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지하철에서 나는 오늘도 생각한다.
집에 돌아가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할까.
집에 가면 바로 누워야지, 유튜브 봐야지
늦저녁이 되면 나는 첼로를 듣는다. 낮게 울리는 그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울 때, 하루 종일 굳어있던 어깨 근육이 서서히 풀린다. 첼로는 나를 낮게 하고 붙잡기도 하고 풀어주기도 하였다. 해석 없는 위로였다. 설명하려 들지 않고, 위로하려 애쓰지도 않았다. 첼로 솔로곡이 천장을 울릴 때, 감정도 함께 높아진다.
저녁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하루 중 유일하게 온전히 내 것이 될 수 있는 시간인데, 그냥 흘려보내는 것이 아까웠다.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나를 사로잡았다.
하지만 이렇게 흘려보내는 시간이 더욱 초라하게 만드는 것만 같았다는 생각이 들 때, 나는 다른 함정에 빠져 있음을 깨달았다. 한발 떨어져서 지켜보는 것 또한, 아등바등했던 그 시간이 더욱 초라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싶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허둥지둥 살아온 시간들과, 그런 자신을 바라보며 자책하는 시간들. 둘 다 나를 지치게 만들고 있었다. 정작 중요한 것은 그 어떤 것도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퇴근해서 집에 들어가는 시간에 나는 나를 향해 걸어갔다. 집이라는 공간은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라, 나라는 존재가 온전히 머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나는 바깥세상에서 쓰고 있던 가면을 벗어던졌다.
나를 내려놓고 보니 내가 보이기 시작한다. 하루 종일 나라는 존재를 부여잡고 살아가느라 지친 마음이, 비로소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나라는 정체성, 나라는 역할, 나라는 기대와 책임감들을 모두 벗어던지고 나면, 남는 것은 그저 피곤한 몸과 평온을 갈망하는 마음뿐이었다.
잠들기 위해 많은 것을 하는 것도 하나의 치유 과정처럼 느껴졌다. 차를 우리고, 향을 바르고, 음악을 듣는 것들. 이 모든 것들이 하루라는 무대에서 연기를 마친 배우가 분장을 지우는 과정과 같았다.
그리고 천장을 울리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나 대신하여 울어주는 것 같았다. 하루 종일 참아왔던 감정들, 표현하지 못했던 답답함들이 첼로의 선율을 타고 흘러나왔다. 음악이 천장을 울릴 때, 감정도 함께 높아진다. 천장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소리는 내 마음속 울림과 겹쳐져 더욱 깊은 공명을 만들어낸다.
회사에서 앙다문 입안에는 백선이 잡혔다가, 아침이면 사라진다. 하지 못한 말을 잘 참은 덕분이라 생각한다.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는 상황들이 누적되어 나타나는 몸의 신호였다. 하지만 그것이 아침이면 사라진다는 것은, 잠이라는 치유의 시간을 통해 몸과 마음이 스스로를 회복시킨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첼로의 깊고 진동하는 소리는 내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둔 감정들과 마주했다. 나는 울지 않았지만, 음악이 대신 울어주었다. 나는 소리치지 않았지만, 첼로가 대신 살아주었다.
음악과 함께 머스크향을 손으로 비볐다.
손에서 다시금 품었다가 첼로에 의해 퍼지는 듯하다. 손목과 목 뒤에 향을 발라두면, 음악과 함께 그 향이 방 안에 천천히 번져간다. 이렇게 잠자리를 준비하면, 차분하고 조용해진다.
나는 문득 허무해진다. 하루 종일 중요하다고 여겼던 일들이 갑자기 보잘것없어 보인다. 음악이 천장을 울릴 때, 감정도 함께 높아진다. 빠르게 연주되는 소리가 그 순간 나는 오늘 하루를 버텨낸 나 자신이 대견하면서도, 갑자기 첼로가 저음으로 천천히 연주되면, 내가 왜 그렇게 버텨야 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바뀐다. 그렇게 나를 붙잡았다가 놓아준다.
머스크의 진한 향이 첼로 선율과 어우러져 방 안을 채운다.
손으로 비빈 향이 체온과 만나 더욱 깊어질 때, 그 향은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나에 대한 예우가 된다.
그리고 그 예의가 첼로 소리에 실려 방 전체로 퍼져나갈 때, 나는 비로소 이완된다.
향기는 후각을, 음악은 청각을 자극하지만, 두 감각의 접점에서는 형용할 수 없는 새롭다. 이것이 바로 저녁이 주는 안정이었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가장 소중한 시간일 수 있다. 그저 음악을 듣고, 향기를 맡고,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들. 이런 시간들이야말로 진정으로 나를 회복시키고 재충전시키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깊이 진정된 끝도 보이지 않는 저녁이면, 나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알고 싶지도 않은 채 잠들 수 있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존재의 무게에서 해방된다는 의미였다. 나라는 존재가 주변에 미치는 영향력, 나라는 존재가 져야 할 책임감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다는 것은 일시적으로 앎의 욕구에서 해방된다는 의미였다. 끊임없이 정보를 습득하고, 분석하고, 판단해야 하는 숙명에서 잠시나마 벗어나는 것이었다.
그런 저녁이면 잠은 자연스럽게 찾아왔다. 마치 강물이 바다로 흘러들어 가듯, 의식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나는 이불에 스며들었다.
향기가 서서히 옅어지고, 첼로 소리도 점점 작아진다.
하루의 마지막 순간들이 고요히 흘러간다.
나는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을 준비가 되었다.
오늘의 성취도, 오늘의 실패도, 내일의 계획도 모두 잠시 접어둔다.
첼로의 마지막 여운이 사라지면, 남는 것은 깊은 정적뿐이다.
그 정적 속에서 나는 진정한 평화를 찾는다.
이것이 바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가장 완벽한 방법이었다.
손목의 향기를 한 번 더 맡으며, 나는 눈을 감는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고요히 흘러간다.
그리고 내일 또 다른 저녁이 나를 기대한다.
첼로가 울리고, 향기가 퍼지고, 마음이 평온해지는 그런 저녁이.
2025.08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