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알람에 눈을 뜬다. 남편은 출근 준비를 하느라 부산하다. 반쯤 감긴 눈을 억지로 뜨며 일어나 냉장고 문을 열고 어젯밤에 준비해둔 샐러드 도시락을 남편에게 건넨다. 최근 코로나 상황이 악화되기도 했고 식단 조절도 필요해서 겸사겸사 도시락을 싸고 있다.
남편이 출근한 후 텅 빈 집에는 나 혼자 뿐이다. 요즘 많이들 키우는 반려동물도 없다. 끝까지 책임질 자신이 없어서 쉽게 들이지 못한다면 게으른 자의 변명일 뿐일까.
간단히 씻고 아침을 준비한다. 더운 날씨에 불을 켜기 싫으니 나 역시 샐러드로 끼니를 때운다. 두세 가지 정도의 채소에 토마토, 블루베리와 조미된 닭가슴살을 곁들인다. 올리브유와 발사믹 식초를 뿌리면 간단하면서도 맛있는 한 끼 완성!
아침을 먹은 후 커피 한 잔을 내려 테이블에 앉는다. 노트북을 켜고 오늘 주식시황과 뉴스를 확인한다. 적정가에 매도, 매수 주문을 걸어놓고 오늘 읽어야 할 책을 집어 든다. 책을 다 읽어야 글을 쓰는데 요즘 들어 잡다한 생각이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어서 글자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잠시 음악을 듣는다. 자주 즐겨 듣는 음악 채널에서 리스트를 검색한다. 잔잔한 선율이 적막한 공간을 채우자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어차피 책은 안 읽히니 잠시 짬을 내어 집안일을 하기로 한다.기분 전환용 음악이 노동요로 탈바꿈한다.
직장을 그만둔 후 혼자 집에서일하다 보니 하루에 몇 마디 안 하게 된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거의 안 하다 보니 의사소통능력이 점점 저하되는 것 같다. 가끔 바깥공기가 쐬고 싶을 때는 나가서 햇볕을 쬐며 걷거나 카페에 가서 작업을 하기도 한다. 카페는 평일에도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다. 여럿이 모여 대화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혼자 노트북을 앞에 두고 뭔가에 몰두해 있는 사람들도 있다. 저들도 타인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사람들 속에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이곳에 와있는 것일까.
점점 멀어지는 서로 간의 거리
현대인들의 관계는 갈수록 간접적으로 변해가는 것 같다. 직접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는 것보다 문자나 메신저를 통해 소통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러다가는 어릴 때 읽었던 공상과학소설에서처럼 직접 사람을 만나는 걸 기피하고 홀로그램으로만 접촉하는 사회가 도래하지 않을까, 하는 극단적인 상상도 하게 된다. 왜 이렇게 사람들은 점점 서로 간의 거리를 늘려가는 것일까. 공동체 사회가 붕괴되고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개인의 힘으로 먹고살아야 하는 세상이 되다 보니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단단한 껍질을 만들고 그 안에 웅크린 채 필요할 때만 밖으로 나와 타인과 교류하는 것 같다.
나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내향적인 성격이라 마음 맞는 사람들과 좁고 깊게 교류하는 편인데, 그마저도 직접 만나기보다는 문자나 메신저 또는 각자의 SNS를 통해 소통하는 걸 선호한다. 자주 만나는 것보다 가끔 만나야 더 반갑고 할 이야기도 많다. 그런데 이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도 피곤함은 항상 따라붙는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꽤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홀로 지내면서 느낀 건, 혼자인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자신에게 좀 더 집중할 수 있고, 타인을 배려하기 위해 추가로 에너지를 쓸 필요도 없다. 예컨대 대화를 듣고 포인트를 잡아 공감해준다던가, 어떤 메뉴를 먹을지 서로의 선호도를 반영하여 적절한 선에서 조율하는 등의 사회적 기술이 필요 없다. 관계를 매끄럽게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 참 편한 일이다. 다만 이렇게 계속 혼자인 채로 지내다 보니 사람을 만나는 게 낯설게 느껴져서 인간관계를 맺는 일이 점점 어렵게 느껴진다. 또한 경험의 폭이 줄어들면서 사고가 편협해지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아무리 내향인이라지만 나도 가끔은 다른 사람이 그립다.혼자라서 좋지만 다른 사람과의 공존도 필요하므로코로나 시국이 끝나면 모임에 참석하거나 오프라인 강좌를 들으면서, 사람들과 적절하게 부대끼며 살아가는 법을 다시 터득해야겠다.하지만 그때까지는 지금의 '나홀로' 생활을 좀 더 즐겨볼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