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인을?

by 봄남

타임루프가 사라지기 30분 전 팔등엔 푸른빛 타투로 숫자가 새겨진다. 숫자의 의미는 ‘분’을 의미했고 다연이는 5분 나는 25분이 남았다. 이렇게 좋은 능력이 영원히 지속되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막상 25분을 남겨두고 내 인생에 절벽으로 내몰리니 기분이 엿 같다. 고작 25분.


내 인생에 타임루프는 복이었을까 저주였을까.


온 국민이 관심 가질만한 이슈로 주인공이 되어 얼굴이 팔린 이상 무슨 수라도 써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 살아야 한다.


갑자기 모르는 전화로 연락이 왔다. 박실장이었다. 박실장이 다짜고짜 집으로 찾아오겠다고 한다. 그를 만나고 싶진 않았지만 그가 무슨 말을 할까 궁금하기도 했다. 집 밖으로 나가자 검은 양복을 입은 가무잡잡한 피부의 사내가 나무에 기대어 삐딱하게 서 있다. 가까이 가보니 박실장이다. 승학이와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다. 잘생긴 편이지만 표정은 사악하다.


“송재윤이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까불지 말아라. 쪼꼬만 게 어디서 나대.”


그의 목소리는 작지만 선명했고 조금 무서웠다. 나는 굴하지 않으려고 노려 보았으나 두려운 속 마음은 잘 숨길 수 없었다. 그는 나의 어리숙한 표정에 한껏 비웃었다. 그리고 VIP 명단이라도 밝혀지게 되면 나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도 가만 두지 않을 거라는,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협박을 했다. 그런 유치한 협박을 듣고나니 나야말로 돌연 웃음이 났다.

“하!”

“웃어?”

“아저씨, 그동안 이렇게 사시느라 피곤하셨겠네요. 아저씨도 윗선에서 보낸 꼭두각시잖아요.”

“아가리 닥쳐라.”

“네, 닥칠게요. 그런데 내가 돌아가기 전에 졸라 짜증 나서 그러는데 씨발 네가 한 짓이 똥꾸러미 같아서 말이에요. 병신….”


퍽!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그가 주먹으로 내 얼굴을 날렸다. 성질 건드리는 것엔 성공. 게다가 별로 안 아픈데? 그럼 나도.


퍽!


그가 쓰러지자 갑자기 그의 뒤에서 건장한 체격의 남자 두 명이 더 나타났다. 치사한 새끼. 고작 10살이나 어린 나를 상대로 3:1은 너무 하지 않나? 차라리 이참에 다 밝히러 과거로 가자. 욕이 솟구쳐 오르는 감정으로 나는 외쳤다.


“조심해!”


김예지의 쇼케이스 데뷔날로 돌아왔다. 동영상 한 개만 공개하는 것이 아니라 VIP 명단과 파티 영상, 접대 장소, 부조리한 계약서를 모두 공개할 것이다. 그리고 김예지가 매니저에게 당한 언어폭력 영상을 SNS에 라이브로 올리는 것. 공개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공개해 버려야겠다.

이번엔 다연이와 도진이 없이 혼자 왔다. 모든 일을 빠른 시간 안에 일사천리로 끝내야 하기 때문이었다. 방송국에 도착하자마자 인상착의가 똑같은 음향 엔지니어를 찾았다 그리고 그에게 ‘예지로부터’라고 말하며 나의 USB를 건네어주었다. 음향 엔지니어는 알았다는 표시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라졌다.

나는 김예지와 매니저가 오기를 숨어서 기다린 다음 몰래카메라 라이브 영상을 SNS에 올렸다. 김예지, 쇼케이스 직전이라는 키워드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 영상은 앞으로도 회자가 많이 될 것 같았다. 김예지가 끌려가자 라이브 방송을 껐다. 그리고 그녀에게 모든 영상이 준비가 됐다는 문자를 보내고 기자 회견까지 여유 있게 기다렸다. 이 모든 일을 세팅하기까지 소요된 시간은 15분. 팔뚝에 남겨진 시간은 10분이었다. 이후의 사건은 건드리지 않았다. 드디어 기자 회견이 시작되고 김예지는 자기소개에 뒤이어 자신의 뮤직비디오를 틀었다. 무대 밑 한편에 자리 잡은 매니저의 모습도 보였다. 뮤직 비디오 거의 마지막에 와서야 화면이 전환되었다. 그리고 시작된 폭로.


기자들은 흥분하며 키보드를 뚜드렸고 갑자기 노출된 VIP 명단 때문에 인터넷은 폭주했다. 이것을 안 여론의 마음을 돌이키기는 어렵다. 처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분노했다. 다연이는 나의 이런 주도면밀하고 완벽한 행동에 박수를 보내다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역시 저번 사건에서 우리의 얼굴이 팔리고 기자들에게 휘말린 것에 대한 기억이 없다. 그녀는 갑자기 내 오른손을 잡아 채 올리더니 걷어붇힌 소매 밑으로 푸른빛이 나는 문신을 확인했다. 10으로 변한 숫자를 보고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내가 타임루프를 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녀는 서서히 내 팔을 내려놓았다. 나는 무슨 말이든 하고 싶었으나 그녀의 근심스러운 표정을 보고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잘 몰랐다.

“더 이상. 쓰지 마. 부탁이야.”그녀가 부탁했다.

“응.”



인터넷과 매체에서는 대중들의 강도 높은 비판이 이어졌다. 그것에 부흥하듯 ‘그것이 알고 싶다’와 각종 뉴스채널에서 대대적으로 이 사건을 다루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사람들은 정의를 외쳤고 억울하게 죽은 이소연을 이곳저곳에서 추모했다. 호미 기획사는 다른 기회사와 비교되면서 이미지가 추락하기 시작했고 호미 기획사 주식은 이틀 만에 반토막이 나도록 폭락했다. 호미 기획사 대표도 결국 사직서를 내놓았다.

VIP 명단이 나온 지 오래됐지만 나오자마자 그 기사는 빛의 속도로 삭제되었다. 그들의 움직임은 딱히 없었다. 명단 속에 있는 연예인들과 정치계 인사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똑같이 활동하고 있었다. 사과도 변명도 없었다. 조용했다. 나는 그즈음에서 의아했다.


박실장이 또 집에 찾아왔다. 호미 기획사도 다 망한 마당에 무슨 일이지 싶었다.


“너 까불지 마.”

저번과 똑같은 말을 한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것일까.

“이소연에 대한 너의 죄는 아직 밝혀지지도 않았어. 너나 까불지 마.”

“어디서 고등학생이 반말을 찍찍하고 앉았어. 참나.”

“나 앉아 있지 않은데? 네 놈껀 시작도 안 했어. 네 이름이 밝혀지기 전에 사과부터 해.”


그는 담배에 불을 붙이더니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그리고 기분 나쁘게 나를 노려 본 다음,

“순진하기는. 네가 폭로한 VIP가 어떤 사람들인 줄 알게 해 줄게. 지금 실컷 떠들어라.”

라고 말한 후 그냥 떠났다.

“사과하라고 이 씹새끼야!”


뒤통수에 대고 소리쳐대는대도 그는 그냥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겁쟁이. 그거 한 마디 하려고 여기까지 찾아왔냐! 나는 이기고 있었다!


띠링!


아니었다! 내가 이기고 있다고 생각한 건 나의 어리석은 판단이었다. 이걸 두고 가만히 있을 VIP들이 아니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다연이에게 문자가 왔다. 내가 위험하다고? 무슨 소리지? 마약 혐의로 구속당할지도 모른다는 짧은 문자. 내가 마약을?

다연이는 나에 대한 또 다른 기사를 보내주었다. 기사 속 사진에는 내가 있었고 내가 L양과 사귀던 사람이었으며 내가 이소연 사망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 됐다는 것이다. 이게 어떻게 된 것이지? 살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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