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올 - 청춘
퇴근하니 기분은 좋은데 그냥 들어가자니 아쉽다. 내일만 출근하면 주말이다. 술 한잔 마시고는 싶은데 일어날 순 있을까, 부은 얼굴은? 지난 경험들은 좋은 선생님이다. 우선 걸음은 집으로 향하지만 그래도 머릿속은 바쁘게 돌아간다.
집에 거의 도착하고 보니 친구들이랑 술 한잔 마시고 갈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꼭 아쉬움은 이럴 때 떠오르더라. 그냥 가기는 좀 아쉬우니 집 앞 편의점에서 맥주 딱 두 캔만 사고 들어간다. 코젤 하나에 아사히 하나.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안주를 고른다. 육포는 좀 비싸니 피시 스낵을 살까, 그냥 집에 있는 라면에 마실까. 아무래도 육포는 좀 비싼 것 같다. 집에서 라면이나 끓여야겠다.
뜨거운 물에 언 몸을 녹이고 소파에 눕듯이 앉는다. 맥주 한 캔을 마시면서 TV를 틀고 시끄러운 휴대폰은 잠시 내려놓는다. 시원하다. 근처에서 소주 한잔 하고 있다는 친구의 연락이 흥미롭기는 하지만 난 지금이 더 편하다. 편하게 집에서 마실 거다. 진짜로.
생각해보니 여기서 친구까지는 도보로 10분. 썩 나쁜 제안은 아니다. 안주는 방금 시켰다고 하니까, 지금 가면 딱 안주가 나올 타이밍이다. 주섬주섬 롱 패딩 하나 걸치고 다시 나간다. 이미 딴 맥주는 아까우니까 원샷 먼저 하고.
진짜 적당히만 마시고 잘 거다. 내일도 출근은 해야 하니까 많이는 안 마실 거다. 진짜로. 전화하면서 걷다 보니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하나 더 들린다. 때마침 일찍 퇴근했다며 먼저 마시고 있었단다.
처음처럼 한 병이랑 잔 하나 주세요. 수저랑 젓가락도!
언제나 듣기 좋은 뚜껑 따는 소리, 기분 좋게 한 잔 받는다. 안주가 나왔으니 한 잔, 오늘 있었던 일 이야기하며 한 잔, 그러다 친구 한 명이 더 왔으니 또 한 잔. 사실 한 잔 받는 데에는 딱히 이유가 없다. 마실 타이밍이면 받고 마시는 걸 반복한다.
늘 만나던 애들이다. 심심하면 보고 서로 단톡 방에서 시끄럽게 떠들면서도 만나면 몇 년 만에 만난 것 마냥 더 시끄러워진다. 처음엔 이렇게 친해질 줄 몰랐다. 7년 전에 대학 동기로 만난 놈들이 그 모습 그대로 여기에 모였다. 군대에서도 서로 휴가를 맞춰 나오고 취업 준비할 땐 위로의 소주잔을 건넸다. 또 취직했을 땐 같이 축배를 들었다.
아 그만 마셔야 하는데. 생각은 하는데 너무 즐겁다. 즐거우면 또 한 잔. 갈 때까지 간다. 우선 내일 숙취는 지금의 내가 아닌 내일의 내가 책임질 것이고, 출근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조금 무책임하지만 오늘 나는 몇 잔 더 마셔야겠다. 미안해!
내게 주어진 순간에 행복하자. 우리 젊음은 흘러가니까. 내일은 어떻게든 되겠지. 그러니 지금은 이 짬뽕 국물에 수다 떨면서 딱 한 잔만 더 마셔야겠다. 진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