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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Nov 04. 2024

불안과 거리 두기

책으로 확인해 본 불안


현재의 순간에 언제나 '네'라고 대답하세요.


여전히 내면에 살아 있는 과거의 고통의 찌꺼기를 추가하고 싶지 않다면, 더 이상 시간을 만들어 내지 마세요. (...) 지난날에는 시간에 맞추어 살면서 지금 이 순간에 잠깐 동안 머물렀다면,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머물면서 현실적인 삶에 필요한 일들을 처리해야 하는 경우에만 과거와 미래로 잠깐 다녀오면 됩니다. 현재의 순간에 언제나 '네'라고 대답하세요.(39)


지겹도록 '지금, 여기'라는 말을 많이 들어봤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그 지겹고도 지겨운 말을 이따금 반신반의하며 꺼냈다 버렸다 주웠다를 반복한다. 그때 들리는 '에크하르트 톨레'의 말.



당신을 마음과 동일시하는 건
시간 속에 갇히는 것입니다.
그럴 경우 오직 과거의 기억과 미래에 대한 기대에만 의지한 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가 당신에게 정체성을 부여하고, 미래가 어떤 형태로는 구원과 성공을 약속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환상일 뿐입니다. (39)


그렇다면 나는 지금까지 과거와 마래라는 시간에 갇혀 있었던 것일까? 그래서 불안했던 것일까? 불안과 거리 두기를 못 하는 이유가 혹 여기 있었던 걸까?



시간이 흐른다고 저절로 구원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사실 문제는 단 하나, 당신의 마음이 시간에 묶여 있다는 것입니다. 시간이 흐른다고 저절로 구원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당신은 미래에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51)


아니, 현재에 집중하는 이유가 미래에서 자유롭고 싶어서인데 시간에 맞춰 살아도 미래의 구원은 요원한 일이라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고통이 생겨나는 이유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않거나
그것에 무의식적으로 저항하기 때문입니다.
인간 고통의 대부분은 불필요한 것들입니다. 당신이 마음의 관찰자가 되지 못하고 마음의 지배를 받는 한 고통은 계속 생겨납니다. (100)


사람들 앞에 서서 원맨쇼를 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손끝과 발끝이 차게 저렸다. 그리고 그것이 이내 나의 등뼈를 타고 올라와 급기야 나의 목구멍을 누르고 내 표정을 사색(死色)으로 만들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는 없었고 '과거'에 고통스럽게 발표를 망쳤던 나, 혹은 다가올 '미래'에 불안해하며 일을 '곧 망칠' 나만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나를 믿지 않았다. 이건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니고 나는 억지로 이 시간을 버티는 것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저항했다. 내 불안의 문제는 다름 아닌 '저항'인지도 몰랐다.



당신 인생의 긍정적인 면을 무시하거나 부정하고 거부하려고 합니다.
이건 미친 짓이지만,
일반적인 현상이기도 합니다.
어떤 부정적인 감정과 자신을 동일시하면, 그것을 떠나보내지 않으려 합니다. 또한 무의식 깊은 곳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원하지 않게 됩니다. 긍정적 감정은 우울, 분노, 홀대받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위협하기 때문입니다. (148)


오, 마이. 그래 맞다. '불안과 열애 중'이므로, 그리고 '불안'을 늘 뒤집어쓰고 사는 ''이므로 불안은 나와 떼려야 뗄 수 없다 믿었다. 그게 진실이라 어설프게 믿었다. 살얼음 걷듯 '불안'이라는 호수 위를 조심조심 걸으려고만 했다. 왜? 나는 '불안'이라는 이곳과 너무 잘 어울리는 사람이니까. 그런데 문득 생각해 본다. 불안이라는 이 호수의 얼음을 과감히 깨 버리고, 차라리 이 불안의 호수를 껴안을 수는 없었을까? 이 '불안'의 호수, 혹은 이 불안의 바다 안에서 마음껏 헤엄칠 수는 없었을까? 꼭 움츠린 어깨와 흔들리는 동공으로 잠자는 사자, 이 '불안'을 무서워하고 두려워해야만 했을까?



식물이나 동물을 관찰해 보세요.
그들의 모습을 보며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지금 이 순간에 자신을 맡기는 법을 배우세요.
그들에게 온전함을 배울 수 있을 겁니다. 그들에게서 하나가 되는 것을, 당신 자신이 되고, 실재하는 것을 배워 보세요. 그들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는지, 삶과 죽음을 어떻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지 가르쳐 줄 겁니다.(149)


식물이나 동물이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본다. 그들의 삶은 치열하다. 바람에 휘둘리는 일에도 열매를 맺는 일에도 낙엽이 되어 낙하하는 일에도 주저함이 없다. 그들의 삶은 '있는 그대로'의 삶이다. 그런데 이건 체념이나 포기가 아니다. 그들은 온전히 '생' 자체에 자신을 내맡긴다. 책에서도 말한다. '있는 그대로'는 '체념'이나 '포기'가 아니라 '내맡김'이라 한다. 그리고 그 내맡김 속에서 최선을 다해 지금 이 순간, '현존'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 진짜 나로 살아가는 법이라 한다.



평범한 쇳덩어리를 황금으로 바꾸는 연금술사처럼,
고통을 의식으로, 재앙을 깨달음으로 바꾸어보세요.
그 모든 상황에는 또 다른 측면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 두세요. (183)


질병으로부터 시간을 떼어놓으세요. 질병에게 과거도 미래도 부여해서는 안 됩니다. (...) 중병을 앓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말을 들으면 화가 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질병이 이미 자의식의 일부가 되어 지금 당신의 정체성을 보호하고 있다는 분명한 증거입니다. 그것은 질병 자체를 보호하는 것과 같습니다. '질병'이라고 분류된 조건은 당신이 진정 누구인가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183)


고통이나 질병에게서 시간을 떼어 놓으라 한다. '고통체'에게 과거도 미래도 부여해서는 안 된다고. 그 고통을 이용해 강렬한 현존의 깨달음 속으로 들어가라고,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바라보라고. 불안과 고통의 순간에게 '한 발자국'만 더 다가서면 연금술처럼 고통과 괴로움이라는 평범한 쇳덩어리를 황금으로 바꾸는 경이로는 어떤 것이 있을 것이라고. 발자국이 바로 '내맡김'이라고.





이 책을 읽은 후 내 마음에서 떠오른 마음은 이것이다.


<여기, 나>


'여기, 나'로 충분하다. 나는 완전하다. 물론 늘 이 마음을 유지하긴 힘들다. 워낙 세상의 소리는 번잡하고 나는 아직 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그렇게 세상일이 바쁠 땐 잠시 치열한 현실에 다녀와도 좋다. 다녀와서 다시 '여기, 나'로 머무르는 것이다. 내 마음의 '입구'와 '출구'가 '지금, 여기, 나'임을 끊임없이 자각하면 '고체화된' 불안이나 고통도 조금은 보들보들 부드러워지지 않을까?


물론 아직은 '이 순간의 나'를 온전히 만나지는 못했다. 종종 '불안'하고 때때로 '더 불안'하며 이따금 '집 나간 불안'을 구태 구석구석 찾으려 애쓰며 살아간다. 그래도 마음과 나 자신을 분리하는 연습을 시작해 보려 한다. 연습은 실패를 낳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그 실패를 주워 담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실패들을 통해 무뎌진 '불안'과 가끔은 손을 잡고 걸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나도 불안의 호수를 조금은 자유로이 누빌 있을지 모른다. 기어이 여기서부터 저기 호수 끝까지 마음껏 역영을 펼친 후 이 호수에서 빠져나와 잠시라도 호수(불안의 호수)를 관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럴 때면 이따금 불안의 호수에 발을 담그는 일을 나 자신에게 '내맡길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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