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현은 오랜만에 밥이나 먹자며 진성을 불러냈다. 주하의 소식을 진성에게 빨리 알려야겠다고 했다.
“뭐? 미국?!”
진성은 음식점 안에 있는 사람이 모두 들릴 만큼 크게 소리쳤다. 그리고 금방 시무룩해져서는 의자에 푹 눌러앉아 또 멋있게 고개를 젖히고 천장을 응시했다. 재현은 인정하고 싶진 않았지만 그가 하는 모든 미국 형아 허세 제스처는 그에게 나름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우린 왜 이러냐.”
“아니 여기서 ‘우리’가 왜 나와.”
재현의 말에 진성이 고개를 바로 세우며 발끈했다. 그의 머리카락이 이마 앞으로 찰랑 내려앉았다.
“나도 상황 때문에 진전이 안되고, 넌 임이 먼 곳으로 떠난다니까.”
“야 너라도 그냥 좀 사귀어라! 우리 한 묶음으로 찐따 만들지 말고. 나 루저 모임 되는 거 싫다.”
“왜 화를 내냐. 약간 앵거 프라블람?”
“야! 답답해서 그런다. 왜? 뭐가 문제야! 바빠서 연애 못할 거 뭐 있어!”
“어 그래? 그러는 넌 뭐가 문제야. 지금 주하한테 전화해서 고백해.”
“….”
“….”
둘의 대화는 일시 정지 됐다. 진성의 호통과 재현의 깐족거림의 합중주가… 멈췄다. 깨달음이 오고 갔던 것일까. 그게 말처럼 그렇게 쉬운 것이면 골백번도 더 했을 일인데 말이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진성의 저 깊은 뱃속에서 용기가 싹트는 것 같았다. 그는 재빨리 테이블 위에 널브러져 있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두툼한 손가락으로 스크롤을 올리며 연락 목록에 있는 김주하를 찾았다. 통화 연결음이 휴대폰 너머로 들려왔다. 재현도 같이 숨죽이며 지켜보았다. 그는 거북목이 되어 진성의 얼굴을 살폈다.
“여보세요.”
“어… 주하야.”
“진성 선배예요?”
“응. 지금 뭐 해?”
“…네?”
“나랑 잠깐 만나도 돼?”
진성은 휴대폰을 부서뜨릴 것만큼 꽉 쥐고 있었다. 몇 마디가 더 오고 갔는데 진성의 긴장된 표정 때문에 재현이 덩달아 침을 꼴깍 삼켰다. 통화가 끝난 후 진성은 벌떡 일어나 재현을 한 번 바라본 후 결의에 찬 눈빛으로 음식점 밖을 나갔다.
덩그러니 남겨진 재현은 남은 삼겹살을 우걱우걱 씹어 먹었다. 재현은 우연이라도 레아와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러고 보니 진성이에 비해 정말 쫄보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며칠 뒤, 재현이는 아침부터 커피숍 가게 문을 열다가 진성이가 주하와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졌다. 전화를 걸어볼까 휴대폰을 찾고 있는데,
지이이잉.
테이블 위에서 요란하게 진동음이 울렸다.
동아리에서 온 전체 문자다.
‘쥐비에스 여러분 저희 서울 지구 전체 모임이 다음 주 6월 20일 수요일 저녁 7시에 있을 예정입니다. 장소는 강남에 있는 A 빌딩 13층이고 연회장(가)입니다. 비즈니스 분야의 학문적 성취를 존경하고, 격려하며, 구성원들 간의 교류를 통해 경영학에 대한 이해와 연구를 더욱 발전하기 위한 연회 모임으로 저희 학교 학생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다른 대학 학생들도 참여할 것이며 다채로운 행사가 진행될 예정이니 한 분도 빠짐없이 참석하셔서 저희 학교의 위상을 빛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