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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볕 Oct 06. 2022

오랜만에 찾은 그 집

그리고 '오라이 오라이'


가끔 예전에 먹었던 음식이 간절히 생각날 때가 있다. 음식의 맛에 추억까지 더해져 온몸의 미각세포가 지금 당장 먹어야 한다는 듯 아우성치는 그런 때. 아마도 지난 주말이 남편에겐 그런 날이었나 보다. 백화점에 가려고 집을 나섰는데 갑자기 가는 길에 있는 돈가스집에 들르자는 것이었다.


그 가게는 허름한 상가건물에 위치하고 있어서 주차공간이 없기 때문에 차를 가져가기 힘든 곳이다. 그런데도 남편은 미련을 버리기가 힘든지 일단 한번 들러보잔다. 사실 나도 예전에 그곳을 방문한 적이 있다. 협소한 공간에 테이블과 의자 몇 개가 전부인 집이었지만 질 좋은 고기로 만든 크고 두툼한 돈가스를 맛볼 수 있어서 단골손님이 꽤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침 점심때도 다가오고 있어서 오랜만에 그 집 돈가스를 맛보러 가기로 했다.


덜컹! 문을 밀고 들어서자 자그마한 가게 안에 몇 팀의 손님들이 앉아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도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주문을 했다. 시간이 좀 걸릴 줄 알았는데 바로 수프가 나왔다.


"응? 맛이 밍밍한데. 원래 이랬나?"


후루룩 수프를 마신 남편이 고개를 갸웃한다.


"돈가스만 맛있으면 되지."


내 말에 남편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십여 분 후 드디어 대망의 돈가스가 우리 앞에 놓였다. 포크와 나이프를 집어 들고 노릇노릇 잘 튀겨진 고기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입에 넣었다.


'어? 그런데 맛이 왜 이러지?'


예전에는 고기가 꽤 두툼해서 씹을 때 촉촉한 육즙이 느껴졌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 이 돈가스는 종잇장처럼 얇디얇다. 그새 사장님이 바뀌셨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걸 느끼며 바싹 마른 뻣뻣하기 그지없는 고기 조각을 입에 밀어 넣었다. 오는 내내 이 집 돈가스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던 남편도 묵묵히 접시만 비우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다 먹고 일어서서 계산하는 우리에게 남자 사장이 카드 영수증을 내밀며 말했다. 평소라면 기분 좋았을 그 싹싹한 인사에도 어쩐지 뒷맛이 씁쓸했다. 고물가 시대라 식재료 값이 오른 건 이해하지만 그래도 예전과 너무 달라진 맛과 양 때문에 당황스러웠다. 혹시나 우리가 예민한 건가 싶어서 후기를 찾아보니 최근에 올라온 평들은 초심을 잃었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우리 리스트에 있던 소박한 분위기의 맛집 한 곳이 사라져서 아쉽다.


백 년 식당까지는 아니더라도 음식에 대한 향수가 떠오를 때 언제고 다시 방문해서 따뜻함을 안고 돌아갈 수 있는 그런 가게가 있었으면 좋겠다. 혹시나 자영업의 현실을 모르는 철딱서니 없는 푸념이라면 너른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길.




PS.

게 옆 골목에 세워 놓은 우리 차의 앞뒤로 다른 차들이 그새 주차를 해놓았다. 이런! 좁은 골목이라 차를 바싹 대 놓아서 난감해하고 있을 때 옆에서 담배를 태우며 담소를 나누던 노인분들이 갑자기 일사불란하게 "오라이 오라이!"를 외치며 손짓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수월하게 차를 빼서 감사 인사를 전하려는데 할 일을 다 마쳤다는 듯 뒤도 안 돌아보고 가버리셨다. 평소에는 무뚝뚝하지만 누군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신속하게 나서서 도움을 주는 한국인들.


오라이 오라이!(All right, all right!)

 속으로 가만가만 단어를 굴려본다. 어쩐지 기분 좋아지는 말. 돈가스 때문에 뾰족해진 마음이 어르신들 덕분에 조금은 둥글어진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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