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_에스테틱과 재귀성
연차를 쓴 한여름의 월요일 아침, 아이스 카페라떼 두 잔을 사서 에스테틱 샵으로 이동했다.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고, 손에서만 도는 아이스의 시원함, 뜨거운 바람 속에 손풍기, 그리고 아침에 산 따끈한 우유식빵의 여운까지. 문득 이런 소소한 순간들이 내 하루를 채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일상적 루틴들이 이제는 하나하나 의미 있게 다가왔다. 예전에는 그저 지나쳐갔다. 아마도 내 관심사가 바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관심 분야를 다시 또 생각 본다. 내가 예술에 관심이 있던가? 아니, 나는 공연예술은 관심이 없다. 미술에 관심이 있었는데, 비즈니스로 연결되면 좋지 않을까? 아니, 나는 비평을 하고 싶었다. 순수한 관심, 외적 목적이 아닌 내적 동기뿐이었다.
내가 여태껏 선택한 분야는 생계를 위해 선택했던 학문일 뿐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나는 더 이상 과학기술이나 경영전략을 손에 쥘 수 없다는 것을. '쥘 수 없다'는 것은 단순히 관심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그 분야의 지식들이 내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처럼 빠져나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아무리 붙잡으려 해도 실체가 없어지는, 허무함을 느꼈다. 헛똘똘이다.
그렇게 찾은 것은 현대미술사학회였다. 마치 오랫동안 찾던 조각을 발견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미학 논문에서 해체미학이라는 단어를 보게 되었다. 해체미학이 뭔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이런 우아한 단어를 접하게 되니, 해당 뜻이 궁금했었다. 그런데, 얼마 전 클로드와 ChatGPT에게 물었던 ‘나는 어떤 사람인지 지금껏 대화 내용으로 분석’을 요청한 결과에서, 해체학이 나왔었는데, 다시 이 단어를 보게 되니 놀라울 따름이다. 미학 논문과 심리에서 동의어로 쓰이는지 동음이의어로 쓰이는지 모르겠지만, ‘해체’라는 단어를 기억하고 있었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AI들이 내 심리 상태를 분석하면서 도출한 개념 ‘해체’라는 단어가 관심을 갖게 된 분야에서 쓰임을 하는 단어로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는 평소에 습관적으로 내 감정을 해체'만' 할 뿐이었다. 모든 감정과 상황을 분석하고, 해체하고, 의문시하는 것이 내 습관이 되어 있었다. 해체주의를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나는 이미 일상에서 해체적 사고를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해체하지 않고 받아들임에도 감정을 지킬 수 있는 면에 더 도움이 된다고 했다. 기억까지 다시 쓰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였을 때, 스트레스받지 않고 지나갈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는 내게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해체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 때로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건강할 수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그런데도 다시 돌아간다. 돌아가서 내가 선택한 것들에 대해 후회하고 실망한다.
다시 돌아간다. 재귀성은 어떤 대상이나 개념이 자기 자신을 다시 참조하거나 포함하는 특성을 말한다. 즉, "자기 자신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뜻이다. 재귀성의 의미로 쓰이는 학문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찾아보았다. 수학에서 시작된 재귀성 개념이 컴퓨터 과학, 언어학, 철학, 심리학, 사회학, 경제학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확산되고 변주되었는지를 추적하는 과정은 흥미진진했다. 각 학문에서 재귀성이 다르게 정의되지만, 공통점도 있었다. 자기 참조성, 순환성, 창발성, 복잡성.
나는 그렇게 내가 선택한 것들에 대해 다시 돌아보고, 후회하며 다시 본질로 돌아간다. 내가 선택한 것들은 회귀이고, 본질로 돌아가는 것은 재귀인 건가.
다시 글을 쓰기 위해서는 글공부를 다시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직 박사 수료라서 다행인 점은 논문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정말 다행이다. 복잡한 주제, 전문 용어의 학문적 정의, 저자의 주장의 비판적 논거력을 확인할 수 있다.
매체, 해체, 재귀, 회귀, 예술, 비평, 담론 등 다가가기 힘들지만, 전문 분야도 아니면서 떠드는 AI 융합, 빅데이터보다는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유행하는 기술 용어들을 남발하는 것보다, 진정으로 깊이 있는 개념들과 씨름하는 것이 더 의미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마치 대학원에 다시 입학할 사람처럼 논문을 보았다. 조만간 은퇴를 염두에 두고 있어 대학원에 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논문을 읽는 것만은 확실한 즐거움을 준다. (은퇴를 할지 말지, 책임 있는 말인지는 아직 모르는 애매한 상태다.)
쉬는 날, 에스테틱을 받고, 넷플릭스 감옥에 갇혀 지내면서, 내가 원하는 것들을 다시 살펴보았다. 나의 기호는 논문인 건가 싶기도 했다. 논문을 어렵고 지루한 것으로 여겨왔는데, 이제는 하나의 취향이 되어버린 것이다.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 독자, 당신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지 않는가?
어떤 분야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거나, 새로운 관심사를 찾고 있거나, 혹은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찾아 헤매고 있을지도.
아침에 다녀온 에스테틱에서 오늘 받은 건 페이스이긴 했으나, SNPE라는 자세를 잡는 스트레칭을 받고 페이스를 받았다. 에스테틱 침대에 누워있는 동안 선생님은 내 림프선을 따라 부드럽게 압을 가했다. "여기 부종이 많이 있네요." 목, 어깨, 팔 안쪽을 따라 흐르는 림프의 흐름을 손끝으로 안내해 주는 느낌이었다.
골반이 틀어져 있는 건 이미 알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고개도 틀어져 있었다. "목이 한쪽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어요." 선생님의 지적에 문득 모니터가 너무 위에 있다고 말씀드리니, 그게 아니라, 평소 자세의 문제라고 말씀하셨다. 무의식 중에 반복한 작은 습관들이 몸 전체의 수평과 균형을 틀고 있었던 것이다.
"자주 쉬세요." 선생님이 자꾸만 쉬라고 말씀해 주셨다. 처음에는 사교적인 말로 들렸는데, 시술을 받으면서 점점 그 말이 진심이라는 걸 느꼈다.
그게 쉽지 않아요.
자세를 받으며, 아침마다 스트레칭을 하게 되면 좀 더 정신이 맑아질 것 같았다. 몸의 변화가 정신의 변화를 이끌고, 정신의 변화가 다시 몸의 변화를 촉진하는 관계. 림프의 순환이 막혀 있으면 노폐물이 쌓이듯, 생각의 순환이 막혀 있으면 정신적 찌꺼기들이 쌓이는 것 같았다. 아침 스트레칭이라는 작은 루틴이 하루 전체의 리듬을 바꾸고, 그것이 누적되어 삶의 패턴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사회학에서의 재귀성 개념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기든스의 구조화 이론에서 말하는 구조와 행위주체의 이중성. 사회 구조가 개인의 행위를 규정하지만, 동시에 개인의 행위가 사회 구조를 재생산하거나 변화시킨다는 관점. 이는 내가 학문 분야를 바꾸는 과정과도 닮아있었다.
비평이라는 행위 자체가 재귀적이다. 작품을 보고 비평하지만, 그 글쓰기 과정에서 나 자신도 변화한다. 비평의 대상과 평론하는 주체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 이는 소로스가 말한 경제학의 재귀성과도 유사한 것이 아닐까. 관찰자가 관찰 대상에 영향을 미치고, 그 영향이 다시 관찰자에게 되돌아오는 구조.
해체에서 시작된 나의 여정이 이제 재구성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과학기술과 경영전략이라는 기존의 정체성을 해체한 후, 새로운 관심 분야들을 탐색해 왔다. 현대미술, 해체미학, 비평 이론, 그리고 재귀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새로운 지적 정체성을 구성해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해체가 재구성을 위한 필요조건일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 재구성하지 않고 삭제하기만 바빴다. 감정을 해체하고 나면 그걸 다시 조합해서 새로운 이해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지워버리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이것이 내가 반성해야 할 지점이었다. 해체된 요소들을 다시 조합하여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창조적 행위라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사실 같은 생각을 반복적으로 해서 같은 지점으로 돌아오는 것, 같은 자리를 나선형으로 돌든 제자리에서 돌든, 팽이와 같은 나의 사고, 그것이 나의 재귀성이 아닐까 싶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나는 늘 비슷한 고민들을 순환하며 사고한다. 이것을 단순한 반복이나 강박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매번 조금씩 다른 각도에서 접근하고 있었던 것 같다.
재귀성이라는 개념은 새로운 사고를 위한 전제의 단계일지도. 같은 지점으로 돌아오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더 높은 차원을 향해갔으면 좋겠다. 내가 글쓰기로 돌아가는 것도, 학술적 관심으로 회귀하는 것도 단순한 복귀가 아니라 재귀적 발전일 것이다.
앞으로 내가 써 내려갈 글들, 내가 탐구할 이론들, 내가 개발할 비평적 시각들은 모두 이런 재귀적 과정의 산물이 될 것이다.
그리고 아직 모든 것이 불확실하지만, 그 불확실함마저도 여정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다. 오늘 저녁은 우렁된장을 비벼 먹으려고 한다. 그런 소소한 일상들과 함께, 가볍게 셀프 퇴근한다.
2025.07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