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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구마깡 Feb 22. 2019

흐를수록 선명해지는 것.

자우림 - 스물다섯, 스물하나

https://youtu.be/4VxSjjtORb4

시간이 흐를수록 선명해지는 것들이 있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패이는 주름과 새로 장만했던 지갑의 흠집들, 그리고 예전의 기억들도.


누군가 나에게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장면들을 꼽으라면 난 정말 별 거 없는 장면들을 나열할 것이다. 체육복 입고 교실 뒤편에서 조용히 떠든 기억이나 동아리방에서 선배 후배 다 모여 손금을 보며 관상에 대해 웃고 떠들던 때, 아니면 자취방에서 사내 여섯 놈이 술에 뻗어 자던, 그런 소소한 순간들.


요즘따라 부는 바람에서 옛기억이 노래 한 소절로 실려온다. 가슴시리도록 행복한 꿈을 꾼 것만 같다. 오늘의 별자리도 그 때와 다를 게 없는데. 그때의 행복을 지금처럼 사무치게 알지 못했던 내가 참 어렸다는 생각도 든다.


기억해내면 할수록 멀어진다. 난 선명히 기억하는데, 그때는 아득히 멀어져간다. 풍선을 놓친 아이가 되는 기분이다. 잡으려 발버둥치는 것도 잠시,  흩어지는 기억을 붙잡을 수 없어 생기 잃은 눈빛으로 바라만 본다.


슬픔이여, 안녕


항상 마음 속에 품고 지내자던 나였지만 옛생각만 하면 퍽 웃음이 나다가도 마음 한 켠이 씁쓸해진다. 그때의 너와 내가 아름다워 더욱 서글프다.


영원할 줄 알았던 지난 날의 우리를 생각하며 묘한 감정을 곱씹는다. 한없이 걷다 집 앞에 도착한다. 좁디좁았던 자취방이 더 넓게만 느껴지는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오늘은, 그냥 피곤해서 그런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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