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밤 Jan 26. 2022

우정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

너와의 날을 생각해보면 세상의 그 어떤 우정도 부럽지가 않았다

네 프로필 사진에는 벌써 빔을 차려 입은 예쁜 아이 둘이 웃고 있다. 

@Mehdi

연한 무지개빛 저고리와 은은한 미색의 치마. 내 사진은 수년 전부터 고양이다. 우리가 연락하지 않은지 오래 되었지만 결혼에서 첫 아이로, 두 아이로 바뀌는 사진으로 너의 삶을 짐작해 보곤했다. 첫째 아이는 곧 유치원에 갈 것 같다. 내가 가장 강렬하게, 처음 우정을 경험했던 나이가 일곱살 무렵이었으니까, 네 아이도 곧 친구와의 기쁨과 슬픔을 잔뜩 알게 될 것이다. 인생의 가장 큰 기쁨을 알게 되겠다는 짐작만으로도 이제 너의 아이는 더 이상 작지도, 어리지 않다. 


그것만으로 그 누구보다 생동감 있을 인생의 한 시기를 보낼테니까. 곧 엄청나게 울게 될지도 모르니까. 네 아이가 언젠가 네게 가장 좋아하는 친구에 대해 이야기 할 때, 행복해 할 때, 내 생각이 지나갈까? 




너와 함께한 매일로 무한히 커졌던 나의 세상, 기쁜 나날이 끊임없이 이어지던 어릴 적을 이야기 하고 싶다.  

우정이 처음 시작되던 때. 10명이 채 안되던 그 작은 동네의 교실에서 어떻게 너를 만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때를 생각하면 나는 세상에는 운명이 존재한다고 증언할 수밖에 없다. 그 무렵 나의 소원은 네가 우리 집 옆으로 이사오는 것이었다. 학교가 끝나면 헤어지는 것이 너무 아쉬워 머릿 속에서 우리 집 옆에 공터를 밀고 집을 지었다. 그 집은 2층 집이었는데 거기 2층에 네가 사는 상상을 했다. 7살 때 우리집이 지어지는 걸 보고 자란 나는 너의 집도 상상 속으로 지을 수 있었다. 집을 완성하고, 네가 이사오고, 매일 너의 집에 놀러가는 생각. 정작 너의 집은 너무 멀어 한 번도 가본적이 없다.  


@Kate Bezzubets


네가 전학을 가고 나는 9살 평생 처음으로 이별이라는 걸 알았다. 말로 설명할 수 없고 상상할 수 없던 슬픔이었다. 그리고 그건 모두 '내 것'이라서 엄마도, 동생도 선생님도 도와줄 수가 없었다. 인생의 가장 큰 슬픔, 그건 아마 너도 마찬가지였을 테지. 친구가 사라지고 나의 세상과 나의 전부가 사라졌다. 매일 머릿 속으로 지었던 2층 집을 짓는 일도 그만 두게 되었다. 바닥 시멘트를 깔던 일, 조금씩 벽돌을 올려 벽체가 되던 일, 아저씨들 사이에서 새참을 먹던 일, 마침내 2층 집이 완성되고 기뻐하던 일 모두. 2층 창밖에서 나를 부르면 우리집까지 들려서, 내가 곧장 대답하고 너네 집에 놀러가는 생각도 언젠가 그만 하게 되었다. 경운기와 비닐 하우스를 지나 나는 금방 도착했는데. 아직도 그 생각을 하던 내가, 생생하다.  



네가 전학을 가고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편지 쓰기를 대체 누가 가르쳐주었을까? 매일 같이 우는 나를 달래주던 엄마였을까? 우리의 우정은 매일 전화로 나눌 수 없이 깊은 것이었다. 그 마음을 아주 오랜 시간 다듬어 적고 싶었으며 오랫동안 펼쳐 보고 싶었다. 나는 너와 헤어지면서 인생에 처음으로 '이야기'가 담긴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배운 편지쓰는 법을 떠나 내 마음대로 편지에 마음을 담는 법,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법, 받는 이를 생각하며 한 줄 한 줄을 채우는 연습을 했다. 그 어렸을 때부터 두 장이 넘는 편지를 매주 방학 때 썼으니까. 내가 이렇게 글을 쓰는 건 그때 10살 때부터 너와 나누던 편지에서 시작되었다.  



그 후로 10년이 지나 우리는 대학 때 다시 만나게 되었다. 9살의 마음을 간직한 채 서로의 10년을 알지 못하고 만나 반가운 마음만 간진한 채 스무 살 오늘의 이야기는 잘 이어지지 못했다. 아니, 훌륭하게 그때를 헤어졌기 때문에 서로 다른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일까? 그동안 너는 어떻게 살았을까? 여전히 너는 착하고 공부를 잘하고, 잘 들어주는 아이였을 것이다. 너도 나처럼 힘들고, 슬프고, 또 기뻤던 일이 많았겠지? 그 감정마다 내가 부재한다는 사실이 마음이 아팠다. 조금 우습게도, 그 무렵 나는 네가 어떤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을 잘 받아들일 수가 없었는데 연애라는 것을 알기 전에 너와 헤어져서, 연애하는 너를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어젯밤 잠들기 전 너의 카카오톡 프로필을 보다가 아이들이 예쁘네라는 생각을 잠시했다. 오늘은 서점에 갔다가 <연의 편지>를 보고 이 이야기를 쓴다. <연의 편지>는 아름답고 조금은 극적인 우정에 대한 만화이다. 이 책에서는 서로 잊을 수 없는 큰 도움을 주고, 어떤 사건에 의해 기억하게 되는 특별한 우정이 있다. 훌륭한 만화이지만 너와의 날을 생각해볼 때 이 이야기가 부럽지 않다. 너와의 날을 떠올려 볼때, 우정은 지극히 평범한 매일이 모여 만들어졌다. 서로가 서로의 곁에 있어 보내는 하루가 쌓여서. 이제는 그 사소하고 재밌었던 하루 하루의 기억이 다 날아가서 이렇게 밖에 쓸수가 없다.  



구름이 움직이는 것을 함께 보고, 햇빛 아래를 달려나가고, 방과 후 함께 말없이 걸어가던 운동장과 몇 번의 소풍과 여름에 먹었던 아이스크림, 이파리가 아주 큰 플라타너스가 초록이었다가 낙엽지는 아래를 지나면서, 파카를 입고 눈싸움을 하던 날들을 지나 드르륵 열리던 미닫이 교문, 네가 거기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던 교실에서. 네 큰 키를 올려다보며, 네 단발머리를 생각하며, 네 옆에, 언제나 내가 있을 것을 의심하지 않던 시절에서,  



나는 자라 지금의 내가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새해가 밝으면 종묘에 가보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