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취 (10)

by 봄남




띠링띠링


“여보세요. 어, 도영아.”


최태수는 모든 전화벨에 답하지 않았지만 이도영의 전화만큼은 받았어야 했다. 그는 그의 대학동기이자 가장 큰 투자자였다.


“어, 태수야 무슨 일이야? 갑자기 투자자들이 난리 난 것 같은데?”

“응 도영야. 아무래도 미안하다. 너한테는 말해야 될 것 같은데.”

“응 말해봐 무슨 일이야?”

“내가…”

“응.”

“너 등 좀 처먹으려고. 하하하하하하하하”


뚝!


한참 웃던 태수의 목소리가 통화 단절음과 함께 사라졌다. 도영은 들고 있던 휴대폰을 태수의 얼굴인 양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이 녀석…. 단단히 착각하고 있네.”


태수의 경박한 웃음소리에는 조롱과 동시에 승리의 자신감이 곁들여 있었다. 자기 생각이 전부인 줄 아는 어리석은 사람. 도영은 태수를 생각하며 오른쪽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리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멍청하면서도 저돌적인 그의 행동에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태수는 가장 가까운 김비서라는 사람에게 저격을 당했다. 단 한 명의 사람에게도 신뢰를 얻지 못한 꼴이었다.


같은 시각 김비서는 태수의 광기가 서린 눈을 피해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로비에 다다르자 형사로 보이는 두 명의 남자들이 서둘러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문 밖으로는 경찰차가 보였고 안을 주시하고 서 있는 남자들이 삼삼오오 있었다. 무언가 긴박하게 돌아가는 느낌에 저절로 긴장이 되었다. 도영이 이미 손을 쓰고 있었다. 그걸 알리 없는 태수가 구속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김비서 손에 땀이 났다.


‘목을 꼿꼿이 들고 표정관리를 해야 한다.’ 적어도 김비서 스스로는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라고 생각했다. 잠깐이라도 두리번거렸다간 의심인물이 될 가능성이 컸다. 태연한 척 주차장으로 가 차의 문을 여는 순간 누군가가 거의 동시에 뒷자리 문을 열고 급하게 차 안으로 들어왔다.


“빨리빨리 가요!”


최태수였다.


“사.. 사장님.”

“이럴 때가 아니에요. 빨리 어디로든.”


최태수는 어떻게 알고 도망쳤을까. 계단을 뛰어내려왔는지 그의 이마에 땀이 맺혀있었다. 김비서는 눈치 빠른 최태수가 자신의 차를 타지 않고 이곳으로 피해 온 것에 아연실색했다. 숨을 몰아 쉬며 어디로든 가라고 하는 그의 다급한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액셀을 밟았다.


타이어 마찰음을 내며 출발하는 소리가 나자 형사들은 본능적으로 그의 차량에 최태수가 타고 있는 것을 눈치챘다. 얼마 달리지도 않았는데 경찰차를 포함한 몇 대의 차가 그들을 추격하고 있었다.


운전에 서툰 김비서는 차량 세 대에 포위되어 작은 길가에 멈춰 서게 됐다. 태수는 곧바로 문을 열고 골목길 안으로 뛰어들었다. 형사들도 바로 추격했다. 다세대 주택들이 미로 같은 골목길을 형성하고 있는 동네였다. 노란빛을 비추는 가로등 사이사이로 어둠이 드리웠기 때문에 그에게 눈을 떼지 않고 달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


분명 모든 것이 잘 돼 가고 있었는데 뭐가 잘 못된 것일까. 태수는 솟구치는 분노와 몰려오는 위협에 죽기 살기로 뛰었다. 그를 뒤 따른 형사 셋은 그가 돈 코너를 따라 돌자 양갈래 길에 다다랐다. 그들은 잠시 당황한 발걸음을 보이다 둘 과 하나로 나뉘어 다시 뛰기 시작했다. 하나를 따돌리고 남은 상황, 이리저리 굽이 치는 뜀박질에 다리가 삐끗했다. 그래도 뛰어야 했다. 추격하고 있는 발소리에 절로 육두문자가 내뱉어졌다.


“거기서 최태수!”


결국 막다른 길이다. 태수와 두 형사는 2미터의 간격을 두고 대치 상황에 들어갔다. 태수가 빠르게 주변을 스캔해 보았지만 담을 넘고 올라갈 적당한 디딤돌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이런 일은 백 번도 넘게 해 봤다는 듯이 형사는 태수를 가볍게 제압했다.



재판에 초라하게 서게 된 최태수는 빚쟁이 아줌마, 도영 그리고 김비서가 민지의 증인으로 나타나자 그제야 그가 덫에 걸린 것을 깨달았다. 그는 유사수신, 금융 사기, 많은 피해자 수와 막대한 피해 규모에 대한 죄목으로 바로 감옥행이 결정 됐다.


최태수의 양팔이 묶어 잡혔다. 최태수는 이도영 얼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재판장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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