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다. 우리 아빠.
햇수로 6년, 하늘에서 우리를 지켜주고 있을 아빠.
시간이 약이라는 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그것보다는 살다가 생기는 얼룩들이 시간이라는
빨랫비누를 통해서 지울 수 있다는 말이 더 맞다. 하지만 눈물의 얼룩은 다른 것보다 진해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매일 울었고 매일 슬퍼하는 나에게 “그만 좀 울어.” 말하는 사람들이 야속했다.
‘뭘 안다고. 대체 뭘 알아.’ 잃은 사람 마음은 잃어 본 사람만 안다.
폐부가 찢기는 슬픔에서 초연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참을 수 없는 게 당연하다.
사람들을 피해서 날마다 울었다. 길을 걷다가, 창문을 바라보다가, 지하철에서 아빠 닮은 사람을 본 날은
내려서 꺼이꺼이 울었다. 신기하게도 눈물은 마르지 않았다.
몸의 수분이 전부 눈물로 변한 것처럼.
“아빠 없더라도 너무 울지 마. 바람이 불면 아빠라고 생각해.”
아빠가 했던 말이다. 우리 가족은 특정 바람이 불면 ‘아빠 바람’이라 부른다.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수목장으로 나무가 된 아빠를 만나러 갈 때면 꼭 그 바람이 분다.
여린 바람에 작은 나뭇잎이 파르르 떨리면 세 모녀는 말한다. “안녕 여보.” “안녕 아빠.”
여전히 그때를 생각하면 아려온다. 호스피스 병동에 이틀간 친척들이 오갔고, 우리 셋은 잠을 쫓아가며 먹지도 않고 아빠 곁에만 있었다. 전날까지 “우리 딸, 천사.” 막내딸에게 다정히 말했던 아빠가 급격히 나빠지셨다. “아빠 사랑해. 아빠 사랑해. 아빠 고마워.” 태어나서 이 말을 가장 많이 했던 날이었다.
엄마와 언니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임종은 내가 지키게 되었다. 아빠가 눈을 감으면서 심장박동 기계에 한 줄이 그어졌다. “2017년 6월 12일 오전 7시 58분 ○○○ 씨 사망하셨습니다.”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의사는 말했다. 드라마였으면 했다.
30분은 아빠의 귀가 들린다며 하고 싶은 말들을 모두 하라고 했다. 자리에 없던 언니는 전화기 너머 애타게 “아빠 사랑해. 아빠 사랑해.” 울부짖었고 아빠의 감은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우리의 마지막 인사였다. 훤칠하고 멋있던 아빠를 폐암이라는 괴물한테 빼앗겨버렸다.
“진아야, 엄마 언니랑 재미나게 살아, 재미나게.”
아빠가 남겼던 마지막 말이었다. 이 말을 지키며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때때로 우울하거나 힘든 날이면 애써 마음을 고쳐본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 않으면 행복해질 수 없다. 네가 행복해져야만 이 세상도 행복해진단다.”
드라마 <연애시대> 중 대사를 조용히 품어본다. 최선을 다해 행복해지자.
그런 내 슬픔을 알아봐 주는 사람을 만나고 결혼하게 되었다. 결혼식에서 아빠의 부제가 더 크게 느껴져서 울까 봐 걱정했다. 신부 입장 전 ‘울지 말자, 울면 안 돼.’ 계속 중얼거렸다. 음악이 나오고 한 걸음씩 발을 뗄 때마다 어쩐지 긴장이 사라졌고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되려 “신부가 씩씩하네.” 소리까지 들었다. 엄마와 언니도 울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켜냈다. 그날 엄마의 옆자리, 가족사진에는 아빠가 있었을 거다. 우는 대신 웃는 신부가 될 수 있었던 건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제는 가끔 운다. 그만 울라고 하지 않고 묵묵히 토닥거려 주는 사람도 곁에 있다.
영화 ‘코코’에서는 사람이 진짜 죽는 건 남아 있는 사람들이 기억하지 않을 때라고 한다.
기억해 달라고 아빠가 노래할 일은 없을 거다. 우리가 절대 잊지 않을 테니까.
아직은 아빠 목소리, 마지막 잡은 손의 촉감과 온기까지 고스란히 기억한다.
이마저도 사라지게 된다면 무척 서러운 사람이 될 것이다.
‘부디, 이것만은 빼앗아 가지 말아 주세요.’ 간절한 바람과 함께 미지근한 눈물이 흐른다.
보고 싶다. 우리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