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7시가 조금 넘은 시각, 사거리 한쪽 코너에 자리한 커피숍에 김비서가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좋은 자리에 위치했음에도 커피와 디저트의 차별성이 있지 않았고 무엇보다 인테리어가 올드해서인지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았다. 그래서 최태수는 이 커피숍을 혐오했다. 김비서가 이 장소를 선택한 이유다.
김비서가 기다린 지 얼마 되지 않아 민지가 이도영과 함께 커피숍에 들어왔다. 그는 민지가 도영과 같이 오는 것을 보고 올타구나 여겼다. 이도영이면 모든 계획에 날개를 달아 줄 수 있었다. 최태수를 옭아맬 수 있도록 말이다.
그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서로 목례를 하며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았다. 주문한 아메리카노 세 잔이 나오기도 전에 김비서는 준비해 두었던 립스틱 도청장치, 몇 가지 자료가 더 있는 유에스비와 서류 뭉치가 들어 있는 누런색 봉투를 꺼내 그들 앞에 놓았다.
“이거면 되실 거예요. 최태수가 아이디어를 뺏었다는 증거와 금융 사기를 쳤다는 증거.”
이도영은 그간에 최태수가 한 사기와 험악한 짓들을 전달했다. 이도영은 공감의 표정도 의심의 표정도 짓지 않고 신중히 듣고만 있었다. 냉철하고 차가운 이도영의 면모를 익히 잘 아는 김비서는 뉴스를 전달하는 아나운서처럼 사실만을 말했다. 김비서의 말에선 어떤 분노나 조롱도 느껴지지 않았다.
한참을 듣고 있던 이도영이 김비서를 지그시 바라보더니 두 손을 모으고 턱을 괴었다.
“그런데… 김비서는 왜 저희를 도와요?”
김비서는 그의 의외의 질문에 잠시 의자에 등을 기댔다. 역시 이도영, 최태수가 질투할만한 사람이다. 속을 알 수 없고 주도 면밀하며 날카롭다. 이도영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아니 묵직하고 다정해서 더 살벌했다.
“최태수는… 벌을 받아야 해요.”
간단하고 명료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어떤 원한이 있는 것인지 그저 정의를 위한 일인지 알 수 없었다. 김비서는 이 일에 이도영이 큰 힘이 되어 줄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큰 투자자이며 영향력을 행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민지는 자신의 텀블러 사업을 되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투지가 불타올랐다. 그동안 훔친 아이템으로 많은 수익을 낸 최태수에게 목줄을 매겠다고 다짐했다. 그녀와 도영은 최태수를 금융사기와 특허권을 훔친 죄목으로 고소하기로 했다.
“그리고 조만간….”
“네.”
김비서가 말을 잠시 멈췄다. 아까 최태수에 대해 험담할 때와 달리 그의 표정이 한 층 더 무거워졌다. 그리고 이내 무언가 중요한 말을 하려는 듯 목소리를 낮췄다.
“먹튀 할 것 같아요.”
민지가 놀란 눈을 하고 손으로 입을 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