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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Dec 06. 2024

겨울, 빳빳해진 불안

겨울이 되니 마음이 살짝 '요상'하다. 아니 수상쩍다. 열심히 살아가리라, 굳세게 주먹을 쥐고 마음을 '영치기영차'로 끌어당겨 보는데도 틈만 나면 물 먹은 스펀지처럼 착 가라앉곤 한다. 계절 탓인가? 그래, 계절 탓일 거야,


라고 생각하다가 내게 비어 있는 게 뭐지? 곰곰이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내게 없는 것은??

1.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이 하필..) 미래..

2. 돈

3. 애인


2번은 없어도 그 나름 살 만했었는데 겨울이 오니 불안하다. 직업을 갈아타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겨울방학 때 프리랜서 강사 일이 소강상태로 들어간다.) 3번? 이건 있으면 더 골치 아프다. 둘이서 같이 '불안'해하고 우울해하면 그것만큼 볼썽사나운 일이 없을 것만 같다.

어째 글을 쓰다 보니 겨울의 나는 조금 삐딱해진 느낌이다. 불안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사람이, 융통성이 (더 많이) 없어졌고, 하루에 한 번씩 불안이 꼬박꼬박 내 마음에 출석을 해 버린다. 얘는 지각도 없네... 아무래도 이거, 계절 탓이다. (겨울 네 탓이야...)



그렇다. 겨울 불안은 참 건조하다. 푸석하다. 물기가 없다. '우울'이 '수용성'이라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는데 '겨울 불안'은 물기가 없으니 자꾸만 더 메마르나 보다. 물에 녹일 수가 없다. (가습기가 있어야 할 판이다.) 마음이 빳빳해지다 보니 불안은 좀체 구겨지지를 않는다. 빳빳하지만 부러지지도 않는다. 어디 가슴 한구석에 숨겨 두고 싶은데 자꾸 뾰족뾰족 튀어나와 버린다. 어쩌지?



아, 그래. 이럴 땐 나만의 문장을 쓰며 다짐하곤 했었지. 9월엔 '나는 완전하다', 10월엔 '그냥 다 감사합니다', 11월엔 '매일매일이 생일', 그리고 12월엔?? 그래, 너로 정했다!



그래, 겨울엔 1일 1기쁨, 강제로 보급해야겠다. 마음이 가라앉을 때면 몸이 주저앉았다. 하지만 강제로 기쁨을 주입하기로 했으니 가만있으면 안 된다. 뭐라도 하자, 그래 웃긴 노래를 들어 보자. 기분이 나아지지 않을까? 불안을 조금이라도 구기거나 접어 둘 수 있지 않을까?


그거 아세요? 정말 이 방법이 통합디다... ('그거 아세요'라는 노래가 있다는 거, '그거 아세요?')



https://youtu.be/ez14wJep4Zw?si=I8vtwwJm1PGXnKMk


그거 아세요?

저 모눈종이 샀어요
누워서 발로 박수 치면 기분이 좋아져요 oh
그거 아세요? 저 얼굴에 점 12개 있어요
할머니가 아빠 보고 도토리묵 가져가래요 oh
문어 심장 세 개, 우리 집 콘센트 13개
제가 제일 좋아하는 단어는 핑킹가위입니다.
병뚜껑 톱니 개수 스물한 개 세계 규격으로 정해져 있죠
오늘 딸기 네 개 먹었어요 원래 다섯 개였는데 한 개는 딸기 씻어 주신 어머니가 드셨죠
초코송이는 머리가 삐딱해서 귀여워요
갈비탕에 있는 당면은 싫어하지만 찜닭 당면은 좋아요


처음부터 약간 '노답'인 가사들이 나온다.


그거 아세요? 저 모눈종이 샀어요 (뜬금없다. 그래서 빵 터짐.)

누워서 발로 박수치면 기분이 좋아져요 oh (따라 해 보았다. 따라 하고 있는 내 모습이 웃겨서 웃었다.)


원곡자는 따로 있다. 이 곡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은 이렇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쓸데없는 이야기를 댓글로 받은 후 1인 창작자이자 작곡가인 '과나'라는 분이 노래를 만들었다. 그게 바로 '그거 아세요'이다. (이미 널리 유행한 노래여서 조금 뒷북일 수도 있지만 내가 완곡을 들은 건 며칠 전이 처음이었다.)


https://youtu.be/n0oBBQoE06g?si=tfL-MhftzPrpBNEz


우선 노래 전체를 듣기 전, 가사를 먼저 엄마에게 읽어 주었다. (읽어 주며 처음으로 제대로 가사를 음미해 보았다.) 그런데 읽어 주다 말고 실성한 듯 웃음이 나와 버렸다. 엄마는 가사가 웃기기보다 내가 정신없이 웃는 모습이 너무 웃겨서 같이 정신없이 웃으셨다. (저 멀리 방문 너머 아버지는 "아니, 웃긴 이야기 해 준다면서 자기가 웃어 버리면 어떡하냐?"라고 하셨지만 '어떡하냐'라는 말 끄트머리가 흔들리고 있었다. 아버지도 내용에 상관없이 내가 배꼽 빠진 목소리로 거의 울 듯이 웃어대자 그게 더 웃기셨던 거다.)



웃기지도 않은데 웬 오버냐, 싶으실지 모른다. 아니 잠깐요, 그냥 나가지 마시고, 글쎄, 한 번 더 들어 보세요.


그거 아세요 귤에 붙어 있는 하얀 거 이름은 귤락 입니다

찰떡아이스는 세 알이었고

하와이안 피자는 캐나다에서 만들었죠

제가 또 계란을 기가 맥히게 삶습니다

우리 아빠 안경 썼어요

오늘 아침 쑥 캐고 옴



https://youtube.com/shorts/cFyM0W0fl24?si=chP8lx5l0M5_veoB



그런데 이 노래가 그냥 단순히 웃긴 것만은 아니다. 유튜브 youtube 댓글에도 많은 사람들이 언급했듯, 사람들의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소한' 이야기들로 구성한 노래가, 왠지 모르게 따뜻하고 때론 짠하고 때때로 포근하다. 다들 이렇게 저렇게 일상을 꾸려 나가는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

나의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하루에도 무언가는 있었을 것이다 아니, 아무것도 없었다고 해도 '나 하나쯤'은 있었을 것이다. 소소하게 나를 응원해 마지않는 내가 있었을 것이다. 나 자신도 이 사실을 몰랐겠지만.



이렇게 오늘도 나에게 억지로 '기쁨'을 주입했다. 주입식 교육이었지만 꽤 기뻤다. 내가 웃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잠시지만 불안이 말랑말랑해졌다. 유연해진 불안이 다시 빳빳해지기 전에 얼른 내 마음 깊은 곳에 쑤셔 넣어 버릴 예정. 다시 나타나더라도 웃음 공격으로 고놈의 불안을 유들유들하게 만들어 버려야지!


이건 너무 정신승리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그렇게까지 억지로 기쁨을 주입해야 하냐고.


그거 아세요? 정신이라도 승리해야지 살겠더라고요. (워낙 삶에서 패배를 많이 하다 보니...)

정신이라도 승리하지 않으면 마음이 빳빳해지고 마음이 빠듯해지더라고요.



정신 하나라도 승리하려고, 그러다 보면 '겨울 불안'이 좀 느슨해지지 않을까, 싶은 마음으로...,,

다음 '웃긴 곡'을 찾아 나섰다. (십몇 년 전 좋아했던 노래가 퍼뜩 생각나 다시 듣기 시작하였다.)


다들, 이 노래 들으면서, 빳빳한 겨울 불안과 잠시 이별하세요!

(즐감요!)



https://youtu.be/uHj51x8ksjo?si=HkFwJqLdHEQy9Sq0

(이 노래를 성당 신부님께 살뜰히 들려 드린 적이 있는데 아주 흡족해하셨다는 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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