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바람 Jul 17. 2022

부모님께 위로를 찾으면 안되는 이유

직장인, 다시 공부합니다 07 - 아니 우울할 틈이 있다고?

모든 한국인 부모님들이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우리 부모님을 포함해 대부분 한국인 부모님들은 "위로"라는 것을 잘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어제 엄마 아빠와 했던 통화에서 아, 나는 앞으로 위로를 찾을 때 부모님에게 가면 안 되겠구나, 생각했다.


ENFJ/INFJ인 나는 특히나 NFJ가 다 높아서 그런지 이야기를 들을 때도 전화를 할 때도 하고 있는 모든 것을 놓고 그 대화에 집중한 후 상대방이 지금 필요한 말이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그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생각들을 정리해서 얘기하는 편인데, 그래서 우리 집에 엄마, 아빠, 동생은 항상 위로를 받고 싶을 때 나를 찾았다. 


아빠는 항상 나를 보며 믿음직스럽다고 말했고, 엄마는 내 말을 신뢰하고 존중해주었으며, 동생도 (최근에 알았지만) 나를 책임감 빼면 시체라고 말했다. 주변 여자애들이 내가 남자였으면 이상형이었을 거라고 말할 정도로 성실함과 책임감은 거의 인생의 좌표처럼 가지고 살았던 것 같다.


어제 한국에 계신 엄마 아빠와 통화를 했다. 통화를 시작하며 우리가 나누었던 대화는 이랬다:


"요즘 공부도 잘 안되고, 집중도 안되고... 나 요즘 조금 우울해"


"공부하느라 바쁘면 우울할 틈도 없을 텐데?"


내가 우울하다는 말에 바로 나오는 답이 저거라니. 나이 30에 다시 공부하니 위로가 되지 않은 답에 마음이 착잡해졌다. 이 나이에 다시 공부해야 하는 것도 힘든데, 부모님께 힘들다고 징징댄 내가 잘못했지.


부모님의 대답에 깔려있는 뜻은 - "너 지금 공부 열심히 안 하나 보네?"였고, 난 "당연히 모든 것을 열심히 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가정되어 있었다. 나는 언젠가 부터 모든 순간 최선을 다하는게 당연한 사람이 되었다.


이야기는 결국 다른 곳으로 흘러갔지만, 오늘 아침에 책상에 앉아 다시 우울한 마음을 마주하니 어제 그 대화가 생각났다.


다시 생각해보면 부모님께 힘들다고 얘기를 하면 우리 부모님은 항상 동기부여가 되는 말을 해주었지, 위로가 되는 말을 해주지 않았던 것 같다. 공부하기 힘들다고 말하면 "왜 공부해야 하는지" 혹은 "지금 공부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말하셨다. 대부분 "공부할 수 있는 입장이 된 것이 얼마나 소중한 건지" "다른 사람들은 하고 싶어도 못하고" "지금 젊으니까 공부도 할 수 있다"라고 얘기를 해주셨다 (물론 다 맞는 말이다).


학생 때는 엄마 아빠가 해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책상으로 돌아갔지만, 이제 나이가 30이 넘으니 그런 말이 전혀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 동기부여는 역시나 철저히 자기 자신에게서 나와야 한다 (it has to come internally).


이 글들이 "노력파의 고백"이라는 제목 아래 써져있는 이유는, 이 모든 고민이 내가 노력파라서 나오는 것이다. 내가 진짜 주어진 모든 공부와 일이 쉬웠다면 이렇게 뼈를 깎는 고통으로 공부하며 힘들어하지 않았을 텐데, 주어진 것에 비해 채워야 하는 기대가 크니 나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열심히 오늘도 달리고 있다.


어쩌면 이 글의 실체가 정말 나의 고백일지도 모르겠다 -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내가 한없이 주어진 재능에서 모든 것을 이룬 것 같이 보이겠지만, 엔진이 다 나갈 때의 상황은 어떠한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고백. 


매일매일이 살짝 우울하다. 이유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라는 압박감. 그리고 거기서 가장 어려운 게 그 "최선"을 정의하는 것.


노력파가 일이 다 끝났을 때 유일하게 스스로에게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은 "그래도 나는 최선을 다했어"인데, 최선을 다했다는 게


잠을 4시간 자면서 공부하는 건지, 컨디션 조절하며 7시간 자는 건지,

운동하는 시간까지 다 줄여가며 공부하는 건지, 아니면 건강을 위해 하루 2-3시간은 버리며 헬스장을 가도 되는 건지,

허리디스크 생길 때까지 책상에 쭉 앉아 공부하는 건지, 아니면 집중력을 깨트려도 자세를 신경 쓰며 공부를 해도 되는 건지,

눈이 어두워질 때까지 글을 계속 읽는 건지, 아니면 시력을 보존하기 위해 어느 정도 선에서 스크린에 나열된 글자를 그만 읽어도 되는 건지,


어렸을 때부터 시작된 "최선이 무엇인지"의 고민은, 나이가 들면 더 심각하게 고민되고 1) 건강도 나빠지는데 2) 공부도 잘 안되면 사람이 한없이 우울해진다. 건강이 엮여있어서 어쩔 수 없다.


운동선수들은 훈련을 할 때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라고 하는데 (유명한 김연아와 마이클 펠브스 짤들) - 그게 사실 가능하고 괜찮은 이유가 그건 운동선수들의 훈련이 기본적으로 체력이 망가지지 않게 설계가 돼있는 선에서 훈련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공부는 좀 다르다. 내가 20년을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라는 생각 아래 책상 앞에서 하루 기본 12시간 넘게 앉아있어 보고 내린 결론은 "공부는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최선을 다한다는 말 아래 막무가내로 하면 결국엔 건강에 문제가 생긴다"이다.


그래서 요즘에 가장 큰 고민과 우울함이 그것이다. 젊었을 때처럼 하루를 하얗게 불태우는 공부는 이제 무리라는 게 느껴졌다. 집중력, 허리 통증, 시력 이 세 가지에서 나는 제일 크게 느낀다.


그리고 그렇게 하얗게 태우면서 공부를 하지 못한다면, 최선을 다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시험을 통과 못할 확률도 크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그것을 이겨내며, 또 내 몸을 혹사시키며 공부하고 일하는 것 보다, 여기서 찾아오는 우울함을 해결하는 쪽으로 생각의 전환을 해야 할 것 같다.


내 나이 31, 이제 슬슬 인생의 우선순위를 정리할 때가 온 것 같다. 예전에는 공부, 그리고 지난 4년은 일이었다면, 이제부터는 건강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로. 


공부로서는 이미 이룰 것은 다 이뤘고, 더 많은 욕심 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야겠다 (그게 심지어 캘리포니아 변호사 시험을 패스하지 못하는 것이라 해도). 공부가 인생의 모든 게 아니다.



*혹시 10대들이 보고 있을까 덧붙이자면, 10대일 때는 그래도 할 수 있는 한 (운동도 병행하면서) 공부에 많은 것을 쏟아부어야 합니다. 10대 때 공부를 하지 않으면 인생에 있는 선택의 폭이 확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될 수 있는데 포기하는 것과 될 수도 없어서 도전조차 하지 못하는 것은 다르고, 주변 지인들을 만나면 좋은 대학교를 가지 못해서, 혹은 대학교 갔어도 성적이 좋지 못해서 적성에 맞을 것 같은 일도 도전조차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험 2주 전 마음가짐은 언제나 불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