하기 위한 최종 보스다. 겨뤄야 하는 상대일 수도 있다. 물론 현재의 레벨에 만족하고 그 자리에 머물러도 된다. 선택은 플레이어의 몫이다.


그럼 우리는, 괴물을 상대할 땐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괴물을, 되도록 똑바로 쳐다봐야 하지 않을까. 괴물의 눈, 코, 입, 귀가 어디에 달렸는지, 왜 내가 이 괴물을 그동안 무서워했는지 관찰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그 생김생김을 뜯어보고 나서 무서워할지 말지 결정해도 늦지 않다.



한 번도 위로 솟은 적이 없고, 누가 우러러본 적도 없는 삶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내 삶을 꼭 무서워해야만 할까?

미래를 미리 끌어당겨와 자꾸만 자기 마음대로 파헤치고 헤집으면, 그게 되레 더 불안하지 않을까?



나는 불안하다, 퉤퉤퉤.

너도 불안하지? 퉤퉤퉤.

안 무서워? 응, 무서워할게. 퉤퉤퉤.

우리 같이 계속 불안하게 살자. 퉤퉤퉤.


불안, 퉤퉤퉤.


불안하다고 말할 시간에 그 불안의 모양을 눈 똑바로 뜨고 마주 봐야겠다. 

늦은 밤, 자다 깨어 방문을 열고 문 밖을 내다보던 그때 그 심정으로, 실체가 없는 불안을 똑바로 마주 보고 이렇게 주문을 외쳐야겠다.


퉤퉤퉤.


그렇게 <퉤퉤퉤 주문>외치며 오늘 밤은 편히 잠들고 싶다. 꿈속에서는 부디 '안 무서운' 미래와 함께하기를. 잠에서 깬 내일은 조금 덜 무서운 미래와 함께 걸어 나갈 수 있기를..!





추신: 아래 링크는... '퉤퉤퉤'의 정석을 보여 주는 사례다. (1:20부터 '퉤퉤퉤'의 서사 시작.)

https://youtu.be/4-dGIgRfbc8?si=X8qlnQGS3pVFmQ65



(사진: Brett Meliti@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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