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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바람 Oct 13. 2022

가슴에 품는 시 한 편

사랑하는 이여 /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대학교 1학년 때의 일이었다. 영문학 (English Literature) 수업 중, 교수님의 초대로 유명한 시인 Reynold Price라는 분이 수업을 진행하시기로 하였다.


수업을 하시던 중, Price 시인은 수업을 경청하던 학생들에게 물었다. "혹시 이 중에 시 한 편 외우고 있는 사람 있느냐"라고. 120명이 넘는 학생들을 담은 강의실에 그 어떤 소리 없이 10초 정도 흐른 것 같다. 그 정적이 민망하셨는지 Price시인도 "시가 아니라 유명한 노래의 가사여도 좋다"라고 말씀하셨다.


어렸을 때부터 시를 좋아했지만 하나도 외워놓지 않았던 이 상황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학생 중 하나였던 나는, 곧 당당하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모두와 함께 시선을 돌렸다.


일어선 상태로 시를 한 줄, 한 줄 기억 속에서 읊어대는 남학생들을 우린 모두 경이롭게 쳐다보았다. 심지어 사랑에 대한 시였다. 뭔가 자신은 사랑하고 있는 여자에 비해 훨씬 더 작고 작아, 그 여자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그런 내용 (안타깝게도 나는 그때 정말 홀려서 그가 무슨 시를 읊었는지 까먹었다. 아마 e.e. cummings 느낌과 가장 비슷한데 정확한 시를 아직도 찾지 못했다). 전체적인 시를 읽는 느낌을 한국 강의 실안에 일어나는 것처럼 구사하자면 황지우 시인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 같은 시를 어떤 대학생 1학년 남학생이 천천히 하지만 당당하게 읊어댄다고 상상하면 좋을 것 같다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내가 조금 더 용기가 있었다면 아마 그의 번호를 물어봤을 것이다.


그때 그 강의실에서의 풍경, 그리고 내 안에 휘몰아쳤던 감정들이 아직까지 기억에 깊이 박혀있다. 하지만 대학교에서 진로를 찾느라, 그 이후 로스쿨에서 공부를 하느라 "시"가 가진 낭만과 거리가 생겼고, 나는 거의 거의 10년 뒤인 2019년에야 다시 시를 읽고 쓰는 사람이 되었다.


2019년. 그 해는 내가 직장인 1년 차였다. 직장인이 되고 돈을 벌다 보니 - 그리고 서른을 앞두다 보니,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30대부터는, 내가 마음속에 품고 다니는 것들이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를 결정할 것 같다고. 즉, 이제부터는 내가 마음속에 외우고 새기는 것들을 신경 써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내가 나의 마음에 투자한 것들이 나의 삶의 모든 곳에 스며들 것 같았다.


그때 이후로 외웠던 시들은 이렇다 (시를 다 쓰기엔 글이 길어지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꼭 찾아보시길! - 앞 몇 마디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을 곁에 적었다):


- Invictus - William Ernest Henley (Out of the night that covers me / black as the pit from pole to pole / I thank whatever the gods may be / for my unconquerable soul)


- She Walks in Beauty - Lord Byron (She walks in beauty, like the night / Of coudless climes and starry skies; / And all that's best of dark and bright / Meet in her aspect and her eyes)


- 시편 139 (영어로) (You have sesarched me, Lord / and you know me / You know when I sit and when I rise; / you perceive my thoughts from afar)


- 하박국 3장 (영어로) (Though the fig tree does not bud / and ther eare no grapes on the vines / though the olive crop fails / and the fields produce no food / though there are no sheep in the pen / and no cattle in the stalls, / yet I will rejoice in the Lord / I will be joyful in God my Savior)


- It's You I Like - Fred M. Rogers (It's you I like / It's not the things you wear / It's not the way you do your hair / But it's you I like)


- How Many Times - Thomas Lovell Beddoes (How many times do I love thee, dear? / Tell me how many thoughts there be / In the atmosphere / Of a new-fall'n year)


- Never Give All the Heart - William Butler Yeats (Never give all the heart, for love / Will hardly seem worth thinking of / To passionate women if it seem / Certain, and they never dream)


- The Summer Day - Mary Oliver (I don't know exactly what a prayer is / I do know how ot pay attention, how to fall down / into the grass, how to kneel down in the grass / how to be idle and blessed, how to stroll through the fields)


- 서시 - 윤동주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 걸어가야겠다)


- Each Day A Life - Robert William Service (I count each day a little life, / With birth and death complete; / I cloister it from care and strife / And keep it sane and sweet)


- 낮은 곳으로 - 이정하 (잠겨죽어도 좋으니 / 너는 /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 사랑이 어떻게 너에게로 왔는가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어린 아이들이 호도와 / 불빛으로 가득한 크리스마스를 보듯 / 나는 본다. 네가 밤 속을 걸으며 / 꽃송이 송이마다 입맞추는 것을)


- Dear Basketball - Kobe Bryant (I knew one thing was real: / I fell in love with you. / A love so deep I gave you my all--/ From my mind & body / To my spirit & soul.)


-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  -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특히나 좋아하는 노래 가사:

- 너의 모든 순간 - 심현보 (거기 있어줘서 / 그게 너라서 / 가끔 내 어깨에 가만히 기대주어서 / 나는 있잖아 정말 빈틈없이 행복해)


요즘에도 좋은 시를 찾아다니고, 마음에 정말 드는 시는 외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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