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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볕 Dec 06. 2022

해방 일지의 미정이와 내가 닮은 점이 있다면

추운 계절을 견디는 방법


어릴 때 가장 좋아하던 계절은 겨울이었다. 일단 방학이 여름보다 길어서 좋았고, 온 세상이 눈으로 덮인 날이면 동화 속 주인공이라도 된 것 마냥 신이 났다. 게다가 산타 할아버지가 집집마다 다니며 선물을 주는 계절이라 더더욱 좋았다. 참, 집에 방문하는 손님들 손에 들려있던 종합과자 선물세트도 빼놓을 수 없지. 입이 귀에 걸린 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상자를 열어보면 그 안에는 온갖 달콤한 먹을거리가 들어있었다. 내 앞에 펼쳐진 작은 가게에서 먹고 싶은 걸 마음껏 골라 들던 그 행복감이란.

나이를 먹으면서 세상살이에 지치다 보니 생명의 온기가 사라지고 잿빛으로 변하는 이 계절이 싫어지게 됐지만 가끔씩 유년의 날들이 떠오를 때면 겨울을 손꼽아 기다리던, 그때의 어린아이의 마음이 다시 살아난다.


눈으로 덮인 하얀 세상,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설렘. 이 두 가지는 어릴 때도 가장 큰 즐거움이었지만 지금도 내게 겨울을 견디게 해주는 낙이다. 우연히 들른 카페에서 추운 날씨를 녹일 듯한 따스한 크리스마스 인테리어를 만나거나, 생활용품점에 주방용품을 사러 갔다가 매대 한 편을 가득 채운 성탄 카드와 연하장을 보거나, 달콤하게 귓가에 감기는 캐럴을 들을 때면 마음에 반짝하고 전구가 켜진다. 이런 풍경들을 마음에 잘 담아 두었다가 힘들 때면 꺼내서 봐야지. 아껴두었던 초콜릿을 꺼내 먹는 기분으로 하나씩 천천히.


한때 즐겨보던 <나의 해방 일지>라는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인 미정이 동료에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동료 - "얼른 겨울이 왔으면 좋겠다.”

미정 - “겨울엔 또 그럴걸. 얼른 여름 왔으면 좋겠다고. 지금 기분 잘 기억해뒀다가 겨울에, 추울 때 다시 써먹자. 잘 충전해뒀다가, 겨울에.”


미정은 여름의 기분을 담아 두었다가 겨울을 나고, 난 반짝거리는 풍경들을 담아 두었다가 겨울을 난다. 추운 계절을 견디는 방법이랄까.


딸랑! 카페 문을 열고 나오는데 옷깃을 파고드는 찬 바람에 잔뜩 움츠리게 된다. 하지만 입구에 자리한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니 어쩐지 추위가 좀 가시는 것 같다. 이럴 땐 눈에 잘 담아 두어야지. 나중을 위해, 미정이처럼.



※휴대폰 카메라에 담았던 풍경을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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