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늦게 퇴근해서 온 남편은 허겁지겁 냉장고를 뒤지며 과일을 찾았다. 고기보다 과일이 좋다는 그는 특별히 저녁에 과일을 먹는 습관이 있다. 배가 너무 고플 때 생각 나는 음식이 있다면 과일이라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늦은 저녁이라 살찌는 게 걱정이 되는데 그게 또 과일 이라니. 나는 여지없이 핀잔을 늘어놓는다.
“저녁에 과일 먹는 거 안 좋데”
“하나만 먹을 거야.”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사과를 베어 먹는다.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식탁에 앉지도 않고 냉장고 옆에 서서 사과를 먹고 있는 남편을 보니 왠지 눈물이 날 뻔했다. 사과 한 입에 세상을 다 얻은 듯한 표정으로 사과 맛을 음미하고 있었지만 나의 마음은 온통 심란했다. 왠지 모를 절망감이 들었다.
임신 8개월 차만큼 나와 있는 그의 배를 보았기 때문이다.
“자기야 우리 운동하자.” 내가 사기를 돋우며 말했다.
“그래”
“지금 말이야.”
“음… 나 일 처리 하나만 하고”
최대한 미뤄 보겠다는 수작을 읽었지만 너무 밀어붙이면 안 될 것 같아 한 발 물러 섰다. 무언가를 이끌어 낼 때에는 밀당이 필요했다.
“그럼 9시 30분에 애들 재우고 한다!”
나는 선포했다.
최대한 운동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주위를 정돈하고 요가 매트를 깔았다. 그리고 유튜브를 틀었다. 더 이상 곰돌이 푸의 배처럼 티셔츠 밑으로 삐죽 나온 저 배를 용납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주 기초적인 필라테스 동작을 따라 해 보기로 했다. 한 동작 한 동작 이어 나갈 때마다 남편은 곡 소리를 냈다. 그가 한 때 가라데와 태권도에 능했으며 화려한 발차기를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사실 내 눈으로 그러한 발차기를 직접 목격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젊었을 때 발차기했던 사진 한 장 없었더라면 정말 영원히 믿지 못할 뻔했다.
유튜브 속 운동하는 언니는 하늘을 보고 누워서 다리를 들었다 내려놓기를 반복하라고 말했다. 동작을 반복할수록 지구의 중력을 이렇게 체감하는구나 싶었다. 다리를 내릴 때 허리와 배 하물며 목까지 힘을 주어지는 느낌이었다. 남편은
“읏차.. 읏차.. 읏차..” 노를 젓는 사람처럼 리듬을 맞췄다. 그 정도로 힘든 건 아닌 것 같은데 참 유난 떤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지막을 향해 박차를 가했다.
“한 세트 더 하세요”라고 말하는 운동 언니의 목소리가 어느 때 보다 잔인하게 들렸다.
“싫어!” 남편은 있는 힘껏 외쳤다.
“조용히 하라고, 애들 깬다고!”
나는 황급히 다그쳤다. 입단속시키는 일과 운동을 같이 하려니 죽을 지경이었다.
드디어 정말 마지막 단계에 왔다. 플랭크를 노래가 끝날 때까지 해야 했다. 남편의 팔은 사시나무 떨듯이 떨렸다. 아니 그의 온몸이 사시나무 떨 듯이 떨렸다. 노래가 끝나기 한참 전에 그는 포기하고 누워버렸다. 그의 체력은 땅 밑까지 추락한 상태였다. 매일 이렇게 같이 운동하면 되겠다고 다짐했다. 운동을 마치자 그는 그냥 살과의 전쟁 말고 협정하면 안 되겠냐고 숨을 몰아 쉬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